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브랜드 부족의 원(原)을 그리다
문화 연구가가 보는 브랜드 부족과 마니아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이기형  고유주소 시즌1 / Vol.12 슈퍼내추럴 코드 (2009년 11월 발행)

영국의 문화 연구가였던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의 말처럼, ‘문화’라는 단어는 우리의 언어 중에서 가장 의미가 뚜렷하지 않고 복잡한 단어 중 하나다. 그만큼 문화라는 단어가 다양하고 넓은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터넷으로 인해서 같은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지역적인 경계를 넘어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실체를 밝혀 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브랜드 부족과 이를 이끄는 마니아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은 브랜드 문화라는 큰 영역을 파악하기 위한 첫 단계이자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전반적인 문화의 영역에서 이를 향유하고 있는 마니아들을 직접 만나며 질적 연구를 해온 경희대학교 이기형 교수에게 마니아들의 특성과 브랜드 부족에 대하여 들어 보았다.

The interview with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이기형
 
 
최근 문화인류학이나 대중문화 연구에서 ‘브랜드’가 주목 받는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브랜드가 문화라는 넓은 영역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반증인 것 같습니다.
고도로 소비화된 사회에서 살게 되면서 특정 브랜드가 어떤 이미지나 라이프스타일의 아이콘(참고 : p19)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문화라는 것이 굉장히 많은 주체와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역사적인 추이나 인류학, 사회학, 문화 연구에 이르는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브랜드는 특정한 취향 구조를 만들어서 문화 내에서 커다란 원(circle)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령이나 성향상 브랜드가 주는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회적인 기류나 분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고, 그런 기류에 브랜드가 주축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브랜드 파워나, 그 브랜드를 통한 자아의 현신現身 등을 꽤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문화연구를 하시면서 드라마 마니아 등 어떤 대상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정한 취향 구조 내에서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히 ‘마니아’라 불릴 만한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이 마니아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까?
마니아는 그리스어로 Maniα, 즉 ‘광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요즘은 일본어 ‘오타쿠(おたく)’로도 잘 쓰이고 있지요. 어떤 것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결국은 어떤 특정한 취미, 활동, 상품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거기에 특별한 열정과 열의를 가진 집단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드라마 마니아들의 경우 브랜드 마니아들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드라마라는 스토리 안에서 자신의 삶과 관련된 요소를 발견해 내고, 그 스토리가 주는 판타지를 소비한다는 점에서 브랜드 마니아와 유사한 점도 있습니다. 그들은 스토리에 대한 해석을 하고, 드라마에 등장한 지역을 직접 찾아가 보는 ‘순례’도 서슴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몰입하는 대상에 대해 전문가에 준하는, 또는 이를 넘어서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제도권 내의 전문가 집단과는 달리, 이 특정한 대상에 대해 알고 거기에 헌신한다고 해서 물질적인 이득을 얻거나 객관적인 지위상의 변화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몰입하고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미 만들어진 상품을 그저 소비하거나 이미지 메이킹 된 것을 취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그들 자신이 주체성을 가지고 이에 대한 지식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마니아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인터넷을 통해 네트워킹되고 결연되어 집단을 형성하고 어떤 공동체성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 질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
점성적 연구인 질적 연구는 양적 연구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대상의 질적 측면에 주목한 연구다. 주로 사회학, 사회심리학, 문화인류학 등에서 사용되는 연구 방법으로서 문서 기록 등의 연구 외에도 참여 관찰이나 내용 분석 등 각종 현장 작업들이 수반되는 조사 방법이다.

 

 

최근에 이런 마니아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인터넷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인터넷과 같은 물리적인 조건이나 제도적인 조건에서 마니아가 태동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지요. 사실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선택’이라는 것은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마니아가 된다는 것은 내가 어떤 물건을 선택하거나 거기에 열정을 가지고 그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전에는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고,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보통 개인이 스스로 힘이 강해졌음을 확인하는 행위인 동시에 희열감을 느끼게 만드는 일입니다.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본다면 팝이나 재즈, 클래식 등의 마니아라든가 커피, 혹은 특정 브랜드에 대한 마니아들이 무척 많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소비나 정보 측면에서 상당한 제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와 비교할 때 지금 훨씬 더 다양하고 세분화된 마니아 층이 생긴 것이지요. 

 

* 밴드웨건 효과
일종의 소비 편승 효과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하비 라이벤스타인(Harvey Lebenstein)이 발표한 자료(Bandwagon, Snob, and Veblen Effects in the Theory of Consumers' Demand, 1950)에서 처음 유래한 단어로 서부 개척 시대의 역마차를 보고 힌트를 얻은 것이다. 당시, 금광이 발견되면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가 탄 마차가 많은 대중을 이끌고 금광으로 몰려갔는데, 이와 비슷하게 유행을 따라 소비를 결정하는 현상이 바로 밴드웨건 효과다.

 

‘힘’이나 ‘희열감’에 대해 거론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브랜드는 일정 부분 계급적인 이슈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브랜드는 대량으로 소비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개인적인 애착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브랜드가 ‘아이콘’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고급스런 음향기기나 DSLR 카메라만 봐도 그렇습니다. 인터넷에서는 흔히 ‘장비병’이라고 말하는데 몇 백만 원, 많게는 천 만원을 호가하는 카메라에 투자하면서 자기 표출이나 자기 만족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 정도의 장비를 갖출만한 형편이 못되는 사람이 신용카드로든, 돈을 빌려서든 무리를 해서라도 그것을 갖추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영웅담처럼 돌고 있습니다. 특정 브랜드 제품을 자신이 어떻게 수집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나 스토리가 각각 존재합니다.
 
