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고고학자, 박물관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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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육영완  고유주소 시즌1 / Vol.12 슈퍼내추럴 코드 (2009년 11월 발행)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입 다물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내게 지혜가 전수된다면 나는 거부하겠다. 무엇이든 나누지 않고 소유하는 데는 기쁨이 없다." - 세네카. 마니아를 만나러 찾아간 곳에서 지포라이터는 비슷한 테마끼리 모아진 채로 벽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것은 지포라이터라는 브랜드의 약 80년 역사이기도 하고, 그것을 마치 고고학자가 탐사하듯 오래된 상점을 돌며 찾아내고 모아온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마니아는 이렇게 모은 지포라이터로 박물관을 만들 꿈을 꾸고 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이 지포라이터들이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 유산으로 전해질 것이다. 브랜드를 모으는 마니아들. 그들이 찾아낸 브랜드 유산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도 나눠 가질 예정이다. 그 꿈이 브랜드 고고학자들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고 있다. 브랜드는 이런 브랜드 고고학자들로 인해 다음 세대로 그 생을 이어갈 것이다.

The interview with 지포라이터 마니아 육영완

 

 

지포라이터, 이야기를 담는 도화지

1932년 태어나, 일반적으로 가로 37mm, 세로 55mm 크기로 만들어지는 지포라이터는 지포 사에서도 정확히 몇 종이 생산되는지 모를 정도로 현재 120개국 이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소재나 디자인은 각양각색이지만 지포라이터는 소유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특별한 기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지포라이터가 군인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은 것은, 그것이 바람이 불어도 불이 잘 꺼지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가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 도화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군인들에게 지급되었던 지포라이터는 전쟁 시에 각 병사들이 라이터 표면에 자신의 좌우명을 새겨 넣고 소중히 간직하는 문화로 정착되었다. 전쟁 중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데 지포라이터는 없어서는 안 되는 신념과도 같았다. 베트남전에서 적과 교전 중이던 한 중사는 윗옷 주머니에 넣어 둔 지포가 총알을 막아주어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중사의 목숨을 구한 이 지포라이터는 놀랍게도 총알을 맞고도 고장 나지 않고 작동되어 <라이프>지에 실리면서 지포라이터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되기도 하였다. 브랜드가 생겨난 이래로 지금까지 5억 만개 이상 판매된 이 라이터는 군인뿐만 아니라 이제는 지포라이터를 수집하는 사람들에게도 소중한 의미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처음 받은 돈으로 뭔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던 찰나 문득 길을 가다가 눈에 띈 것이 지포라이터였습니다. 처음에는 멋있어 보여서 구입했는데, 그때 만져 보고 일종의 컬처 쇼크를 받았죠. 차가운 금속 질감, 묵직함이 저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의미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한두 개씩 모으다 보니 지금까지 왔죠.”

 

육영완 씨는 약 250~270개 정도의 지포라이터를 가지고 있다. 지포라이터 수집은 개인이 정한 특별한 테마에 따라 모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은 각각의 차이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다른 지포라이터를 모으는 그는, 다른 마니아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이 라이터들의 차이를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줄 만큼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브랜드가 생겨난 이래로 지금까지 5억 만개 이상 판매된 이 라이터는
군인뿐만 아니라 이제는 지포라이터를 수집하는 사람들에게도
소중한 의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포라이터를 발굴하다
“각각이 모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라이터 소재가 순동인지, 합금인지 아니면 솔리드 티타늄인지 등에 따라서도 다르고 어떤 테마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크게 다르죠. 마니아들은 저마다 자신이 정한 테마에 따라 제품을 고르는 개인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공통점은 이 모두가 각각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니아들은 하나 하나를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자신이 그 지포라이터를 언제 어디서 구입했는지, 누구와 함께 갔는지, 그것은 자신만이 가진 이야기죠. 지포라이터 자체도 한정품이냐, 기념 모델이냐, 어떤 디자인이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저희도 그것 하나 하나에 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라이터에 더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지포라이터를 구입하러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는 것을 ‘투어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지포 사는 처음 라이터를 만들면서 시행했던 라이프타임 개런티, 즉 망가진 지포라이터를 수리해 주는 평생보증제도를 시행하였고, 바람이 불거나 심지어 선풍기 바람 앞에서도 잘 꺼지지 않는 특별한 라이터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이들이 ‘투어’까지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일까.

