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경우의 수, 레고
C-code factor : M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공민식  고유주소 시즌1 / Vol.12 슈퍼내추럴 코드 (2009년 11월 발행)

1분당 생산되는 레고 부품의 수 3만 6,000개(연간 190억 개) 1초당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레고 세트 7개(24시간 내내 판매된다면, 60만 4,800개) 1년 동안 판매된 레고 블럭을 일렬로 세운다면 지구에서 달까지 연결 가능 연간 타이어 생산 1위 업체(매년 3억 600만 개) 전 세계 어린이들이 1년간 레고를 가지고 노는 시간의 합, 50억 시간(57만 년) 1949년 이래 생산된 레고 부품의 수 4,400억 개(지구에서 달까지 5번 왕복) 전 세계 레고 미니피겨(사람 모양의 인형) 수 40억 명(지구 인구의 2/3 수준) 위의 내용은 레고가 가진 믿기 힘들만큼 놀라운 슈퍼내추럴 기록이다. 레고(Lego)는 ‘잘 놀다’를 의미하는 두 개의 덴마크어 ‘leg godt’의 약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레고(혹은 레고의 유사품)를 가지고 놀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그 레고는 오늘, 우리 아이들이 또 가지고 놀고 있다. 1932년에 설립된 이 브랜드는 어떻게 그토록 장수하며 전 세계 130여 개국에서 그 명성을 떨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있을까?’ 심지어 레고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성인 층에서 까지도 탄탄한 마니아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즉, 슈퍼내추럴 현상을 보이고 있는, ‘장난’이 아닌 ‘장난감’이다.

The interview with 레고 마니아 공민식, 김성완, 나경배

 

 

레고를 둘러싼 슈퍼내추럴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레고 마니아 세 명을 만났다. ‘어렸을 적 부잣집 친구가 가지고 놀던 탐나는 장난감’ ‘쌓아서 조립하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마법의 물건’ ‘다채롭고 화려했던 컬러감’, 이것이 그들에게 들을 수 있었던 레고에 대한 첫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왜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레고를 사게 되었을까?

 

‘레고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카페 회원 수가 1만 5,000명 가량되고, 그들의 평균 나이가 30대인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공민식(이하 ‘공’) 레고를 다시 시작할 때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애들 장난감 가지고 무슨 짓을 하는 건가’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브릭인사이드(www.brickinside.com)에 와보니, 40대 아저씨들도 자신의 작품 사진을 올리면서 흐믓해 하시더라고요. 레고는 단순히 애들 장난감이 아닌 ‘창조를 위한 도구’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고를 만든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구나,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구나’하고 안도했죠. 그렇게 시작된 것이 레고로 교육하는 회사에 취업하는 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김성완(이하 ‘김’) 그런데 사실 레고가 성인에게도 어필할 수가 있는 것이 아이들 것과는 차별화된 제품을 제공하거든요. 보통 시스템 블럭이라고 하는 작은 블럭들입니다. 부품 수가 5,000개 이상에 달하고, 그 부품들을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 모델 제품들이 해마다 300~400개 이상씩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안하는 모델 수가 그러한 것이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범위는 무궁무진하죠. 성인들도 조립하기 까다로운 제품들도 많습니다.

 

 

C-code factor : M

레고의 ‘창조성 자극 변수(C)값’을 무한대로 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M(Material-itself, 자체물성)’이다. 즉 레고의 상품 그 자체다. 그들은 창조성의 기본 재료가 되는 블럭을 무한대(인간이 가지고 놀 수 있는 한)로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레고 매거진을 통해 각 모델별로 스토리를 넣어 소개하고, 레고랜드를 통해 레고로 만든 극한의 창작물을 소개하는 놀이 공간을 만들어 소비자의 창조성을 자극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레고 블럭의 활용 가능성이다. 한 수학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같은 색깔의 8스터드(8Stud, 총 8개의 돌기가 있는 기본 블럭) 6개 면, 약 9억 1,500만 개의 조합 수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레고 마니아들 역시 레고의 가장 큰 매력으로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을 꼽았다.

