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미 ┃소외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생명 운동
우주 속 인간, 인간 내 우주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이경미  고유주소 시즌2.5 / Vol.28 에코시스템 브랜드 (2012년 12월 발행)

얼마나 걸었을까. 한참을 걷다 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다. 분명 처음에는 함께였는데, 언제부터 왜 혼자 걷게 된 건지….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옆 사람보다 앞서야겠다는 욕심과 빨리 서두르다 주변을 살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여러 갈림길에 설 때마다, 나는 좁은 길 대신 넓은 길, 여럿이 천천히 가기보다 혼자 빨리 가는 여정을 택했다. 본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지만, 길 위에서 놓친 삶의 흐름은 길이 아닌 인간의 본성과 멀어짐을 자초했다. 스스로 선택한 소외의 길 위에서 걸어온 여정을 되돌아본다. 현 산업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나는 모든 인간의 단면이자, 세상에서 소외된 자화상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번영하기 위한 원리로 분업과 자본축적을 강조하면서, 국부의 원천을 노동, 부의 증가를 노동생산력 개선으로 보았다. 이기심의 효능을 피력한 셈이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쓴 《도덕감정론》에서 그는 사람의 본성은 이타적이며, 이타심 없는 이기심은 위험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두 저서 모두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권력집단이나 대기업에 의한 독과점을 지양하고 정부 규제를 받지 않고 일하는 진정한 자유방임을 지향한다. 21세기를 맞은 자본주의 기업의 욕망과 대자본에 의한 불균형을 미리 간파한 것일까. 세계는 자본주의 경제와 환경, 사람이 공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협동조합을 주목한다. ‘생방송 오늘’, ‘유럽 대안경제의 힘 협동조합 기업을 가다’ 등을 제작한 하종란 프로듀서는 “협동 조합은 경제적 약자 다수가 서로 뭉치고 나누는 호혜의 힘으로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자본주의 독점의 치명적인 폐해를 극복하려는 기업이다. 자기 책임에 바탕을 두며, ‘99퍼센트의, 99퍼센트에 의한, 99퍼센트를 위한 기업’을 표방한다”고 전했다. 한 사람이 아닌 지역과 나라의 국민이 운영자이자 조합원인 기업. 협동조합은 지역과 환경을 생각하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에코브랜드로, 사회의 가치에서 탄생해 관계 속에서 유지되다가 다시 사람으로 환원된다. 이 순환 고리는 다 함께 천천히 멀리 가는 길 위에 존재한다.

The Interview with 한살림서울 홍보기획팀 과장 이경미

 

일상과 일상을 잇는 ‘협동’ 키워드

스위스에는 세계 최고의 소비자 협동조합 미그로(Migros)가 있다. 미그로의 설립자 고트리브 두트바일러(Gottlieb Duttweiler)는 2009년 한 일간지에서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스위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1위인 아인슈타인을 빼면 그는 당시 스위스 국민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미그로는 여느 기업과 다를 바 없는 작은 소매상으로 시작했다. 트럭에 일용품을 넣고 마을의 어려운 가정을 상대로 중간 유통 마진을 줄여 소비자가의 60%에 판매했고, 규모는 계속 커져 많은 매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1925년 설립 이후 15년 동안 이룬 쾌거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1년 그는 개인 소유였던 미그로 주식을 모두 협동조합 출자금으로 전환, 스위스 국민에게 자신의 기업을 통째로 기부했다. 이것이 그가 스위스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된 계기이다. 현재 미그로는 600개의 매장을 둔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스위스 인구 700만 명 중 200만 명이 조합원이며, 시장점유율은 20퍼센트에 달한다. (《협동조합, 참 좋다》 참조)

미그로의 운영 원칙은 판매 제품을 사회적, 환경적, 윤리적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제품에 이산화탄소 라벨을 붙여 소비자가 기후 보전을 의식하면서 물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자동차를 타지 않고 도보나 자전거로 접근하기 용이한 거리에 매장을 짓는 것도 같은 일환이다. 미그로는 은행에서부터 주유소, 여행, 레저 등 스위스 내에서 조합원의 편익을 증대시키는 다양한 분야로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브랜드 전략은 지역에 거주하는 조합원과 지역사회에 철저히 뿌리내리는 것으로, ‘지역으로부터 지역을 위해’가 바로 미그로의 지역화 정책이다. 이처럼 스위스에 미그로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한살림’이 있다.