 

“투어는 하나 하나가 다 기억에 남습니다. 예를 들어, 이 지포라이터는 제가 한창 수집에 열이 올라 있던 대학 2학년 때, 부천 지하상가로 혼자 투어를 가서는 문 닫고 있는 가게 주인을 문도 못 닫게 잡아 두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구입한 것입니다. 또 이 지포라이터는 판매량이 저조해서 국내에는 많이 소개가 안 됐어요. 그런데 제가 잡은 테마에 딱 맞는 것이라 해외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도 없고, 영국에도 없고, 아일랜드까지 뒤졌더니 인터넷에서 이런 지포라이터를 소량으로 판매하는 쇼핑몰이 있더라고요. 해외 배송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찾은 것은 처음이라 보통 애착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어렵게 지포라이터를 발굴하는 것이 개인적 만족감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를 비롯한 많은 수집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개인적 만족감에는 시리즈나 테마를 하나도 빠짐없이 ‘완성’할 때 느끼는 만족감이 항상 포함된다. 그래야만 온전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수집가의 이러한 심리는 공백공포(Horror vacui)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용어는 한 곳이라도 빈 공간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 때문에 그 공간을 채우려고 하는 심리를 말한다.

 

“이 라이터는 1992년부터 하나씩 나온 지포라이터인데 제가 바로 그 해부터 모은 게 아니거든요. 그렇다 보니 중간 중간 한 해씩 빠진 경우가 있어요. 벌써 단종되어서 구하기 힘든 것들이 있는데, 이걸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 라이터를 찾아 다니게 됩니다. 인터넷이 있어서 예전보다 쉬워지긴 했지만, 어떤 것은 매우 찾기 힘들기 때문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 둘 셋이 모여서 경기도 지역이나 지방에 있는 지하상가들을 찾아 다닙니다. 남대문은 도매가 많고, 서울에 있는 지하상가는 이런 것들이 빨리 팔려 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투어를 다니거나, 출장 가는 분이 있으면 부탁을 하곤 합니다. 그 하나를 찾아내어 컬렉션을 완성했을 때의 만족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과연 이것을 찾을 수 있을까, 다음에는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매번 보물 찾기를 하는 느낌입니다. 막상 찾지 못해도 항상 설레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음 투어를 계획합니다.”

 

 

그 하나를 찾아내어 컬렉션을 완성했을 때의 만족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과연 이것을 찾을 수 있을까, 다음에는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매번 보물 찾기를 하는 느낌입니다.

 

 

그는 마치 인류가 남긴 흔적들을 땅에서 발굴해 내는 고고학자(Archaeologist)와 같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고학은 역사학과는 차이가 있는데, 인류가 남긴 흔적과 사건들을 기록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역사학이라면, 고고학은 사라졌거나 혹은 주변에서 보기 힘든 것들을 찾고, 이를 발굴하여 역사의 증거를 모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고고학은 인류가 살았던 현장에서 그 탐험이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역사학자보다는 고고학자와 닮았다. 브랜드의 역사를 담은 지포라이터를 하나 하나 현장에서 찾고 발굴하여 수집하는 것이다.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하면 그것들은 더 이상 역사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가치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우리가 유물과 유적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니아 회원님들과 가끔 하는 이야기인데, 저희도 궁금해서 자주 ‘왜 지포라이터를 모을까’하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중에서도 지포라이터에 대한 역사적 신뢰감 때문이라는 말을 많이 해요. 올해로 77년입니다. 77년 동안 지포라이터의 시스템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제 두 번째 테마도 지포의 역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디자인으로 봤을 때 더 완성된 디자인이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오롯이 브랜드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지포라이터, 그리고 고고학자
“지포라이터는 단아하면서도 심플합니다. 지포라는 브랜드를 생각하면, 굉장히 고집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일관성 있는 디자인으로 몇 십 년 동안 이어온 것만 본다면 변함없이 고집을 유지한다는 것이 다르게 말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지포라이터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포가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포는 최근 많은 여성 고객과 새롭게 등장하는 젊은 고객들을 위해 기존의 클래식한 디자인 이외에도 스와로브스키와 콜레보레이션을 통한 크리스털을 접목시킨 제품을 제작하거나, 여성적인 디자인을 도입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니 마니아들의 입장에서는 지포라이터가 혹여 초기부터 지켜온 기술적인 장점에 이전만큼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할까봐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시도도 중요하지만 일관된 품질에 대한 자부심은 특히 브랜드의 마니아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디자인이나 색상도 물론이지만 변하지 않는 기술의 일관성이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_ 씽크패드 마니아 김학봉

