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인문학, Z-code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나건  고유주소 시즌1 / Vol.12 슈퍼내추럴 코드 (2009년 11월 발행)

브랜드를 흡사 ‘가족’으로 여기며 동고동락하는 이들의 모습이 이제는 그리 낯설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브랜드를 위해서라면 원시시대의 ‘부족사회’를 만드는 것도 불사하며, ‘영매’라는 다소 으스스한(?) 수식어가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것도 기꺼이 수락할 뿐만 아니라, 이곳이 집인지 박물관인지 구별이 되지 않더라도 집 안 곳곳이 특정 브랜드로 채워지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이들. 자,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열정적이다 못해 ‘충성’스럽기까지 한 마니아 군단을 이끄는 브랜드의 슈퍼내추럴 코드는 무엇일까, 하는 것 말이다. 브랜드하고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두 사람, 홍익대학교 IDAS(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디자인경영학과 나건 교수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그 답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두 교수의 연구실을 찾은 건, 어찌 보면 아인슈타인의 ‘S 공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The interview with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 디자인경영학과 교수 나건,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배철현

 

 

S = x + y + z

 

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성공(success) 공식이다. 이 알파벳이 어떤 단어의 약자인지는 골몰히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실, 이 알파벳은 그저 ‘변수’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알파벳이 뜻하는 것은 이것이다.

 

Success = Silence(x) + Work(y) + Play(z)

 

혹, 감이 오는가? 의미는 이렇다. 자신이 일하는 영역(y)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반대로 그 외의 영역(z)에서 최대한 즐기면, 자신만의 고요한 시간(x)이 찾아왔을 때, 이 y와 z의 영역이 서로 교차하며 교집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 교집합을 얻는 것이 바로 S, 즉 성공이라는 것. 당신이 마케터라면 마케팅 실무를 하고 있는 그 영역이 y가 될 것이며, 마케팅의 영역 외에 다른 것을 접하는 시간이 z가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성공공식을 굳이, 예로 든 이유는 이 글은 y가 아닌 z의 영역, 좀 더 정확히 말해 ‘인문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사람의 일명, z강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 명은 공학도 출신의 디자인학과 교수라는 특이한 ‘이력’이 말해 주듯 좌뇌적 이성과 우뇌적 감성이 교차하는 나건 교수이며, 다른 한 명은 CEO를 비롯한 경영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인 서울대학교 ‘AFP’(Ad Fontes Program)의 주강사인 배철현 교수다. 이 두 분을 z강사로 꼽은 이유는, 그 이력에서도 훤히 드러나듯 두 사람 모두 현재, y와 z의 영역을 활발히 넘나들고 있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먼저, 나건 교수가 던지는 “What is definition of definition?”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혹, 여건이 된다면 두 사람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다. 이 두 교수의 이야기에서 ‘주어’의 자리에 자사의 브랜드 네임을 넣어 보길 바란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당신의 뇌 속에서는 y와 z가 셀 수도 없는 교차곡선을 그리며 당신에게 인사이트를 줄 테니 말이다.

 