 

상품의 속성 자체가 태생적으로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경배(이하 ‘나’) 그렇죠. 저는 레고 마니아 중에서도 ‘창작’ 쪽에 많이 치우친 경우인데 레고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창작 행위를 위한 도구로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창작을 함에 있어, 레고만의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에 레고를 떠날 수 없는 것이죠. 실제로 세트 상품으로 제안된 모델보다 개인 창작품을 만드는 것을 선호하시는 분들도 상당합니다. 사실 레고란 것이 작은 부품을 계속 재조합하는 것입니다. 세트도 분해해 보면 개별 단위의 블럭일 뿐이죠. 그래서 창작을 위주로 하는 마니아들은 제품 모델을 모은다는 개념보다 ‘부품’을 모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부품들은 사용자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한계가 있어요. 레고 창작의 불문률이 있거든요. 자르면 안 되는 등 일종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죠. 자유로움 속에서 일종의 규칙이 있기 때문에 더 ‘흡인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제를 해결했다는 성취감이 느껴지니까 계속 빨려드는 것이죠.

 

*나단 사와야
‘지나치게 자유롭지는 않다’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레고가 가지고 있는 부품 특성 때문에 생각보다 표현의 범위가 좁습니다. 예를 들면, 각진 블럭들로 곡선을 만들 때 완벽하고 매끄러운 곡선을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곡선을 원만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수없이 많이 끼워서 크기를 크게 해야, 곡선처럼 보이는 외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레고 부품은 3차원입니다. 이 블럭을 뒤집어도 보고 일으켜도 보고. 또 나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또 고민하다 보면 새로이 발견되는 표현법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처럼 제안된 자유 속에서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 레고의 매력인 것이죠. 뉴욕의 나단 사와야(Nathan Sawaya)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납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럽죠. 그만큼의 레고 블럭이 있으면 저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더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블럭이 더 필요하거든요. 또 작은 부품 하나라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집하게 되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개인 상거래에서 누가 어떤 부품을 중고로 내놓았는지를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중장비 모델을 좋아합니다. 바퀴가 30개 달린 중장비를 보고 있으면, 저것이 어떻게 움직일까 너무 궁금하고 구동 메커니즘을 상상해 보고 직접 레고로 만들어 봐야 직성이 풀리죠. 기성 모델 중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부품들을 한 개씩 한 개씩 사 모읍니다. 바퀴, 트레일러 부속, 굴삭기 부속, 그리고 다 만들면 엔진도 달고요. 그리고는 좀더 정교한 연결점들을 구상해서 굴삭기를 트랜스포머처럼 만들기도 하죠. 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만들면서 성취감을 느끼죠.

 

그러한 무한성이 계속해서 구매하게 되는, 즉 ‘중독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당구를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 중에 ‘천장을 보면 스리쿠션이 가물거린다’라고 하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제 경우, 기계적 접목을 시도하다 보니, 레고 창작품이 완성된 후에 이것이 어떻게 움직일지, 관절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려면 어떠한 부품을 사용해야 할지가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20 조금만 더 하면, 종전에 고민하던 그 부분을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 작은 부품을 모아서 관절기능의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부품을 내가 직접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서 딴 곳에 모아 둔 작은 부품을 찾기 위해 온 박스를 다 뒤집어서 찾아내기도 합니다. 메커니즘을 만들어 가는 재미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안 되던 것을 되게 하는 것이거든요.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얼마나 하나요?
한 가지 모델을 만들 때 제 경우, 15시간 동안 꼬박 방에 앉아 있어요. 다리에 쥐가 세 번 정도 나면 거의 새벽이 되어 있죠. 기성품 모델을 조립할 경우가 그렇고, 창작 모델을 만들 때는 컨셉에 따라서 몇 주 혹은 몇 달이 걸리기도 해요. 오죽하면 저희 홈페이지에서 ‘레고충(LEGO蟲, 레고벌레. 하루 종일 밥만 주면 레고만 만들 정도로 몰입하는 레고 마니아를 뜻함)’이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거의 못 견딜 때까지 하는거죠. 조금 쉬었다가 하고, 잠깐 자다 일어나서 하고,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다가도 완성될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맴 돌아서 다시 불을 켜고 시작한 적도 부지기 수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난이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레고 블럭은 쉽게 만들려면 쉽게 만들 수 있고 복잡하게 만들려면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간단한 것이면 금방 할 수 있는 반면, 어려운 것은 몇 달을 고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다양성이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일반 장난감이나 퍼즐, 단순한 컬렉션을 위한 제품들은 제품 자체에 난이도 개념이 들어가기가 쉽지 않죠. 예를 들어서 퍼즐 같은 것도 한번 풀고 나면 처음과 같은 난이도는 아니죠.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으니까 도전의식이나 흥미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레고는 다시 0(zero)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때라도 좀 더 고난도의 형태에 도전해 보겠다 하면 그때부터 완전히 새로운 과제가 부여 되는 것입니다.
 