 

“지포라이터는 그 자체로 ‘완성’된 제품입니다. 이런 일관성을 지켜 왔다는 것 자체가 증명하고 있지요. 그런 일관성에 저희도 매력을 느끼는 것입니다. 더 이상 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한 상태로 만들어진 제품이죠. 이미지 변화도 좋지만 제품 자체의 완성도에 앞으로도 더 많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사학자였던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그의 저서를 통해 역사가 하는 미래에 대한 예언이 항상 옳을 수는 없지만, 역사를 추적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위한 타당하고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 43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이 그러하듯, 역사 또한 과거를 통해 일정한 흐름을 읽고, 이로 인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역사학자, 고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브랜드 고고학자에 해당하는 이들 수집가들의 의견을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지포를 수집하면서 지포의 역사를 밝혀 내고 알아 가는 브랜드 고고학자들은 브랜드의 과거를 살펴보면서 그 브랜드의 미래를 그려 본다. 그리고 그간의 흐름을 통해 미래를 그려 보는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포가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01년 지포가 세계적으로 경영난이 많이 심각해지고 난 이후에 라이터 제작이 자동화되었어요.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사람이 잡아 낼 수 있는 초기 불량이 좀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지포라이터를 처음 만든 조지 블레이스델(George G. Blaisdell)의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포라이터의 핵심 부분인 인서트의 바디와 판을 붙이는 기술이 굉장히 어려운데, 예전에 이 때문에 한 번 불량이 생긴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는 6개월 동안 생산라인을 정지시키고 개선을 위해 이것만 연구했습니다. 그런 고집스러움이 지금의 지포를 있게 한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지포도 그 고집을 이으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지포라이터, 그리고 위대한 유산
“저희는 지포라이터를 테마별로 액자에 보관합니다. 사실 수집을 하다가 액자에 지포라이터 하나가 들어갈 공간이 남았을 때, 그것을 한번 채워 넣고 나면 그 자리는 마치 블랙홀 같습니다. 한 번 넣으면 안 빠져요. 어떤 분들은 원하는 만큼 줄 테니 자신에게 팔라고 하실 때도 있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죠. 이건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사무실 공간은 저 혼자만의 공간이잖아요. 벽에 이렇게 걸어 두고, 작은 조명 하나만 켜놓고 보면서 소주 한 잔 하면 흐뭇하고 좋습니다.”

 

이렇듯 열정을 가지고 브랜드를 찾아 나서고, 수집하고, 흐뭇해하는 이들에게도 꿈이 있다. 바로 미래를 위해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이들의 박물관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제가 이렇게 수집품을 다 꺼내서 보여드리는 것도 일종의 자랑입니다. 제가 어떤 것을 모았는지 다 아시는 마니아 분들께 보여 주는 것과, 제 수집품과 지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느낌이 달라요. 이렇게 개인적인 만족감도 있지만, 다른 꿈 하나는 이 모든 것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어서 지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저처럼 지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마니아들 중에서 누군가가 “우리 지포 박물관을 만듭시다”라고 한다면 다들 기쁜 마음으로 위탁할 겁니다.”

 