 

한살림 운동,
그 뜨거운 생명 사랑과 회복에의 염원

한살림 선언의 전문은 산업문명의 위기로부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산업문명은 생명 소외 체제로, 본질적으로 반인간적이고 반생태적인 문명이라고 규정한다. 또 생명을 기계로, 존재를 소유로, 주체를 객체로, 지식을 기술로, 자유를 동조로, 낭비를 필요로, 주체를 객체로, 가격을 가치로 바꾼 전도된 세계를 연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생명은 순환적인 ‘되먹임고리(feedback)’에 따라 활동함을 의미하고, 직선적인 ‘인과연쇄’ 반응으로 작동하는 기계와 구분한다. 생명의 순환과정은 에너지를 흡수하고 내뱉는 되먹임고리에 순응한다고 전한다.

1986년 작은 쌀가게에서 시작한 한살림은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더불어 사는 생명 세상을 지향한다. 도시 소비자와 농민 생산자의 상생 구조로, 서로의 믿음이 토대가 되어 활동하는 생활협동조합이다. 한살림은 지역공동체의 회복과 친환경 생활 실천, 지구 환경보호, 바른 먹거리 제공 등 거룩한 생명 사상에서 발현한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다.

한살림은 현재 전국 20개 회원조직과 30만여 가구의 도시 회원, 2천 세대의 생산자 회원이 함께하고 있다. 사업규모도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전국 147개 매장과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규모는 2,300억 원(2011년 말 기준) 수준으로 성장했다.

지난 6월 2일 6.2데이(유기농업의 날)를 맞아 내한한 IFOAM(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의 앙드레 류(Andre'Leu) 회장은 “한국의 환경농업단체 중 한살림을 주목하고 있다”면서 “생산자농민과 도시소비자가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협력관계를 구축, 안전한 먹거리 확보와 농민의 소득 보장 및 지역사회를 후원하는 한살림 사례는 메이저사의 독식 문제를 개선하고 농민의 생활고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2012년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협동조합의 해이다. 이 이벤트의 캐치프레이즈는 “협동조합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Cooperative Enterprises Build a Better World)”이다. 한살림과 같은 협동조합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나.
한살림은 생명운동 단체라는 정체성이 강하다. 기업적인 성격과는 다르다. 애초에 문제의식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농민운동을 하던 박재일 전 회장이 가지고 있던 생각에서 출발한다. 사실 1970년대까지는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서 농약을 많이 쳐서 식량 생산량을 늘리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매년 천 오백여 명의 농민이 농사를 짓다가 농약 때문에 죽는 일이 발생했다. 사실 농사를 짓는 분도 위험하지만 땅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농약을 뿌림으로 인해 땅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가던 생명이 죽고 생태계가 파괴되어 재생이 힘든 땅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생산한 곡물을 공급하는 농민도 고민하기에 이른다. 이에 자발적으로 농약을 쳐서 생명을 죽이는 농사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한살림이 시작되었다. 생산해서 시장에 나와도 소비자는 생산자를 믿지 못하고 생산자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 관계가 팽배해,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이를 표현한 말이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지킨다’이다. 생산자는 잘 재배해서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고 소비자는 그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생산자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한살림의 조합원은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관계를 지향한다. 농사지어서 누구에게 가는지 알면 함부로 농사짓기 어렵다. 반면 소비자는 볼품없고 예쁘게 생기지 않아도 누가 생산했는지 알면 농민들의 노고를 귀히 여기고 고맙게 받아들인다. 이런 작은 신뢰 회복과 관계 개선이 지역, 도시, 나라, 전 세계를 바꾸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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