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브랜드의 맥(脈)을 짚다
브랜드와 오라클의 유니폼 MㆍAㆍC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최아랑  고유주소 시즌1 / Vol.12 슈퍼내추럴 코드 (2009년 11월 발행)

All races, All sexes, All ages. 모든 인종, 성별, 연령에 구애 받지 않는 컬러. 여성 색조 화장품 중에서도 특별히 많은 컬러를 선보이고 있는 맥(M·A·C)의 키워드다. 그러나 패션쇼의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만이 이 많은 컬러를 알고,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브랜드 마니아, 오라클의 능력을 미처 다 알지 못하고 과소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누가 화장한 것만 봐도 맥의 제품인지 아닌지, 맥의 립스틱이라면 어떤 컬러의 몇 호 제품인지도 대충 알 것 같아요.” 이러한 신기에 가까운 브랜드 오라클의 능력은 그들의 개인적인 만족감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의 확산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한 브랜드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마니아들을 친근하게 느끼고, 이들과 함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브랜드를 알리고 있는 오라클은 누구에게든 그 능력 이상의 가치로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The interview with 맥(MAC) 마니아 최아랑

 

 

작은 차이가 주는 큰 만족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는 것처럼 맥 매장을 그냥 못 지나칠 때는 정말 제가 마니아구나 하고 느낍니다. 왠지 그냥 지나치는 것도 미안하고요. 어느 날 케이스를 책상 위에 펼쳐 놓았는데, 책상에 꽉 차더라고요. 그럴 때면 ‘내가 미쳤구나. 왜 이럴까’ 싶어요. 작년 겨울에는 극단적으로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인터넷을 돌아보면 저보다 맥을 더 많이 갖고 있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 분들 보면 저조차도 놀랍고 그걸 어떻게 다 샀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부러워요.”

 

전문가들에게 누가 ‘어떤 브랜드의 마니아’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들과 마니아들을 만났지만 모두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던 것처럼, 누군가가 어떤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것, ‘마니아’라 부를 만하다고 여기는 기준에는 개인적인 견해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마니아’라고 일컫는 사람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작은 차이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누가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잖아요. 그러면 제가 “너, 맥의 그 컬러 바른 거지?” 하면 대부분 맞아요. 맥에 관해서는 유난히 발달한 컬러 감각이랄까. ‘아, 저 여자 어떤 제품 발랐구나. 어떤 것들을 섞어 발랐구나’하고 떠올리게 됩니다. 립스틱 색깔 알아 맞히는 건 정말이지 신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아요. 전공이 미술이라 더 그런 것 같은데 맥의 색조 화장품을 모으는 것은 학교 다닐 때 물감을 모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남들은 잘 모르는데, 섀도도 제가 볼 때는 다 다른데 남들은 다 똑같다고 말해요. 저만 다르다고 느끼나 봐요. ‘역시 뭔가 달라’ 하고 생각하는 것도 제 만족인 것 같아요.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이 정도의 가격 차이로 내가 이 정도의 만족감을 느낀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는 다 다른데 남들은 다 똑같다고 말해요.
저만 다르다고 느끼나 봐요.
‘역시 뭔가 달라’ 하고 생각하는 것도
제 만족인 것 같아요.

 

 