브랜드 고고학자에게 브랜드는 그 자체가 ‘유산’이다. 그는 ‘마음 아픈 일’이라며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해외에서 한 할아버지 마니아가 희귀하고, 구하기 힘들며, 비싼 지포라이터를 헐값에 옥션에 내놓았다고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마니아 카페의 한 회원이 직접 메일을 보내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수집한 라이터를 헐값에 내놓았냐는 말에 그 할아버지는 “지포라이터를 유산으로 손자에게 물려주고 싶었는데, 정작 손자는 지포라이터보다 스포츠카를 더 갖고 싶어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수십 년을 모아 온 지포라이터를 팔아 손자의 스포츠카를 사주겠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들 지포라이터 고고학자들에겐 감동이라기보다는 안타까움이다. 그래서 박물관에 대한 이들의 꿈이 더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안타까움이 큽니다. 마니아들 중에도 나이가 드신 분들이 많습니다. 예순을 바라보시는 분들도 많고, 아드님이 곧 결혼을 앞둔 분들도 있죠. 그분들은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애정을 가지고 모아왔던 지포라이터가 그저 개인적인 소유가 되는 것보다는 더 값진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많습니다. 저희에게 지포라이터는 이제 그냥 수집품이라기 보다는 저희에게는 파트너와 같습니다. 오래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정이 들고, 손봐준 만큼 제 성능을 다해 주는 파트너죠. 그런 파트너가 저보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포라이터와 같은 브랜드를 수집하는 고고학자들의 공통점은 이미 단종되었거나 찾기 힘든 제품들도 그저 과거의 것으로 묻혀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즈니스 지니어스》의 저자 피터 피스크(Peter Fisk)는 브랜드가 고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네 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그 네가지는 고객이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 고객이 원하는 커뮤니티에 소속시키는 것, 그리고 고객이 추구하는 일을 더 훌륭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것, 고객을 현재와는 다른 인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받은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확실히 지포(Zippo)라는 브랜드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박물관을 꿈꾸는 브랜드 고고학자를 몇 가지 방법으로 도운 셈이다.

 

물론 이들은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수집을 시작했고, 수많은 탐사와 발굴 과정을 통해 개인적인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수집한 브랜드의 제품들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소유로 끝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과 ‘최고’의 것들로 꾸며지는 박물관에 그들의 ‘파트너’가 전시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그들 또한 소유하지 않고 나눔으로써 얻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그것을 계획하고 있다.

 

 

컬렉터의 심리를 엿보다
“미국 드라마 <레스큐미(Rescue me)>는 뉴욕의 소방대원 이야기인데, 화재 장면이 많이 나오다 보니 이 드라마를 한 번 보고 나서는 노이로제 아닌 노이로제에 걸렸어요. 혹시 집에 불이 나진 않을까 해서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밸브를 잠그고, 다시 확인합니다. 제가 모아 둔 모든 것들이 집에 있거든요. 얘들을 잃으면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게 될지도 몰라요.”
 
카메라에 반했다고 말한다. 특정 브랜드가 아니라 ‘예쁜’ 카메라가 좋아서 가리지 않고 모으기 시작한 것이 벌써 서른여섯 종류가 넘는다. 뿐만 아니라 모은 카메라의 피사체가 되어 주는 브라이스 인형은 86개 정도 된다. 이 브라이스들의 가발은 30개가 넘고, 인형 신발도 100켤레 이상이다. 특정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형과 카메라를,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수집하고 있었다. 왜 그녀의 고백과 같은 슈퍼내추럴한 현상이 그녀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카메라를 수집하게 되었습니까?
같이 여행을 다니던 언니들까지 4명이 여행을 가면 항상 카메라를 가져와서 사진을 찍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찍어서 나온 사진 네 개를 비교했을 때 제 사진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좋아하고, 똑같이 찍은 건데도 잘 찍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신나는 거예요. 그래서 ‘더 잘 찍으려면 더 좋은 카메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사다 보니까 수집하게 되었어요. 벌써 카메라만 36개 정도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제품을 구입하고 수집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계속 수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그러니까 뭐랄까, 남들은 술도 안 마시고 연애도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묻는데, 저는 카메라 모으는 재미로 산 거 같아요. 물건들을 소유하면서 얻게 되는 기쁨도 물론 있고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예쁜 카메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TV를 보다가도 마음에 드는 카메라가 있으면 어떤 제품인지 이름을 찾아내서,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까지 알아냅니다. 그렇게 못하면 계속 눈에 밟히거든요.
 