레고를 이용한 교육 분야에서 내세우고 있는 슬로건 중에 하나가 ‘하드펀(Hard fu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질려서 혹은 지겨워서 나가 떨어지지 않도록, 일종의 도전의식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것입니다. 작은 희열을 맛보는 동시에 작은 문제들에 끊임없이 당면하기 때문에 그 고민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깨지고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엔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 정도의 어려움을 주는 것이죠. 그러면서 물리적, 과학적 원리를 경험하는 형태로 프로그램이 나와 있습니다.

 

 

거의 못 견딜 때까지 하는거죠.
조금 쉬었다가 하고, 잠깐 자다 일어나서 하고,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다가도
완성될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맴 돌아서 다시 불을 켜고 시작한 적도 부지기 수입니다.

 

 

그들은 레고를 통해 ‘몰입’을 경험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의 창조 욕구를 자극하는 레고는 태생적으로 몰입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몰입(flow)이란 개념을 창시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몰입을 “자신에게 주어진 어렵고 복잡한 과업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일에 완전히 빠져들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같이 몰입된 사람은 그 ‘순간’을 즐기게 되고 눈부신 결과물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레고가 이러한 몰입을 경험케 한다는 것은 다음 도표를 보면 ‘레고의 태생 자체가 그러하다’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 진다.

 

 

 

 

위 표에서처럼, 몰입의 경험은 ‘실력과 난이도’가 모두 높을 때 나타난다. 대부분 처음에는 실력과 과제의 난도難度가 모두 낮은 A지점에서 출발하지만 학습과 실패를 통해 점차 과제의 난도 보다 ‘실력’이 높아지는 B의 자리로 이동한다. B의 상태는 지루한 상태이다. 즉 여러 번 맞춰 본 퍼즐을 다시 맞출 때 느껴지는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과제의 난도가 높아지면 C의 상태로 접어든다. 새로운 레고 모델을 구매하거나 가벼운 창작물을 시도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반복되면 다시 D상태로 접어들고 또다시 권태롭다. 이러한 경우 다시 과제의 난도를 높이면, 레고로 치자면 어렵고 새로운 창작 제품을 시도한다면, E상태로 접어들 수 있고, 드디어 완전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레고는 무한한 변화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과제의 난이도 조절이 자유롭기 때문에 몰입을 경험케 하고 그와 동반된 ‘성취감’을 맞보게 한다. 대부분의 상품이 소비자를 ‘자극’하는 것은 구매 전까지다. 사는 순간 ‘만족’은 극대화되지만 구매 후에는 그 자극이 덜할 뿐더러 심지어는 허탈함까지 경험한다. 하지만 레고의 자극은 구매 전뿐만 아니라, 구매 후의 만족감이 또 다른 자극을 시도한다. 끊임없이 창작 욕구를 자극하는 RAW(날 것 혹은 덜 가공된 것, 유니타스브랜드 Vol.7 참고) 상태인 블럭으로 언제든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속되는 ‘자극과 만족’의 무한 반복 곡선은 레고 속으로 다시금 빠져들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브랜드에 몰입되어 중독 혹은 그밖에 놀라운 행동들, 즉 슈퍼내추럴 현상들을 보이게 된다.

