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의자들의 철학적 반란, Leicology
진중함이 만들어내는 슈퍼내추럴 현상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한재형  고유주소 시즌1 / Vol.12 슈퍼내추럴 코드 (2009년 11월 발행)

“아프리카에서 흑수열에 걸렸는데 프랑스로 돌아온 뒤에 천천히 호전되었다. 마르세유에서 약간의 수입으로 즐겁게 작업했는데 그때 라이카를 알게 되었다. 라이카는 내 눈이 되었고, 나는 라이카 카메라를 발견한 이후 한 번도 그것과 떨어진 적이 없다. 나는 라이카와 더불어 언제든 셔터를 누를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로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있는 그대로 생생한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내 눈앞에 펼쳐지는 삶 속에서 어떤 상황의 본질을 통째로 단 한 컷의 사진에 포획하기를 간절히 열망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일상을 투명하고도 따뜻하게 그려 내면서도 짜릿한 여운이 감기도록 필름에 담는 프랑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그의 책에서 밝힌, 라이카에 대한 단상이다. 라이카의 어떠한 매력이 그로 하여금 라이카를 자신의 눈으로, 삶의 중심으로까지 여기게 했을까? 본질을 잡아내는 ‘결정적 순간(그의 책 제목으로도 유명한 이 표현의 원래 표기는 ‘Images a la Sauvette’ 즉, ‘재빠르게 잡은 이미지’이다)’을 잡아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위한 훌륭한 동반자가 되었던 라이카는,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또 한 사람의 가슴속에 비슷한 열망을 꿈꾸게 하고 있었다.

The interview with 라이카 마니아 한재형

 

 

보통 라이카는 카메라 유저들의 로망이라고 불리곤 합니다. 한재형 님께도 라이카는 로망이었나요?
라이카 자체가 저의 로망은 아닙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 로망이죠. 라이카는 저의 그러한 로망을 가장 잘 이해하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05 몇몇 사람들이 라이카라는 객체 자체를 로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모아서라도 라이카를 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라이카를 갖는다고 그 사람의 꿈이나 로망이 완성될까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카메라를 가지고 찍든 그 카메라를 충분히 이해하고 성실하게 찍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사체를 향해 셔터를 계속 눌러대거나 연속 촬영 기능에 익숙해진 요즘인데, ‘사진을 찍을 때의 성실함’이라는 표현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기본적으로 자기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라이카를 처음 만났을 때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과연 내가 이 친구와 동반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첫 대면 전에 라이카 공부만 1년 이상 했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이카에 관심이 갔고 사고 싶어졌는데 아무래도 고가이다 보니 사전 조사가 필요했던 것이죠. ‘열흘 정도 알아보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만큼의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초보임 / 현재 예산 000원 / 구성 추천 부탁’이라는 글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라이카를 사려는 사람이 커뮤니티 내에 있는 그 방대한 자료를 성실히 둘러보지도 않고 예산 내에서 어떻게든 라이카 하나를 거머쥐어 보겠다는 심산 같아서 말입니다. 솔직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이카에 상당히 매료되신 것 같습니다. 라이카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라이카는 유기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에 자신의 감정을 가장 많이 담을 수 있게 허락하는 카메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라이카는 사용자를 ‘사색’하게 만듭니다. 경망스럽지 않죠.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피사체를 어떻게 표현해 내고 싶은지를 저에게 물음으로써 제가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작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언제나 충분히 열어 놓는 카메라라는 것입니다.
 