코스메틱 브랜드 맥의 마니아처럼, 마니아들은 남들이 쉽게 알지 못하는 아주 작고 미묘한 차이를 큰 차이로 느끼고 행동하고 있었다.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 이기형 교수는 수차례 드라마의 마니아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질적 문화 연구를 해왔는데, 마니아들의 특성 중 하나가 이와 같이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만큼은 작은 차이도 크게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특성은 한 제품 군에서 다양한 컬러의 많은 상품을 내놓는 맥과 같은 브랜드에서도 쉽게 발견되는데, 오히려 이런 점들이 우연히든 혹은 브랜드 차원의 전략이든 마니아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한정으로 판매되는 제품이라든가, 약간 다르지만 새로운 제품들은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조금씩 마니아들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맥은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현재 가지고 있는 맥은 대충 구두박스 세 개 분량 정도 되는데, 다 쓴 제품은 *‘백 투 맥(Back to M·A·C)’을 해야 했으니까, 제품 용기가 없는 이전 제품까지 치면 더 많겠죠. 이런 맥의 ‘백 투 맥’ 같은 정책 때문에 계속 사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이것 또한 맥이 잘하고 있는 점 중 하나겠죠. 물론, 가끔은 제가 마케팅에 희생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아 놓은 제품들을 보면 뿌듯하죠. 새 제품이 나오고 나서 어렵게 그 제품을 구입했는데, 다음날 매장에 갔을 때 솔드아웃(Sold Out)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꼭 계 탄 느낌이랄까요. 혼자 남모르게 쾌재를 부르게 되지요. 그러고 난 뒤에 제가 블로그에 제품 후기를 올리면 다들 부러워합니다. 뿌듯한 마음이 배가 돼요.”

 

* 백 투 맥(Back to M·A·C)
맥은 제품을 사용한 뒤 빈 용기 6개를 모아서 가져오면 립스틱 중 하나를 선물로 주는 '백 투 맥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환경보호와 재활용을 위하여 빈 용기를 수거하고자 하는 취지로 시작되었으나 이를 위해서 맥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마케팅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다.

 

 

오라클 유니폼

어떤 이유에서건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욕구를 자극하여 지속적인 구매를 하는 마니아들을 만들려면, 우선 마니아로서의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소비자들이 먼저 자신의 브랜드를 선택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 점에 대해서 마니아들은 선택한 브랜드에 대한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이미지의 소비가 가능해야만 한 브랜드를 오랫동안 고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자들에게 코스메틱 브랜드들은 다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제 느낌에도 그렇죠. 크리니크가 의사 같다면, 키엘은 약사예요. 베네피트가 키치한 친구라면, 맥은 자기만의 느낌이 있는, ‘강한 여자’ 같죠. 제가 맥을 선택했던 이유의 반은 저와 닮았다고 생각해서고, 나머지 반은 ‘동경’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맥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의 스타일에 대한 동경을 말하는 겁니다. “맥녀 같다”는 말은, 검고 짙은 눈화장을 하고 맥 제품을 쓰고, 맥 립스틱을 바를 때 듣습니다. 옷은 어둡고 몸에 달라붙는 그런 스타일을 고수하는 여자들을 ‘맥녀’라고 부르는데, 저도 그런 이미지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지금은 저도 그런 얘기를 학교에서 듣는데, 그럴 때 ‘아, 진짜 내가 맥을 좋아하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죠. 사실 전 집에 가면 ‘건어물녀’라 할 정도로 화장을 안 해서, 했을 때와 많이 다르거든요. 그러다 화장을 하면 확 변하잖아요. 건어물녀에서 ‘맥녀’로.”

 

브랜드가 가지는 일관된 이미지는 브랜드가 만들기도 하지만, 이처럼 처음 브랜드가 보여 준 이미지를 자신과 일치시켜 자신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 브랜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의도치 않았어도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몸소 보여 준다는 점에서) 오라클의 역할이 크다 할 수 있다. ‘맥녀’같은 신조어나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그들이 브랜드가 유지하고 있는 일관된 스타일을 따라 화장을 하고 자신을 꾸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스타일을 가지는 마니아들은 오라클만의 브랜드 유니폼Uniform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다.

 

Uniform은 명사로 제복, 관복의 의미가 있으나 형용사로 쓰일 때는 ‘한결같은’ ‘동질의’라는 의미를 가진다. 오라클 유니폼은 이런 형용사적 의미에 가깝다. 마니아들이 좋아한 이미지는 다시 그 브랜드 마니아들만이 공유하는 ‘브랜드 스타일’, 즉 유니폼으로 재탄생된다. 《브랜드 : 세상에 파고든 유혹의 기술》의 저자 월리 올린스(Wally Olins)는 “역사적으로 볼 때 군인들은 소속감을 나타내기 위해 제복을 입었고, 성직자들은 위계질서에 맞게 옷차림을 했다”며, “이러한 옷차림은 문화의 일부분으로서 특정 계층을 상징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본래 유니폼이 한 회사나, 학교의 유니폼은 한 가치와 규칙,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공유된 브랜드 유니폼은 오라클들 자신이 한 브랜드의 일관된 가치와 규칙, 문화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종교 집단에서 사제의 제복이 그들의 신념과 믿음을 나타내는 것처럼, 유니폼을 ‘입음’으로써 이들은 다른 소비자들 혹은 잠재적인 소비자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대부분 이런 전파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좋아하는 오라클이 하게 되는 것이다.

