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타스브랜드 뮤지엄의 큐레이터 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5 / Vol.36 브랜드 뮤지엄, 뮤지엄 브랜드 (2014년 06월 발행)

2007년 6월 본격적으로 《유니타스브랜드》 창간을 준비했다. 목표는 그해 9월까지 창간준비호를 만드는 것. 내 기억으로는 세 번 정도 중도 포기를 결심했던 것 같다. 과연 몇 명이나 읽을까? 브랜드 매니저라는 직함도 없는 시점에 이 책을 누가 볼까? 이런 의문이 가장 마음을 어렵게 했다. 브랜드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굳이 내가 만들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2007년 6월 본격적으로 《유니타스브랜드》 창간을 준비했다. 목표는 그해 9월까지 창간준비호를 만드는 것. 내 기억으로는 세 번 정도 중도 포기를 결심했던 것 같다. 과연 몇 명이나 읽을까? 브랜드 매니저라는 직함도 없는 시점에 이 책을 누가 볼까? 이런 의문이 가장 마음을 어렵게 했다. 브랜드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굳이 내가 만들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당혹스럽겠지만 7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내가 왜 이 잡지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찾아 헤매고 있다. 우리나라 시장 현실에 이 책이 필요할까? 왜 7년 동안 이런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가? 브랜드를 공부할 좋은 방법이 많은데 굳이 이렇게 해야 할까? 36번째 볼륨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나온 책들을 살펴봤다. 7년 동안 나는 ‘브랜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되뇌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대답하고 싶다. 에디터가 아닌 영혼의 안내자라는 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큐레이터 관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인간을 먹는 브랜드,

인간이 만든 브랜드

 

초등학교 6학년인 교사로부터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학부모 수업을 부탁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무렵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라는 슬로건과 함께 ‘미제 브랜드’의 위력을 경험한 적이 있고 그 힘을 알고 있었기에 기꺼이 강의를 수락했다. 교사는 메일 확인 후 전화로 강의 의뢰를 한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어른들이 사용하는 브랜드 집착이 시작되고, 중학교에 가면 중독에 이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다. 자기 반 학생 중에는 20만 원짜리 볼펜을 사용하고, 부모님에게 선물 받은 50만 원짜리 만년필을 들고 다니는 학생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로 인해 교실에서 브랜드 도난 사건은 물론 학생들 간 빈부 격차가 생겨서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일부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특정 브랜드 계급 정하기’ 사건과 비슷한 일이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전화를 끊을 무렵 그는 나에게 여러 브랜드를 조사하는 브랜드 잡지 편집장으로서 ‘좋은 브랜드와 나쁜 브랜드’ 그리고 ‘명품 브랜드’가 아이들 정신 건강에 미치는 폐해를 설명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교실 뒤편에 참관하는 학부모 상대로 아이들과 청소년이 브랜드에 일찍 노출되었을 때 일어나는 소비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례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메일로 의뢰한 강의제목은 《브랜드란 무엇인가?》였다. 올바른 브랜드 소비 생활을 설명해달라고 한 의뢰에는 기꺼이 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교사는 전화로 강의 의뢰를 설명하면서 강의 주제를 ‘좋은 브랜드와 나쁜 브랜드’ 그리고 ‘브랜드 중독의 피해 사례’로 바꾸고 싶다고 요청했다.

 

나는 완곡한 변명을 하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브랜드 관련 종사자’로서 브랜드에 관한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람들이 좋은 브랜드라고 알고 있는 브랜드 중에는 나쁜 브랜드도 있으며, 나쁜 브랜드라고 하기엔 좋은 브랜드도 많기에 흑백논리로 좋고 나쁜 브랜드를 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지구 환경 차원에서 쉽게 버려지지 않는 명품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는 항상 인간 욕구와 욕망을 자극해서 허영과 사치를 추구하는 쓰레기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예로 커피는 0cal이다. 만일 인간이 커피를 더이상 마시지 않고 그 땅에 칼로리 있는 곡식을 심어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면 기아는 사라질 것이다.

 