 

그러한 슈퍼내추럴 현상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이 레고 본사의 마케팅 전략이다. 익히 들어 알고 있듯이 프랑스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샤넬, 에르메스 등)들은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위해 재고 상품을 모두 소각시킨다. 레고 본사의 브랜딩 정책도 이들과 닮은 점이 있다. 모델별 발매 시즌이 지나면 일정 기간 동안의 재고 처리 기간을 두고 그 이후에는 모두 파기 처리한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레고는 파쇄기로 분쇄되어 또 다른 블럭의 재료가 된다. 따라서 특정 모델에 특정 부품을 한정적으로 구성해서 판매하고, 그 부품을 따로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제품은 말 그대로 ‘한정된 판매 시즌’을 갖게 되고, 각 제품 모델별 상품 제공 주기도 길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을 갖게 된다. 콜렉터 기질을 가진 성인 계층을 공략하기에는 명쾌한 전략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또 다른 중독을 야기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샤넬, 에르메스 등)들은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위해 재고 상품을 모두 소각시킨다.
레고 본사의 브랜딩 정책도 이들과 닮은 점이 있다.

 

 

그러한 레고 본사의 브랜딩 전략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게 되는 이유는 뭔가요?
그런 게 중독인 것 같네요. 그걸 지금 안 사면 불안하고 잠도 잘 안 옵니다. 요즘은 1년도 안 돼서 단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잘 팔려도 단종시킵니다. 시쳇말로 욕망에 불을 지피는 것이죠. 사람을 아주 애닳게 만듭니다. 그래도 몇 년 전부터는 몇몇 부품들을 하나하나 클릭해서 살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이 생겨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레어 아이템은 아니어서 아쉬운 점은 많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구입을 하지 못하면 나중에 더 비싼 가격에 살 것 같아서 사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또 딴 사람에 비해서 멋진 제품을 한 가지라도 더 가지고 싶은 욕심도 나죠. 어떤 분야든 ‘장비병’이라는 건 다 있는 법이죠. 카메라도 그렇고 오디오도 그렇잖아요? 때로는 소유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에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사 놓고 뜯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유한 것만으로도 흐뭇하니까요.
 
특정 제품을 못 구하면 계속 생각이 납니다. 저희는 보통 네 자리의 제품 모델번호로 이야기하는데 운전하다가, 혹은 지나가다가 차량 번호판을 보거나 전화번호 뒷자리 등 네 자리 숫자들을 보면 계속 그 모델 생각이 납니다. 모델명 ‘8707’을 정말 사고 싶을 때는 머리에 계속 ‘8707’만 맴돕니다. 약간 병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런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브릭인사이드나 타 사이트를 돌면서 ‘8707’을 계속 찾는 거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한 브랜드(그 이전에는 상품)가 소비자의 욕구를 해소시켜 줌과 동시에 더 큰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면, 그러나 그 자극이 형이하학적 욕구를 값싸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무한한 창조 욕구를, 그 욕구를 대변하는 ‘상상’을 자극할 수 있다면(그것도 놀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도 질적 발전을 돕는 ‘바른 브랜드’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브랜드는 당연히 오랫동안, 뜨겁게 사랑받을 것이다.

 

 

레고의 10대 원칙

이처럼 레고가 오래 사랑 받는 브랜드, 인간의 창조 욕구를 무한히 자극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철학 때문이다. 그들이 상품을 만들 때 고민하는 레고의 10대 원칙을 보자.

 

레고의 10대 원칙
①무한한 가능성을 가질 것 ②남녀 성별을 초월할 것 ③나이를 초월할 것 ④일년 내내 질리지 않을 수 있을 것
⑤활기차고 흡인력을 가질 수 있을 것 ⑥세대를 초월할 것 ⑦상상력, 창조력, 발전성을 지향할 것
⑧놀수록 가치가 높아질 수 있을 것 ⑨늘 아이들의 화제가 될 수 있을 것 ⑩안정성이 높고 품질이 좋을 것.