 

 

본래 유니폼이 한 회사나, 학교의 유니폼은
한 가치와 규칙,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공유된 브랜드 유니폼은 오라클들 자신이 한 브랜드의
일관된 가치와 규칙, 문화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맥을 사용하고 화장이 바뀌면서 제 이미지가 맥과 비슷해진 것 같아요. 비슷한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기도 합니다. 메이크업 따라 옷을 맞춰 입고, 옷을 맞추면 슈즈도 맞추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제 스스로 ‘맥 스타일’이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맥 마니아들은 맥 하나 좋아하는 것뿐인데 스타일이 다들 비슷해서 취향도 비슷할 것 같고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여자들 모이는 모임에 가서 저희들이 결국 하는 얘기도 “그래도 립스틱은 맥이 제일 낫지?” 하는 겁니다. 별로 안 친했는데 립스틱 하나 때문에 색깔도 서로 물어보면서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맥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 나와 성향이 비슷하구나, 나랑 코드가 맞는구나’ 하고 짐작해요. 새로 알게 된 여자가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브랜드의 립스틱을 바르면 배신감도 느끼거든요. 맥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친구 같습니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맥을 사용해야 ‘역시 내 친구다’ 하는 멘트가 나오죠. 여자들끼리 모였을 때 화장을 같이 고치다가 맥을 발견하면 매번 대화 주제가 되어서, 새로 나온 상품 이야기를 하면 삼십 분은 그냥 지나가요.”

 

“사람들이 “언니 이거 좋아요?” 하고 물어 보는 쪽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장대가 따로 있는데도 제가 쓰는 화장품은 다 책상에 갖다 놔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혹 카페나 블로그에서 그 제품 어떠냐는 질문을 받으면 바로 제품을 꺼내서 열어 보고 설명해주곤 하거든요. 또 하나는 권해요. 립스틱이 많다보니 누군가, “나 무슨 색 발라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면 “내가 골라줄게, 내일 가져올게” 하고 집에 돌아와서 화장품을 챙겨요. 다음날 가지고 가서 “이거 발라봐” 하면 친구들이 다 마음에 들어 하거든요. 또 그 친구가 맥을 사게 되면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제품 기능까지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고 나면 친구들이 저보고 직원 같다고 말해요.”

 

유니폼이 갖는 역할은 소속감의 부여다. 더 넓은 의미이긴 하지만, 브랜드 유니폼이 가지는 역할도 비슷하다. 이렇듯 소속감을 느끼는 마니아들은 오라클의 역할에 더 큰 동기부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브랜드를 설명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브랜드와 자신이 Uni-(하나의) form(형태)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과 브랜드를 하나로 느끼는 마니아가 있다면, 그 마니아가 어떤 오라클이 될지는 예상이 가능하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데 자신감을 가지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갑은 안 챙겨도 파우치는 꼭 챙겨요. 아침에 파우치 챙겨야지 하면서 정작 지갑을 안 챙겨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전에 어두운 장소에서 맥 브러시 하나를 잃어 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마음이 너무 애잔했습니다. 남들은 왜 브러시 하나로 그러느냐고 나무라기도 하는데 저는 너무 속상했어요. 해외에 나가서 맥을 사 올 때도 짐 가방에 넣어두지 않고 기내에 들고 탔어요. 왠지 몸에 지녀야 할 것 같아서요. 어쩌면 남들이, 그리고 맥조차 저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맥을 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맥과 하나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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