값싼 의류를 파는 브랜드는 우리에게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새로움’을 제공하지만, 의류를 만드는 면화 농장은 전 세계 농약의 20%를 사용하는 환경 파괴의 주범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내 중심에 편안한 공간과 저렴한 가격의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브랜드를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브랜드가 인기를 얻고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다양한 커피 프랜차이즈가 늘어나 커피 소비량도 증가했다. 여기저기 많은 커피 브랜드가 생겼지만 실상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또 다른 기아를 만들어낸 셈이 되었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있다. 내 딸은 유기견을 위한 브랜드 ‘For the Dog’와 신발 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본격적인 시장조사를 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브랜드를 런칭할 계획이다. 나는 딸이 자신의 브랜드를 인생의 대학으로 삼고 평생 공부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기를 바란다. 내 딸이 만드는 브랜드는 좋은 브랜드가 될까? 아니면 그 반대가 될까? 만약 내 딸 옆에 브랜드 중독에 걸린 어느 중학교 학생이 앉아 브랜드 강의를 듣는다면 나는 무엇을 말할까? 그 옆에 납품 공장을 운영하다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런칭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하는 중소기업 사장이 있다면 나의 강의 내용은 어떻게 변할까? 또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싶어서 브랜드 컨설팅을 의뢰한 대기업 클라이언트가 앉아 있다면? 사회적 브랜드를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운동가가 있다면? 브랜드를 자본주의의 더러운 잉여물로 믿고 있는 반 자본주의자가 있다면? 환경론자가 앉아 있고, 그 옆에 강의를 의뢰한 초등학교 교사가 있다면 나는 브랜드에 관해 어떤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시장의 어떤 브랜드는 인간을 통째로 잡아먹는 반면 또 다른 브랜드는 인간을 돕는다. 인간을 먹는 브랜드는 그야말로 욕구, 욕망, 사치, 자랑, 구별이라는 코드를 통해 새로운 계급을 만든다. 마치 영화 <에일리언>처럼 강력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갖고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삼켜버리는 것 같다. 또는 브랜드가 인간의 정신 안으로 들어가 연가시처럼 통째로 먹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모든 브랜드가 이런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뱀의 맹독은 혈액응고방지제인 아그라스타트의 재료로 사용되고, 곡물에 기생하는 맥각균 곰팡이의 에르고메트린은 분만 후 출혈방지제로 사용된다. 물론 모든 브랜드가 맹독을 가진 건 아니다. 또한 맹독에 취약한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벌침에 맞아 죽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해 벌침을 맞는다. 이처럼 브랜드도 어떤 사람에게는 독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브랜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브랜드에는 독이 없다. 사람의 결핍에 의한 반응일 뿐이다.

 

시장의 모든 물건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결핍으로 브랜드를 만든다. 브랜드는 필요, 욕구, 결핍,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더 나아가 브랜드는 인간이 갈망하는 최상위 단계 욕구인 ‘소속감, 관계, 문화, 경험, 자아실현과 자기다움’이라는 결핍까지 메운다. 어떻게 브랜드가 이런 것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악한 어른이 순수한 아이를 이해하고 제품을 만든 사례가 있다. 7살 된 내 아들은 한때 장난감 딱지에 정신이 팔렸었다. 자신의 비싼 장난감을 딱지와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용돈을 털어 딱지를 구입했다. 나는 7살 아들에게 1~2년 뒤에는 딱지가 아무 소용 없을 거라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초등학생이 되면 친구들이 더이상 딱지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것이고, 네가 좋아하는 만화 영화 주인공을 흉내 내는 것도 무의미해질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들은 친구와 함께 놀고, 그들에게 인정받으며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왕 딱지’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아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결핍을 딱지로 메우며, 자아실현과 관계유지를 배워가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딱지 집착 현상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성인들의 결핍과 집착의 원형을 살펴보았다. 딱지를 만드는 어른은 좋은 어른일까? 나쁜 어른일까?

 

연예인들이 입으면 다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에게 브랜드를 뭐라고 말할까? 브랜드를 조직의 계급으로 생각하는 고등학생들은 뭐라고 설득해야 할까? 브랜드로 대박과 떼돈을 벌고 싶어하는 기업에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면 나는 이들에게 같은 브랜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앞으로 하는 브랜드에 관한 나의 이야기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제 브랜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마트나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산다. 그리고 물부터 바나나, 고기, 생선까지 브랜드를 확인하고 구매한다. 정확히 말해 슈퍼나 마트에는 오직 브랜드만 존재한다. 우리는 브랜드를 경험, 지식, 권유, 추천 등 자신의 개인 경험에 비춰보고 구매한다. 그러나 이런 브랜드에 대해서 한 번도 공부한 적은 없다. 브랜드를 공부하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돈만 있으면 어떤 브랜드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 브랜드를 사고 싶어하는지, 이 브랜드가 나에게 왜 필요한지, 그리고 이 브랜드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관심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소비자’로서 브랜드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만약 브랜드를 ‘단순한 소비’가 아닌 ‘지적인 소유’로 본다면 어떤 교양과 상식이 필요할까? 미술 경매장에서 그림을 는 사람은 단순히 예쁜 그림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고도의 예술 지식과 사회 문화적 통찰력으로 ‘소유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구매하고 쓰레기가 되는 브랜드를 샀다면 결국 쓰레기를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브랜드를 구매할 때는 어떤 지식이 필요할까?

 

세상은 브랜드로 이루어져 있다. 그 브랜드는 인간을 먹는 브랜드와 인간이 만든 브랜드로 나뉜다. 그동안 유니타스브랜드에서는 브랜드로 이루어진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인간을 조정하는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지 중독(?)에 걸린 아들과 유기견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하는 딸이 꼭 알아야 하는 브랜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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