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깎이의 결혼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5 / Vol.33 브랜드 경험 (2013년 10월 발행)

“연필을 깎아오게.” 서슬 퍼런 장인의 굳은 얼굴에서 터져 나올 수많은 질문과 그래도 혹 모를 열댓 가지 덕담들을 예상한 그였지만 정말이지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한 터였다. 집 안에 들어설 때부터 한두 방울 맺히던 식은땀이 일거에 식는 기분이었다. 긴장이 풀려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긴장으로 들어서기 위해 몸이 이미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비장하고도 서늘한 장인의 기운이 그에게로 전해진 탓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1.

 

“연필을 깎아오게.”

서슬 퍼런 장인의 굳은 얼굴에서 터져 나올 수많은 질문과 그래도 혹 모를 열댓 가지 덕담들을 예상한 그였지만 정말이지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한 터였다. 집 안에 들어설 때부터 한두 방울 맺히던 식은땀이 일거에 식는 기분이었다. 긴장이 풀려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긴장으로 들어서기 위해 몸이 이미 다른 방식으로 적응하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비장하고도 서늘한 장인의 기운이 그에게로 전해진 탓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말 못 들었나? 내 딸과 결혼하려면 연필 열두 자루를 성심성의를 다해 깎아 오게. 그것도 손으로 직접 깎아야 하네. 결혼 승낙 여부는 그다음에 얘기할 걸세.”

그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함께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옆의 민주를 바라보았다.

어이없기는 매한가지라는 표정이었으나 민주는 빠르게 고개를 젓는 제스처를 놓치지 않았다. 일단 알았다고 대답하라는 신호임이 분명했다. 물론 지금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민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알았다.

“네. 잘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미래의 장인이 될지도 모를 어르신의 눈가가 살짝 삐쳐 올라갔다.

“언제까지 깎아 오면 되겠습니까?”

대답은 빨랐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여길 때까지.”

“아… 네….”

그리고 장인은 서슴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

다행인 것은 미래의 아내 될 사람과 장모 될 두 사람만큼은 이 상황의 황당함에 대해 함께 공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체 무슨 소리래? 저 양반이 노망이 났나?”

장모의 거친 입담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빠 무슨 일 있었어? 엄마, 대체 아빠 왜 저래? 나 시집 안 간다고 구박하던 아빠 맞아?”

방을 박차고 나간 장인의 귀에 들릴 법도 하게 크게 오고 가는 대화였지만 그는 그 대화에 낄 수 없었다. 연필을 깎아 오라니. 결혼을 허락받고 상견례를 논의하기 위해 온 자리에서 들을 법한 얘기가 전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그는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아니 어쩌면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연필이라는 놈을 만나본 일도 깎아본 일도 없던 터였다. 그런데 이제 장가를 가기 위해 연필을 깎아야 한다. 연필은커녕 과일 하나 제대로 깎아본 일 없는, 손재주라고는 종이배 하나도 접기 버거워할 만큼 덩치와 둔함을 겸비한 그가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처럼 자리에 앉아 연필을 깎아야 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 덩치를 하고 대체 어디에 앉아 연필을 깎는단 말인가.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는 마지 못해 여전히 어이없어 방방 뜨는 두 사람을 달랬다. 진심을 전혀 담을 수 없었으나 이 상황에서 함께 불평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주 불가능한 일도,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니 일단 연필부터 사야 했다.

‘그런데 대체 연필을 어디서 사야 하지?’

동네 어귀에 있던 문구점은 문을 닫은 지 오래였고, 사무실 비품은 총무실에서 받아 써왔지만 연필 따위를 신청한 적은 없었다.

그때였다. 민주가 그에게 기다란 종이 케이스 하나를 내밀었다.

“아빠가 성훈 씨한테 전하래. 어쩌지? 그냥 해본 말은 아니신가 봐.”

민주의 표정에서는 이미 결혼 여부에 대한 걱정이나 의문 따위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케이스에 인쇄된 낯선 연필 브랜드 로고의 철자만 몇 번이고 곱씹어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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