Z-code 1
Definition

나건 교수의 첫 강의는 항상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What is definition of definition?” 언뜻 보기에, 시쳇말로 ‘말장난’처럼 보이는 이 문장에는 사실 ‘놀라운’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이 사람이건 사물이건, 혹은 어떤 행위이건 그것의 ‘정의’를 명확히 내릴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 마치 창조주가 된 듯한 기분이 아닐까. 왜냐하면 어떤 것의 ‘정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것의 ‘존재 목적’을 알고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브랜드의 ‘존재’ 목적을 ‘정말’ 알고 있다면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나건 교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교수님께서는 강의를 시작할 때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What is definition of definition?”이라고 하던데요. 사실, 2008년 출간하신 《디자인 발전소》라는 책에서도 ‘Definition : 정의 : 定義’라는 섹션을 별도로 떼내어 ‘Definition’을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003년인가 그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처음 얼마간은 제가 잘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학생들에게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왜, 학생들이 잘 못 알아듣지?’하면서 질문이 시작되었는데 그 질문이 어떻게 끝났는 줄 아세요? ‘그런데, 넌 제대로 알고 전달한 거야?’였어요.
결론은 나 스스로가 제대로 모른 채 가르쳤다는 거였죠. 그때 가르치던 주제가 ‘디자인 리서치’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다음날 연구실에 나오자마자 ‘디자인 리서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죠. 여러 가지 책을 보다 보니, 디자인에서 말하는 리서치의 정의가 한마디로 ‘gathering of knowledge’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럼 ‘knowledge는 뭐지?’ 하는 생각이 또 드는 거예요. 이번에는 knowledge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았죠. 이미 다 알고 있는 data, information, knowledge, wisdom의 체계를 그때 보게 되었어요. data부터 wisdom까지 각각의 정의를 훑어보면서 결국, 리서치에서 말하는 knowledge라는 것은 ‘specific information about something’이라고 정의를 내리게 되었어요.
그 정의를 내리는 순간 머릿속에서 디자인 리서치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림이 체계적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술술 풀리더군요.
‘그럼, 어디로부터 knowledge를 gathering, 즉 모아야 하지?’ ‘책이나 또는 디자이너들이 관심 있게 생각하는 물건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그럼, 각각에서 knowledge를 모으는 방법은 무엇이지?’ ‘책에서는 서치(search)… 물건은 측정… 사람은 질문…’ 그래서 항상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바로, “What is definition of definition?”이 된 거죠.

 

definition의 정의가 무엇일까, 훨씬 더 궁금해지는데요, 교수님께서 내린 definition의 정의는 무엇이었나요?
바로 ‘약속’입니다. definition의 어원은 de+fine으로, ‘어떤 것의 한계를 지어 주다’라는 의미에요. 리서치를 ‘gathering of knowledge’라고 정의를 내렸잖아요. 이것은 저만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에요. 리서치라는 것을 이렇게 상정하자, 라는 쌍방간의 ‘약속’이죠. 그런데 이 약속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요.
연인끼리 통용되는 프라이빗한 약속이 있는가 하면, 회사나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로컬한 약속이 있고, 그런가 하면 글로벌한 약속도 있죠. 중요한 것은 이 definition이 어느 정도의 레벨에 속하는가를 판단하는 거예요. 만약, 글로벌한 약속에 해당하는 거라면 굉장히 파워풀한 definition인 거예요. 그렇다면 ‘keep in mind’는 필수죠!

 

어떤 것의 definition을 명확히 안다는 것은, 다른 말로 그것의 ‘존재 목적’을 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요. definition을 안 것이 교수님께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고 싶습니다.
한 마디로 정체성의 발견이죠. 정체성이란 절대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이잖아요. 어떤 것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그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디자인 리서치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나니, 디자인 리서치에 대해서 가르치는 교수의 정체성이 명확해지더군요.
그리고 교수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의를 자연스럽게 내려 보게 됐어요. 바로 ‘헬퍼’더라구요. 내가 알고 있는 지식,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학생들의 인생에 도움을 주는 퍼실리레이터(Facilitator)가 바로 교수라고 정의를 내리게 되었죠.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나니까 교수로서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어요. 그러고 나니 교수로서의 삶이 너무나 쉽고, 재밌어지더군요.

 

 

어떤 것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그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결국 “Who are you?”가 아니라 “What are you?”에 대한 질문이 definition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무엇’인지 아는 것, 사실 이것은 인간이 살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일 텐데요.
맞습니다. 자연은 대부분 안에서 무르익어서 밖으로 표출되지요. 그런데 인간은 반대예요. 일단, 겉에 껍데기를 먼저 씌우죠. 그리고는 그 껍데기에 맞게 안을 변화시켜 갑니다. definition을 아는 작업을 통해 내가 무엇인지 알고 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분명해지죠. 그 다음부터는 질문이 이렇게 바뀌게 돼요. “내가 나의 definition에 맞게 잘 살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definition에 따라 자신의 삶을 점검하는 거죠. 그런데 놀라운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그것에 맞춰서 살다 보면 어느새 ‘영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리더십, 카리스마가 생긴다는 거죠. 교수로서 나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알게 되면 나만의 고유 ‘컬러’가 생기게 돼요.
왜 시쳇말로 학생들이 “저 교수님 수업은 컬러가 있어”라고 얘기하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그런데 그 다음은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뭐냐면, 학생들이 그 교수를 자신의 ‘롤 모델(role model)’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동일시한다는 거죠.
한번은 제가 가르쳤던 한 제자가 이러는 거예요. 그 제자가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제 스타일대로 강의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군요. 이게 바로 영향력이에요.