그렇게 매번 어렵게 구입한 카메라 중에서도 특별한 사연을 가진 카메라가 있습니까?
랜드 190이라는 카메라가 있어요. 폴라로이드 동호회에서 어떤 분이 그 랜드 시리즈에 대해서 알려 주셨어요. 국내에서는 구할 수가 없고 해외 이베이eBay 같은 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 카메라가 모양이 접으면 가방 같고, 펴면 카메라가 되는 거라서 ‘안찍혀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구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 그 카메라가 일본 야후 옥션에서 경매 중인 것을 발견했어요. 일본에 유학 중인 친구 ID로 경매에 참여했는데 같이 경매에 참가한 사람이 계속 고가를 불러서 서른 번도 더 넘게 경매가 연장이 되는 거에요. 제가 일본어도 못하는데, 너무 애가 타서 ‘제가 가져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일본어를 히라가나 발음 그대로 알파벳으로 옮겨 댓글을 달았어요. 그렇게 어렵게 도와달라고 애원했더니, 그 사람이 다시 입찰을 안 하는 거에요. 그렇게 한 15만 원이 더 올라간 가격으로 제가 구입할 수 있었어요, 한 달 뒤쯤에 친구네 일본 집에서 다시 한국으로 배송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그걸 내 손에 넣는 순간, 그 기분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카메라를 모으면서 브라이스 인형도 모은다는 것이 다른 수집가들과는 다른 독특한 점인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모을 때와 인형을 모을 때는 다른 감정인가요?
네. 제가 어렵게 아르바이트하고 15만 원이라는 돈이 생겼던 적이 있었어요, 어렵게 번 돈이라 이 돈은 가치 있는 것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원래 갖고 싶었던 브라이스 인형을 찾아 옥션을 뒤졌어요. 당시 하나에 20만 원 정도 했었는데, 중고로 11만 원 정도 하는 인형을 발견하고는, 그 날 밤을 새서 기다렸다 논현동에 가서 그 걸 사가지고 왔어요. 그게 처음이었어요. 그때의 뿌듯함이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 내가 이렇게 힘들게 고생해서 산 인형이니 만큼 평생 있지 못할 친구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카메라와는 다른 계기였고, 다른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각기 다른 이유에서 모으기 시작했지만 결국 만족감을 극대화시킨다는 점에서는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겠네요.
제 방 귀퉁이에 사물함이 있어요. 거기에 비싼 카메라들을 집어넣고 자물쇠로 채워놓거든요. 제 나름대로의 보물창고인 것 같아요. 수집품들 때문에 어느 날은 막 행복하다가, 집에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면 너무 우울해져요, 이것을 모두 다 한 순간에 잃는다면 못 살 것 같거든요. 정말 사랑하는 감정 같아요. 이미 말을 할 때도 ‘쟤들은’ 이렇게 부르면서, 어느새 그것들을 의인화시켜서 생각하고 말해요. 그만큼 저한테 그냥 물건은 아닌 것 같아요.
 
의인화가 일어나는 것은 인간적인 속성이 사람들에게 친숙하기 때문이고, 대상을 인간으로 대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쉽게 생기거나 없어지는 애착은 아닐 것 같아요.
이제 제 카메라와 인형들은 물건 이상이기도 하고, 동시에 제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도 생각합니다. 처음에 부모님이 수집을 많이 반대하셨는데, 나중에 여건이 된다면 카페나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하니까 이제는 반대 안 하세요. 저와 이런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가 만든 그 장소를 사랑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모으고 있습니다. 카메라나 인형 둘 중에 하나만 모으지 그러느냐는 분들도 있지만, 이렇게 모으다 보면 저만의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들 수집가들의 공통점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항상 수집하는 대상에 대한 첫인상이나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둘째, 수집 자체로도 충분한 만족감과 재미를 느끼고 있다. 셋째,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충분히 기울인다. 넷째, 대상을 ‘제품 혹은 물건’ 이상의 가치로 대한다. 다섯째, 마지막으로는 대상을 통해 나와 타인을 위한 선한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수집은 보통 자기 통제나, 상실감 혹은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욕심으로 간주될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수집되는 브랜드를 통해서나, 이를 통해 맺은 타인과의 인간관계 같은 것으로 브랜드가 계속 회자되면서 영속성을 갖게 되고, 또 이것이 어떤 이의 꿈을 자극해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만들어진다면, 수집은 더 이상 공허하거나 허황된 욕심이 아닐 것이다.
 
정신적 에너지(Libido)를 사물과 인간에게 향하도록 하고, 그것을 자신을 위해 활기차고 아름답게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 세상은 공허하다. - 카를 융, 《Uber die Lie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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