브랜드, 마술적 사고의 매개체
마술적 사고가 만들어내는 슈퍼내추럴 현상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홍준기  고유주소 시즌1 / Vol.12 슈퍼내추럴 코드 (2009년 11월 발행)

“나는 이제 섹시한 여성이 되었어. 빅토리아시크릿을 입었거든.” 브랜드는 고객의 욕망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행위의 총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가 있다. 마술적 사고란 특정 행위와 관계가 적은 신비한 어떤 행동을 통해서 뭔가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고 믿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원시사회에서 주술사가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마을 처녀를 제물로 삼아 복을 기원하는 것 역시 불안을 없애고자 하는 마술적 사고에서 기인한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도 내면의 불안을 없애고자 마술적 사고에 바탕을 둔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를 통해서 말이다. 특히나 특정 브랜드를 소비하고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가치에 주문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The interview with 한국정신분석상담연구소 소장 홍준기
 
 
세상에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유독 특정 브랜드에 강한 선호도를 보이는 것일까요?
일종의 ‘강박적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박 또한 일종의 증상인데, 특정 행위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강박이라는 것도 거의 모든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여러 증상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다만 그것이 브랜드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는 것뿐이죠.

 

기본적으로 그러한 현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것을 통해서 쾌락과 만족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근원적으로 들어가 보자면 인간의 ‘나르시시즘’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증명할 필요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전제이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죠.

 

모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행위의 전제가 되는 것이군요. 그것은 ‘선’과 ‘악’의 개념을 벗어난 명제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한가, 악한가와는 별개의 문제로 자신을 위하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선행도 궁극적으로 자기를 위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근원적 욕구를 승화시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긍정적일 뿐이죠. 단적인 예가, 작년에 김장훈 씨가 출연했던 <인간극장>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입니다. 김장훈씨가 말하는 ‘내가 선행을 하는 이유’는 “선행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입니다. 정말 밤에 잠을 못 자고 꼴딱 밤을 샌다고 합니다. 그분은 선행을 해야만 조금이나마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안정을 찾기 위한 행위인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세상에 이로운 일로 승화된 것이기에 칭송 받아 마땅할 일이된 것입니다. 반면에 불안을 이기는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죠. 유영철 씨를 보십시오. 살인자들은 정서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을 죽입니다. 두 사람이 극단의 결과를 만들어 냈지만 근원적으로는 자신의 심리적 안정과 만족을 위해 행동한 것입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한가, 악한가와는 별개의 문제로
자신을 위하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선행도 궁극적으로 자기를 위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인간의 속성이 특정 브랜드를 강박적으로 고집하는 소비자의 특성과 어떠한 연계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선 기본적으로 브랜드는 소비자의 심리적 수고를 덜어줍니다. 과거의 경험이나 정보를 바탕으로 고민 없이 대상을 쉽게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편하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에너지도 절약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거기까지라면 굳이 ‘강박’일 것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심리적 수고를 덜어 준다는 것은 선택 프로세스에서의 경제성 말고도 ‘불안을 감소’시켜 준다는 더 큰 효익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좀 더 심하게 무의식적으로 대상에 집착하는 현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죠. 강박은 스스로 더 큰 불안을 해결하려는 욕구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조금 더 전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특정 브랜드에 대한 슈퍼내추럴한 현상은 크게 두 가지 증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용어 자체가 다소 병리적이기는 하지만 한 브랜드에 대한 사랑을 넘어 극한까지 갔을 때를 말씀드릴 테니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한 가지는 ‘히스테리’이고 또 한 가지는 ‘강박증’입니다.
 
‘히스테리’를 가장 쉽게 말하자면, 어린 시절 만족에 도달한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 가능한 한 많고 다양한 만족을 추구하려는 행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브랜드에 집착하는 것은 강박적 행위라기 보다는 히스테리적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유 없이 맹목적입니다.
 