 

동일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본질, 그러니까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드러냈다는 것일 텐데요. 그런데 시대와 환경이 변하다 보면 그 시류에 휩쓸려 아이덴티티를 잃게 되는 위험한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본질을 부여 잡고 사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한 가지 정의를 알면 아주 간단해집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죠,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가 쓴 《마인드 세트(Mind Set)》라는 그의 저서를 보면 첫 번째 장의 제목이 이렇습니다. “While many things change, most of things remain constant.” 즉 “많은 것이 변하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 첫 번째 장에서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what과 how를 잘 봐야 한다”고 말이에요. 이것은 바로 이런 뜻이에요.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을 잘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what은 변하지 않는 것, 본질을 뜻하죠. 이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에요. 반면, how는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USB가 있어요. 지금까지 USB의 변천사를 보면, 5.25인치에서 3.5인치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8GB가 넘는 대용량도 나왔죠. 또 모양도 플로피 디스크를 시작으로 수많이 변해 왔죠.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에서도 변하지 않은 단 한 가지가 있어요.
바로 ‘인간은 무엇인가를 밖에다 저장하고 싶어한다’는 욕구는 변하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거죠.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알고 있다면 환경이 어떻게 변한다 해도,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릴 위험이 없습니다.

 

definition을 브랜드 관점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만약, 자신의 브랜드 definition을 명확히 안다면 ‘영향력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네, 동의합니다. 사실 CEO가 가진 브랜드 철학을 말단 직원이 모르는 경우가 많죠. 만약, 기업의 모든 사원이 자사의 브랜드 definition을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제대로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각각의 부서에서 통일되고 일관되게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수 있겠죠. 만약, 어떤 브랜드가 ‘정직’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만들어졌다고 해봐요. 그럼, 정직을 브랜드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겠죠. 누구는 그것을 디자인으로, 누구는 그것을 마케팅으로… 결국,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정직’이라는 신념은 소비자들과의 ‘약속’이 되고, 그 약속을 지킨다면 그 브랜드를 믿어 주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많은 브랜드들이 변하지 않는 이 본질을 좇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을 좇는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브랜드가 사람들의 눈에 들까에만 촉각을 세우다 보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결국, 그 브랜드는 잊혀지게 마련이죠. 만약, 신입사원에게 “당신의 브랜드 definition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또 그것이 CEO의 이야기와 일치한다면 그 브랜드는 영향력이 있는 브랜드이거나, 될 가능성이 보장된 브랜드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신입사원에게 “당신의 브랜드 definition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또 그것이 CEO의 이야기와 일치한다면
그 브랜드는 영향력이 있는 브랜드이거나,
될 가능성이 보장된 브랜드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Z-code 2
Naming

‘아드 폰테스 프로그램(Ad Fontes Program)’. 이것은 얼마 전, 서울대에서 시작한 경영자를 위한 인문학 강좌다. 혀끝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아드 폰테스’는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가 한 말이다. “경영자들이 듣는 인문학 수업인 만큼 ‘경영’의 기본은 인문학임을 이름 속에 넣은 것”이라는 배철현 교수의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진다. “이름이 곧 정체성”이라며 이름이 가진 ‘상징성’을 거듭 강조하는 그. 브랜딩에서 ‘네이밍’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 본다면 그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종교, 특히 기독교의 경우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왔는데요, 종교적인 이념은 일단 차치하고 종교가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바로 ‘스토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종교든 그 종교의 가치를 전달하는 스토리가 있지요. 이러한 스토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탄탄하게 스토리 구조를 갖춰 온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스토리가 복잡하거나 어떤 특정한 경우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스토리는 보편 타당한 것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구하고, 알고 싶은 것에 대한 메시지죠. 이를 테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시련은 왜 오는가, 하는 등의 관한 것 말입니다.
특히 성경에는 수많은 스토리가 등장하는데, 이 성경 속에서 등장하는 스토리들이 후에 《연금술사》에서도 나오고,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나오고, 《햄릿》에서도 발견되고, 또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도 발견되고… 수많은 곳에서 조금씩 변형되어 등장해요. 이 스토리들이 갖는 가치는 옛날부터 인간이 근원적으로 갈망하는 것들이기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가치라 할 수 있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이미, 이 스토리가 들어 있어요.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말한 ‘밈(meme)’ 을 통해서 말이죠. 이 밈을 통해 종교가 가지고 있는 가치들이 전달되다 보니, 조금씩 각색되더라도 사람들은 그 가치를 잊지 않게 되는 거죠.