여유, 그리고 독특함, 결정적 찰나의 순간에 전자적, 기계적 도움을 최대한 배제한 상태에서 예술적 정서를 표현하게 해주고 그 모든 것이 ‘절제’에 의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게 해줍니다. 다른 카메라 브랜드들도 굉장히 좋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찍어 놓고도 나도 이것이 나의 능력인지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것이 라이카가 가지고 있는 클래식함의 매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의합니다. 주관적으로 볼 때 가장 ‘클래식함’의 매력은 인간의 심장 박동 리듬과 비슷한 웨이브를 탄다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다른 카메라들은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보고서 셔터를 반쯤 누르는 순간 바로 기계음을 내면서 초점을 맞춰 줍니다. 너무 빠르기도 하고 나보다 앞서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라이카를 쓸 때는 제가 모든 것을 수동으로 천천히, 같이 맞춰 나갈 수 있습니다. 함께 호흡하면서 한 몸이 될 때 셔터를 누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라이카 제품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나요?
바디가 4대, 렌즈가 7개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배신하지 않기 때문에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신하지 않는다’라니오?
커뮤니티를 보면 지금도 20~30년 된 라이카 제품을 쓰고 있는 유저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라이카는 시간이 흘러도 카메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견고히 제작되어 있습니다. 여타 다른 브랜드가 다음 모델로 업그레이드됐을 때, 앞서 나온 것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배신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라이카는 업그레이드가 되더라도 단순히 가격을 올리고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특색을 달리해서 나옵니다. 즉 어떤 모델이 더 좋다 나쁘다라는 개념이 아니라 단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의 기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항상 새롭고 여러 개의 길을 제시해 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제품들도 지속적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제품이 나와도 조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가지고 있는 4개의 바디 중 2개는 현재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제가 더 성숙해져서 그들이 저를 받아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제가 감히 건드리기에, 겁이 납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종에서도 시도 해 보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4개의 바디 중 2개는 현재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제가 더 성숙해져서 그들이 저를 받아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제가 감히 건드리기에, 겁이 납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종에서도 시도 해 보지 못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라이카와의 추억은 무엇입니까?
너무 많지만 라이카의 철학이 담긴 생김새 때문에 있었던 일 중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라이카에 네팔의 아이들을 담고 싶어서 촬영을 갔습니다. 무리 없이 촬영이 잘 되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는데 나중에 현지 코디네이터가 말하길, “사진이 참 좋네요.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커다란 렌즈가 부착된 카메라를 가지고 왔으면 이런 순수한 사진은 찍지 못했을 거예요”하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 덩치 큰 카메라는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고 거부감이 들어서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여 주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준 경험이었습니다.

 

그러한 긍정적인 체험이 라이카라는 대상에 더 중독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중독이라는 표현보다는 믿음에 대한 확신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동시에 제 안에 녹아 있는 저를 라이카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중독이라 함은 나와 유리된 그 어떤 것에 대한 감정인데 저와 라이카는 이미 한 몸입니다. 만약 제가 라이카와 보내는 물리적 시간으로 중독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 것이라면 그것은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서적인 심리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아닙니다. 오히려 라이카는 저를 의존적인 존재가 아닌 안정적이고 성숙한 존재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재형 님의 완성을 돕는 대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라이카는 저의 예술적 창작 욕구를 유일하게 해소시켜 주는 도구입니다. 저는 그림도 못 그리고 음악적 자질도 떨어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라이카를 잡는 순간 저는 바로 아티스트가 됩니다. 저의 감정, 정서, 관점을 표현해 주면서 저를 고민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성숙시켜 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완성을 돕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건 라이카는 상당히 고가의 제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하는 이유는 라이카가 인생의 조력자이자 동반자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금전적 희생은 감수할 수 있겠다는 의미인가요?
희생 또는 헌신이라는 표현은 제가 받는 대가가 없을 때 적용되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일방적인 희생이나 헌신을 한 적은 없습니다. 항상 저에게 주는 것이 더 많은 친구이기 때문에 제가 더 적극적일 뿐입니다.

 

다른 라이카 사용자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 말씀드렸던 내용은 모두 저의 개인적인 생각들입니다. 라이카를 사용하시는 분들의 생각을 일반화하는 것은 너무 위험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라이카를 사용하는 분들은 모두 주관이 뚜렷하신 것 같아서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라이카와 닮은 브랜드를 꼽자면 어떤 브랜드를 꼽겠습니까?
제가 기자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나중에라도 라이카와 닮은 브랜드를 발견하시면 저에게 꼭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이콜로지(Leicology)에 전염된 무리들은 그 이념에 증거가 되었던 전설적인 영웅들의 일대기를 보며 자신의 삶의 규칙을 세우고, 신념을 확신하며 더욱 공고히 다져 나간다. 시간적, 공간적, 정서적으로 멀리 떨어진 전설 속의 작가와의 연대감을 느끼며 라이카라는 브랜드에, 그리고 그 제품을 사용하는 자신에게 자신감과 열정을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도 언젠가는 그러한 영웅이 될 것을 꿈꾸면서 말이다.

 

 

스크랩 이메일 인쇄 아티클을 모두 읽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 브랜드 케이스, 카메라 브랜드, 브랜드 마니아, 슈퍼내추럴 현상, 브랜드와 이데올로기, 소비자 자아, 브랜드 의인화, 아프락사스 신드롬, 애착, 동일시

라이카(Leika)

관련배지

* 이 아티클을 읽을 경우 획득할 수 있는 배지 리스트입니다. (배지란?)

관련아티클

Commodity에서 Identity로... 카메라 보급률 80%의 시대. 각 제조사는 ‘플라스틱과 유리의 조합으로 카메라(commodity)’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브랜드 ...

유니타스브랜드 문의

About Us

찾아오시는 길

교육, 컨설팅, 제휴 문의

  • 070-5080-3800 / ahneunju@stunit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