반면, ‘강박증’은 어린 나이에 너무나 갑자기 너무 많은 만족을 누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만족 말고도 ‘금지’ 개념을 배우게 됩니다. 소위 오이디푸스 단계가 되면서 말이죠. 아주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족’을 누리려는 자아와 동시에 ‘금지’해야 하는 자아가 공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계속해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만족과 금지 명령 속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금지 명령이 내면화되어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 불안과 초조입니다. 심해지면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처벌할 것이다’라는 처벌 망상까지도 나타납니다. 혹은 ‘내가 무엇인가를 어겼고 잘못했기 때문에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계속 손을 씻는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히스테리’와 ‘강박’ 두 가지 개념 차이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것과 브랜드에 대한 집착 현상과의 연결점은 어렵습니다.
브랜드라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근본적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리만족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브랜드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라는 것도 그 욕구를 해소하는 정도(more or less)가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를 뿐인 것이죠. 또한 결과적인 현상은 같을지라도 그 원인이 히스테리로부터 기인된 것이라면 1차적인 대리만족인 경우가 많을 것이고 강박으로부터 기인된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강박증적인 형태는 좀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과거에 누렸던 만족을 회피하면서도 그것을 아주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 행위를 한 후에 후회나 고통이 따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아주 병적인 경우에 한해서지만 말이죠. 그 행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의 불안감이나 고통보다는 덜 하기 때문에 차라리 행위를 하고 난 후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다시 나르시시즘이 전제가 되는군요. 차라리 더 참을 만한 고통을 수용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중독 혹은 강박의 더 근원적인 원인은 무엇인가요?
‘분리’를 수긍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최초의 분리는 엄마와의 분리입니다. 그런데 그 분리를 수긍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분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 인간의 진정한 아이덴티티가 생기는 것인데 그것이 힘든 것이죠. 그래서 엄마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 노력을 해야만 엄마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심리적 논리가 자기도 모르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노력과는 관계 없이 모든 엄마는 (정서적으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발생하는 ‘분리’ 혹은 ‘심리적 결여’를 상상으로 메우는 것 중에 하나로 브랜드를 인지하는 현상인 것이죠. 즉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결여를 브랜드에서 찾아 메우면서 아이덴티티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이덴티티를 찾는다는 말인가요?
한 인간이 자신의 자아 내에서 ‘만족’와 ‘금지’라는 충돌되는 두 욕구를 컨트롤하다 보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상실해 버립니다. 그 두 가지 욕구를 원하는 것은 모두 나인데 어떤 것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잃어버린 아이덴티티를 무언가 다른 대리물을 통해서 자기에게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특정 브랜드에 집착하는 것은 그 브랜드를 통해서 자신에게 남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제공하면서 일종의 만족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차별성을 추구하면서 생기는 것이 아이덴티티라고 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특정 브랜드에 집착하는 것은 그 브랜드를 통해서
자신에게 남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제공하면서 일종의 만족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차별성을 추구하면서 생기는 것이
아이덴티티라고 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게 되면서 자신이 상상해 놓은 아이덴티티를 특정브랜드가 더 잘 표현해 준다면 그 브랜드에 더 큰 애착을 보일 수도 있겠네요. 브랜드 입장에서 명확한 차별화를 가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꼭 그러한 이유로만 특정 브랜드에 대한 강한 애착이 생기는 것 같지는 않는데, 또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물론 제가 말씀드리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해석이 많이 들어간 부분이 있으며, 말씀하신 것처럼 한 브랜드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이는 이유를 이 한 가지로 해석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되겠죠.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사람은 성장하면서 계속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자신에게 강박을 일으켰던 요인이 성장하고 성숙되면서 치유된다면, 과거에 강박을 일으켰던 요인 때문에 보였던 특정 브랜드에 대한 애착은 사라지게 될까요?
그것은 개인마다 너무나 다릅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습관’입니다. 습관에는 육체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적인 것도 있습니다. 과거에 강박의 원인이 되었던 ‘불안’이 운이 좋게 자연적으로 혹은 치료를 받아서 해결이 되었더라도 그 증상 자체는 습관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증상은 여전히 무의식적으로는 쾌락을 주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쾌락을 주었고 현재 자신의 의식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더라도 무의식적인 충족감을 준다면 인간의 뇌는 그 대상을 굳이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증상이 습관처럼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 대상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힘겨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상을 애써 바꾸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습관’입니다.
습관에는 육체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적인 것도 있습니다.
과거에 강박의 원인이 되었던 ‘불안’이 운이 좋게 자연적으로
혹은 치료를 받아서 해결이 되었더라도 그 증상 자체는
습관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단지(jar) 모형을 가진 바나나맛 우유가 생각납니다. 어릴 적 목욕탕에서 뜨거운 목욕탕을 이겨낸 ‘보상’으로 아버지께서 사주신 바나나 우유는, 더 이상 같은 이유로 구매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브랜드가 과거에 주었던 만족감이 각인되고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구매할 때가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브랜드에게 있어서 어릴 적 기억 속에 포지셔닝하는 것도 강력한 전략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 만족감이 출중했다면 심리적인 수고를 덜 하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상 그 브랜드를 반복 습관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할 테니 말입니다.
그렇지요. 개인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주는 첫인상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그것일 것입니다. 무언가 그런 인상을 남겨야 주어야 합니다. 열등감을 극복하게 해주었다거나, 불안을 해소해 주었다거나 하는 측면 말입니다. 그런 것을 많이 보여 주면서 어필하는 것이 광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브랜드는 인간의 리비도를 승화(昇華)시키는 한 가지 수단이 된다’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개인적인 만족을 찾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든 벗어날 수 없는 본능입니다.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죠. 그러한 욕구를 해결하고자 브랜드를 소비하거나 소유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수긍할 수 있는 명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승화’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고 봅니다. 승화라는 단어가 다의적으로 해석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충동·욕구를 예술 활동, 종교 활동 따위의 사회적·정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치환하여 충족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랬을 때 ‘브랜드’를 소비하거나 소유하는 것, 혹은 그 브랜드에 강한 애착을 쏟아내면서 리비도를 분출시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건강한 활동이 될 수도 있겠지만 ‘(승화의 사전적 정의처럼) 사회적·정신적 가치’가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정말 개인적인 가치관으로 해석해야 할 듯합니다.
 
물론 여러 브랜드들 중에서도 한 개인의 욕구 충족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브랜드가 있다면 그것은 말씀하신 명제에 가장 합당한 브랜드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브랜드는 소비 후에 뒤따르는 일종의 공허함까지도 상쇄시켜 줄 테니까요. 자신의 쾌락을 위한 행동이 더 의미 있게 사용되도록 돕는 브랜드라면 진정으로 강력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브랜드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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