 

소위, 밈 바이러스군요. 그렇다면 이 밈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핵심적인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기독교에서는 그 역할을 바울이 하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바울은 12년 동안 1만 마일을 걸으면서 기독교를 전파했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예수는 셈족인데, 셈족들은 서양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바울은 셈족이 아니었으니까 그리스, 로마 등의 세계로 갈 수가 있었던 거죠. 이게 중요한 거예요.
종교 전파가 성공한 예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토착화’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어요.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가되, 그것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문화에 맞게 전달했다는 거죠. 18세기 중국에 천주교를 전했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라는 선교사가 있었어요. 그는 중국으로 들어가기전 중국 고전을 모두 섭렵했죠. 얼마나 많이 읽었던지 본토 중국인들보다 훨씬 더 잘 알았을 정도였어요.
결국, 왕실의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며 천주교를 전했어요. 그 반대 예를 들어보면, 종교 전파와는 조금 다른 거긴 하지만 월트디즈니 사가 남미의 어느 부족에게 미키 마우스를 알리러 들어갔어요. 그런데 완벽하게 실패한 거예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실패한 적이 없는 미키 마우스가 왜, 유독 그곳에서만 실패했을까, 궁금했겠죠. 그래서 그 실패 이유를 분석해 보니, 그 부족에게는 ‘쥐’를 존귀하게 여기는 신화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쥐’를 숭상하는 종교적 문화가 있었다는 거죠. 토착화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죠.

 

대중적인 브랜드가 아닌 소수의 열정적인 마니아들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를 가리켜 ‘컬트 브랜드’라고 합니다. 이러한 컬트 브랜드와 종교가 종종 비교되어 설명되는데요, 그것은 아마도 브랜드이건, 종교이건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비슷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종교인들이 자신의 신에게 예배하고,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브랜드 마니아들에게도 비슷한 유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것보다 브랜드이건, 종교이건 왜, 그 브랜드에 그 종교에 ‘열광’하느냐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통 ‘cult’의 뜻을 얘기할 때 ‘제식(祭式), 숭배, 예찬’이라고 해석을 하잖아요. 그런데 또 한 가지 뜻이 있어요. 그것은 ‘경작’이에요. 경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씨앗을 뿌린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씨앗을 뿌리느냐에 따라 경작이 달라져요. 그래서 중요한 건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도 견딜 수 있는 씨앗을 구하는 것이 관건이죠.
기독교만큼 박해를 받아온 종교가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아직까지 성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종교적인 관점을 모두 배제하고, 바로 전천후 씨앗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건 앞 절에 언급했던 ‘스토리’하고도 일맥상통한데요, 기독교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분명하고, 확실해서 어떤 세대에서나 통하는 메시지라는 거죠. 100년 전에도,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심을 수 있는 씨앗이라는 거예요.
컬트 브랜드가 열정적인 마니아를 가질 수 있었던 건,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브랜드 속에 있는 씨앗이 분명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최고의 브랜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훈민정음을 꼽습니다.

 

 

종교인들이 자신의 신에게 예배하고,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브랜드 마니아들에게도
비슷한 유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겠지요.

 

 

교수님께서는 훈민정음학회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훈민정음이 가지는 브랜드적 가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훈민정음이야말로 전천후 씨앗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 제 꿈 중에 하나가 무無문자인 나라에 문자를 만들어주는 건데요, 생각해 보세요. 한글로 표현하지 못할 말이 있을까요? 자음과 모음만 있으면 어떤 소리이건 전부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알파벳으로는 만들 수 없는 소리가 너무 많아요. 그러나 한글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처럼 위대한 브랜드는 어느 특정한 곳, 어느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어느 곳에서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하나가 있어요. 바로, 이름이에요.

