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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주소 시즌2.5 / Vol.33 브랜드 경험 (2013년 10월 발행)

그 날은 특별한 날이기도, 또 그렇지 않은 날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K는 무언가를 기념하는 특별한 날들에 무심해졌다.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따위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으며, 크리스마스나 석가탄신일은 돈으로 환전할 수 없는 보너스 정도로 여겼다. 모두가 종소리를 세거나 한 번쯤 시계를 들여다봄 직한 새해의 첫날엔 이미 잠들어 있었고, 대학 합격 통보를 받던 그 날도 심드렁한 얼굴로 TV를 보고 있었다. 그 날이 매해 반복되는, 예를 들어 생일과 같이 자신만을 위한 날이면 더욱 그랬는데, 심지어는 매해 돌아오는 생일조차도 어느 해부터는 그냥 넘어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보다 못한 K의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며 서운해하던 어느 해의 소란이 없었다면 단둘 뿐인 가족끼리도 케이크를 자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학교나 회사에서의 단체 생일 파티 같은 경우에도 가능하면 그녀는 멀리 떨어져 있곤 했다.

1.

 

그 날은 특별한 날이기도, 또 그렇지 않은 날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K는 무언가를 기념하는 특별한 날들에 무심해졌다.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따위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으며, 크리스마스나 석가탄신일은 돈으로 환전할 수 없는 보너스 정도로 여겼다. 모두가 종소리를 세거나 한 번쯤 시계를 들여다봄 직한 새해의 첫날엔 이미 잠들어 있었고, 대학 합격 통보를 받던 그 날도 심드렁한 얼굴로 TV를 보고 있었다. 그 날이 매해 반복되는, 예를 들어 생일과 같이 자신만을 위한 날이면 더욱 그랬는데, 심지어는 매해 돌아오는 생일조차도 어느 해부터는 그냥 넘어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보다 못한 K의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며 서운해하던 어느 해의 소란이 없었다면 단둘 뿐인 가족끼리도 케이크를 자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학교나 회사에서의 단체 생일 파티 같은 경우에도 가능하면 그녀는 멀리 떨어져 있곤 했다.

그녀는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었다.

그날처럼 화사한 봄날도 마찬가지였다. 회색 원피스에 흰색 가디건, 그리고 가볍고 평범한 플랫 슈즈를 신었다. 좋게 보자면 클래식하고, 굳이 한마디 거들자면 무심하고 심심하고 조금은 게으른 스타일이었다. 그녀가 유행 지난 폴더폰을 지금껏 쓰고 있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에게 세상은 흰색이거나 검은색, 혹은 회색이었다. 무엇보다 빨리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쓸데없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가 요 몇 년째 웹사이트 제작사에서 코딩 일을 하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화려한 디자인의 겉옷을 걷어내고 head와 body 같은 스크립트 언어로 정확히 구분되는 프로그래머의 단순 명쾌한 세상이 그녀는 편했다. 그녀만 실수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흰색 모니터 위 검은 글자로 만들어진 이 가상의 세계는 안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무심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문득 저녁 약속 시각이 생각나서였다. 아마도 그가 미리 일러주지 않았다면 정확히 1년 전 오늘 J를 만났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물론 그 사실도 J가 말해주어서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그날이 아마도 특별한 하루였을 것이다. 그러나 K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의 시간을 스물네 개로 조각내고, 당사자인 태양은 무심해할 어떤 날에 ‘일요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언제 누군가가 시작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삼백육십 다섯 개의 날들을 일일이 헤아리는 일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물론 그런 규칙들이 주는 유용함을 그녀도 모르지는 않았다. 시간 역시 인간의 본능적인 필요가 부른 필연적인 결과였을 것이다. 다만, 어떤 특별한 날에, 그러니까 오늘처럼 만난 지 1년이 되었다는 이유로 선물을 주고받고, 특별한 식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내일 아침이면 휘발되어버릴 닭살 돋는 메시지를 혹 듣게 되는 것, 그녀는 그 모든 것이 그저 귀찮을 따름이었다.

‘런던행 비행기 티켓, 쿠론 유진 클러치 백, 그리고 티파니앤코 홀스슈 화이트골드 팬던트…’ 언젠가 친구의 다이어리에 붙은 포스트잇에서 보았던, 혹이라도 그런 유치한 위시 리스트들을 J가 떠올리고 있을까 봐 그녀는 괜스레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오늘 아침도,

“그냥 늘 보던 데서 만나.”라는 말 뒤에

“선물 같은 건 하지 마.”라고 굳이 덧붙였던 것이다.

하지만 전화 너머 J는 웃고 있었다. 자신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그에겐 신기하고, 별스럽고, 때로는 세련돼 보이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그럴 때면 K는 어이가 없기도 했고, 가끔은 동화 속 엄지 공주를 바라보는 다섯 살짜리 남자애의 감탄 같아 귀찮기도 했다. 그나마 이 관계가 오늘까지 이어진 건 저 소년을 닮은 남자의 치기 어린 환상이 아직 깨어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저마다의 길을 갈 수 있을까.

J를 처음으로 만났던 날도 그랬다.

때 이른 여름이 시작되려던 찰나, 지하철 출구를 막 나서 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였다.

야! 하고 누군가가 K의 어깨를 탁 치는 바람에 그녀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불현듯 등장하는 것, 골목길에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드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 몸의 중심을 가까스로 회복하며 뒤를

돌아다보았을 때, J가 거기 서 있었다. K는 그때 J의 몸짓과 표정을 신기하리만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J의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를 받아 든 초보 아빠의 놀라움, 계획에 없던 잇템을 다섯 시간의 아이 쇼핑 끝에 극적으

로 발견한 친구의 반가움이 동시에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반가움과 놀라움이 당황스러움으로 바뀌던 그 몇 초간의 찰나, K는 아마도 인상을 썼을 것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느새 J의 한 손이 K의 한쪽 팔을 거들고 있었다. 자신이 잘 아는 누군가로 잘못 알고 그런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우선 그의 손을 팔에서 살짝 떼어냈다. 그리고 몹시 기분이 상했으나 사과가 끝나면 알았다고 말한 후 돌아설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J가

난데없이 이렇게 말했었다.

“저기, 잠깐만요.”

J는 더는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리고 지갑에서 직사각형의 반짝이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K는 순간 J의 얼굴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선물이라니. 분명 그는 K를 다른 어떤 누군가로 착각했던 것이고, K는 그의 사과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는 것으로 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어이 그 티켓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가벼운 실랑이가 끝날 즈음 엉거주춤한 손짓으로 티켓을 내미는 K에게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J가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환하게 웃으며 분명히 이렇게 말했었다.

“금요일이잖아요.”

K는 그래서 지금도 어렴풋이나마 그 날이 금요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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