 

그 철학 안에는 이미 ‘무한함’에 대한 열망이 녹아 있었다. 어찌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supernatural), 실현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이 명제들을 끊임없이 고민했기에 소비자들로부터 슈퍼내추럴 현상을 이끌어 내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철학’은 레고가 사용자의 창의성을 지속적으로 자극시키는 근간이 되어왔다.

 

레고의 철학을 알고 있나요?
그럼요. 예전에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최근 레고 본사에서 지정한 *엠베서더가 되면서 더 잘 알게 되었어요. 놀랐던 것이 제가 레고에 갖고 있던 이미지와 거의 흡사했어요. ‘그러한 기준과 철학을 가지고 만들었기에 이런 상품이 나오는구나’ 싶었죠. 그래서 더 믿음도 가고 나중에 제 아이에게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죠. 저에게 레고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어요.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점, 언제든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부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보관하기도 쉽고, 색칠할 필요도 없고, 본드칠할 필요도 없다는 점 등 좋은 이유를 꼽자면 끝이 없어요. 그래서 이제는 제 직업으로까지 삼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늘 함께 하게 될 것 같아요.

 

* 엠베서더
레고 본사가 비영어권 국가 소비자들과 좀 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각국 유저 중 한 사람을 소비자 대표로 임명하고 온라인상에서 특정 이슈에 관한 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국내에서는 한국 최초로 김성완 씨가 엠베서더 1호로 선정되었다.

 

 

슈퍼내추럴 현상을 증폭시키는 ‘e’

오늘날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이른바 온브랜딩(브랜드가 24시간 ON되어있는 현상, 유니타스브랜드 Vol.11 참고)의 시대다. 소비자들은 언제든 브랜드에 접속할 수 있고 주변인들과 활기차게 그 브랜드에 대해 논할 수 있다. 그들의 이번 신상품이 어떠한지, 자신은 그 제품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이 브랜드의 마케팅과 프로모션 활동은 어떠한지, 그들의 기본 철학은 어떠한지, 이 브랜드가 윤리적인지 등이 쉴 새 없이 회자되고 있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브랜드의 확산은 더욱 증폭된다. 그리고 그 확산은 더 큰 슈퍼내추럴 현상을 연출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소비자의 창조 욕구를 자극하는 슈퍼내추럴 현상 공식에는 하나의 요소가 더 추가될 수 있다.

 

 

 

 

여기서 e는 그 브랜드가 온라인 공간에서 얼마나 활발히 ‘ON(24시간 꺼지지 않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해당 브랜드가 회자되는 상태)’되어 있는가, 즉 ‘온라인 행동지수’를 말한다. 그 브랜드가 온라인상에서 얼마나 활발히 활동하는가(브랜드에 의해서), 혹은 브랜드가 얼마나 많이 회자되고 있는가(소비자에 의해서)에 따라서 그 값은 달라지게 된다. 당연히 활동량이 많을수록 값은 커지며, 전체 값을 무한대(온라인 공간처럼)로 배가시킬 수 있다. 레고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는 레고 잡지를 온라인에 업데이트된 자료들을 모아 확인해 볼 수 있으며, 현재 김성완 씨가 운영 중인 레고 관련 커뮤니티, ‘브릭인사이드’에도 1만 5,000명이 넘는 레고 유저들이 레고와 관련된 정보는 물론 창작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H(인간의 무한한 창조 욕구)를 자극하는 C(창조 욕구 자극 상수)값이 무한대에 가까우면서, 그들만의 명확한 철학도 있고, 동시에 e값 역시 극한으로 올려 주는, 즉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브랜드들도 있다. 게다가 이 브랜드들은 소비자에게 수익(Income)까지 얻을 수 있게 한다. 다음에 이어질 API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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