특히 아직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우에는 해외 여행이나 해외 옥션 등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얻게 된 상품이나 정보들은 차별성(distinction)까지도 획득하게 돼죠. 어떻게 보면 ‘서열’이고 계급적인 맥락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브랜드는 이제 자신의 자존심, 자기의 자아를 조각해가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에 대한 호불호나 개인적인 도덕적 판단은 다를 수 있겠지만 브랜드를 통해 마니아들이 자신의 우월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마니아가 개인적인 우월감이나 차별성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그들이 브랜드를 통한 공동체성이나 소속감을 가지는 특성과는 상충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브랜드 마니아’나 ‘브랜드 부족’과 같은 단어에서 공동체성이나 소속감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일텐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그래서 ‘마니아’나 ‘부족’이라는 단어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니아라는 단어가 전문가를 압도할 만한 지식을 갖되 자기가 헌신하는 대상에 대한 열의, 관심이 행위의 주를 이루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면, 부족은 좀 더 공동체적인 의미를 두는 단어인 것이지요. 마니아들은 자신의 헌신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고 해도 소속감이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족은 좀 더 소속감에 의미를 두는 집단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마니악(maniac)하다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자기가 헌신하는 대상 이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족이라는 경계 내에 속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여러 브랜드를 향유하거나 다른 브랜드로 이동도 가능한, 어느 정도 그럴 만한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니아보다 다소 넓은 의미의 단어가 ‘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부족이 형성되었을 때 이 부족의 내부에는 다른 부족원보다 더 열성적인, 마니아적인 열정을 가진 부족원이 존재할 것이고, 그 외부에는 이 브랜드가 단지 저널리즘, 대중문화 혹은 소비영역에서 인상적이고 흥미롭기 때문에 합류하게 된 부족원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마니아라는 단어가 전문가를 압도할 만한 지식을 갖되
자기가 헌신하는 대상에 대한 열의, 관심이
행위의 주를 이루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면,
부족은 좀 더 공동체적인 의미를 두는 단어인 것이지요.

 

 

브랜드 부족은 소속감을 전제로 하는 단어지만, 마니아도 포함되는 좀 더 넓은 의미의 단어이며, 그 내부에서도 소속감의 정도가 다른 여러 부족원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러한 브랜드 부족의 트라이벌리즘(Tribalism)을 좀 더 분석해 보기 위해서는 그들 개인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방법을 혼용할 수 있는데 개인 인터뷰, 포커스 그룹 인터뷰 이외에도 그들에게 일기나 자기기술을 요청하여 분석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서 살펴보면 마니아보다 좀 더 넓은 의미를 가지는 부족 내부의 부족원들은 더 다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웹진이나 블로그를 만들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열정적인 마니아들 외에도 그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에 관심은 있으나 아직 소비하지 않고 정보만 모으거나 관찰하는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만든 부족에 *밴드웨건 효과처럼 편승한 사람들이 없을 리 없죠. 어떤 경우에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 언제든지 충성도를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포함될 때도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나무의 나이테처럼 어떤 마니아를 주축으로 모이게 되고, 충성도가 강화된다면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점점 그 몸집을 확장해 가는 것이지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느슨한 소속감을 가진 브랜드 부족원들과 열정적인 마니아 부족원들 사이에는 열의의 차이가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열정이 남다른 사람들은 그만큼 브랜드에 대해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기도 하고요.
마니아는 일단 자신의 호감과 열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신의 영향력 유무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전에는 마니아 활동이 그저 취향이나 취미 정도로 용인되는 것이었다면, 최근에는 마니아가 직업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거에는 전문가가 되려면 대학에서 전공으로 공부해서 얻은 학위가 있어야 했고, 그래야 사회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대중의 인정을 받고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조명되고 나면 쉽게 공적인 전문가 영역에도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문가 집단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이지요. 영화 비평을 쓰거나 요리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구하기 어려운 카메라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특정 커피나 초콜릿에 대한 전문 지식을 보여 주는 마니아들은 이미 전문가 영역에 들어와 있는 것이고, 이들이 브랜드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전문가와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마니아들은 이제 주체적이고 활성화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많은 마니아들이 전문가 영역에 들어선 만큼, 브랜드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브랜드 부족과 마니아들을 더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할리데이비슨을 포함한 ‘브랜드 부족’이라 일컬을 만한 집단들은 의도치 않게 생성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브랜드를 만들면서 마니아나 부족층이 생길 것을 미리 알고 계획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적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많은 브랜드가 영화나 매체 등을 통해 어떤 문화나 트렌드의 아이콘이 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더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일단 브랜드 부족과 같은 집단이 생기고 나면 그들 사이에서 추앙되고 있는 브랜드가 어떤 점을 가지고 있을 때 진짜(authentic)인가하는 문제가 항상 거론된다는 점입니다. 할리데이비슨은 어떤 소리가 나야만 하고, 비슷한 DSLR 카메라도 각 브랜드마다 미세하게나마 색감이나 사진의 느낌이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다 그 때문입니다. 작은 차이를 캐치하는 것(참고 : p90)이 마니아들의 임무가 된 것입니다. 색감이나 셔터의 사운드, 카메라의 디자인, 들었을 때 전문가적인 느낌을 주는 묵직함이나 고전적인 카메라의 감성 등은 카메라 마니아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부분입니다. 마니아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예쁘다’, ‘예쁘지 않다’의 문제이겠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그들이 마니아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물론 한 브랜드에 빠지게 되면 타인이 왜 그 브랜드가 좋은지 이유를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자기 합리화적인 부분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이미 그들 사이에서는 이 브랜드와 다른 브랜드 사이의 차이를 극명하게 만들어 주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런 생각들이 마니아 활동들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그 생각이 ‘비상식적이다’, ‘비논리적이다’, ‘합리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워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니아들이 존재해야만 마니악(maniac)한 브랜드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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