 

브랜딩을 할 때도 ‘네이밍’이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데요, ‘이름’이라는 것이 그 브랜드의 스피릿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자기 이름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이름’이라는 것이 ‘존재성’, ‘정체성’을 담고 있는 거거든요. 이처럼 이름이라는 것은 단순히 부르기 위함이 아니에요.
히브리어로 이름을 뜻하는 말이 ‘쉠(shem)’인데요, 유목민을 뜻하는 말은 이 쉠에서 파생된 ‘쉐메틱(shemitic)’이라고 합니다. 유목민들의 특성이 바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는 거잖아요. 그럼, 무엇이 중요하겠어요? 자신의 뿌리, 그리고 나의 이름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누가 누구를 낳고, 또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일종의 족보가 자세하게 나옵니다.
히브리인들의 공동체 체계를 보면, 종교 공동체에서 시작해서 나까지 4단계 정도가 있는데, ‘나’에 해당하는 단계를 ‘나할라’라고 했어요. 히브리어로 나할라가 무엇이냐면 ‘유산’이라는 뜻인데요, 다른 말로 하나님의 소유, 기업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절대 팔 수 없는 거죠. ‘신이 나에게 맡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바로 ‘이름’이에요. 그들에게 이름은 곧, 신이 나에게 맡긴 것이죠.
많은 브랜드 중, 스토리와 정체성을 모두 담고 있는 브랜드를 그래서 ‘나이키’로 꼽습니다. 나이키는 승리, 즉 천상의 신화잖아요. 이것만큼 오랜 시간,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스토리가 또 있을까요. 그러한 스토리를 함축해서 담고 있는 네임이기에 사람들은 나이키를 다른 브랜드와 다르게 인식하는 거겠죠. 이름이란 ‘답게’ 사는 법을 알려 주는 가장 강력한 원천 아니겠어요?

 

“너 자신을 알라.”
이 인터뷰를 읽는 동안 혹, 소크라테스의 이 케케묵은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는가. 결국, 이 긴 인터뷰에서 두 교수가 이야기한 것은 바로 ‘존재’의 이유를 알라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브랜드들이 만들어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그런데 살아남는(?) 브랜드들은 ‘왜’ 이 브랜드가 존재해야 하는지 그 목적을 알기 때문 아닐까. 다시 말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 브랜드를 ‘열망’하게 하는 그 목적을 알기 때문 아닐까. 혹, 그 목적을 알지 못하는 마케터라면, 두 교수가 던졌던 질문을 조금 바꿔 던져보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z의 영역에서 당신이 찾아내야 할 y의 영역과의 교집합이다.

 

Z1. “당신은 브랜드의 definition을 어떻게 내릴 건가요?”
Z2. “당신의 브랜드 네임에 담긴 철학은 무엇인가요?”
Z3. “당신의 브랜드는 어떤 스토리가 있습니까?”
Z4. “당신의 브랜드는 소비자를 열광하게 하는 슈퍼내추럴 코드가 있습니까?”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인슈타인이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승차표를 검사하는 승무원이 아인슈타인 앞에 섰을 때, 그는 가방 안에서 기차표를 연신 찾고 있는 중이었다. 한참을 서 있던 승무원은 “선생님, 우리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선생님께 차표를 사줄 만큼 월급을 줄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하며 웃었다. 그때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지금 궁금한 건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아는 것이라오.”

 

이 두 분의 교수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은 “혹,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습니까?”였다. 아쉽게도 두 교수의 대답은 “없습니다”였다. 다만,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특정한 브랜드보다는) ‘펜’ 그 자체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교수의 이야기에 백번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속도보다 방향이다’라는 어쩔 수 없는 ‘진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혹, 아직도 브랜드의 방향이 어디인지 갈피를 못 잡은 이들을 위해 배철현 교수의 다음 말을 덧붙인다.

 

“영어로 ‘선하다’라는 것을 뜻하는 ‘good’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브tov’라고 해요. 이 토브는 ‘향기롭다’는 뜻이죠.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사실, 무엇을 해서가 아니에요. 그저 그 존재 자체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존재함’으로 영향력이 있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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