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Origin에서 만나는 Originality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이주헌  고유주소 시즌2 / Vol.22(하) Vol.22(하) 인문학적 브랜드 (2012년 01월 발행)

예술가들은 주체로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브랜드를 만든다면, 진정성과 정직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것도 모방할 수 없는 것이 될 거라는 겁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브랜드가 진정성과 정직성이 있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거리낄 게 없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없죠. 오히려 더 당당하게 고객에게 자신을 드러낼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기 때문에 마케팅이라는 용어로 자꾸만 포장하려고 하는 겁니다. 따라서 브랜딩에서 최고의 전략은 진정성과 정직입니다. 만약 진정성과 정직이 있다면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란 걸 압니다. 다시 일어서면 된다는 그 진리를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죠. 브랜더가 지금부터 생각해야 할 것은 다른 게 아니에요. 자신이 주체인지 아닌지를 아는 거죠.

The interview with 미술평론가 이주헌 

 

“헤이리로 와 주세요.”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예술 마을 헤이리는 서울의 근교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여행지’로 향하는 기분이 든다. 왜일까. 그곳은 도심과 명확한 획을 그으며 거대한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오늘의 사회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창조성과 모험, 실험, 도전 등을 화두로 삼으며 바깥 세상과는 철저하게 다른 기준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일 게다.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의 입에서 ‘헤이리’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와의 인터뷰에 본능적으로 설렘을 느꼈던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 설렘의 정확한 근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의 저서 《미술 창의력 발전소》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미술가들은 영원한 창조가다. 미술가들은 아무것도 없는 흰 바탕에 새로운 우주를 펼치고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갖가지 환상과 아이디어를 박진감 넘치는 형상으로 구현해 낸다. 미술은 우리가 창조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영감과 지식을 제공해 준다.”

 

미술에 문외한이라 해도, 세잔의 ‘사과’ 그림을 보며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이유는 그것은 단지 사과를 그린 정물화가 아니라 미술가가 탄생시킨 또 하나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넓은 범주로 보았을 때 예술 분야가 이에 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술은 다름 아닌 인간이 만들고 싶어하는 유토피아의 실현체이기 때문이다. 네이버에서 진행하는 ‘지식인의 서재’에서 그가 한 말을 한 번 더 들어 보자.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내 마음에 어떤 느낌이 일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내가 내 느낌의 주인이 되고, 내 느낌의 주인이 됨으로써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행위거든요. 그러니까 작가의 주관에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술은 억눌려 있던 자아를 일깨워 본연의 자아로 돌아가게 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마치 헤이리가 사회와 담을 쌓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오히려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이는 것처럼, 오늘날 예술이 감당하고 있는 인문학적 목적은 바로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일테다.

 

 

Creativity가 아니라 Originality다
Q
많은 브랜더들을 만나 인터뷰를 할 때 종종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인사이트나 영감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라는 질문인데요. 이 질문에 대한 공통적인 답 중의 하나가 인사이트나 영감을 받는 장소로 미술관을 꼽는다는 겁니다. 브랜더만큼 창조에 관심 있는 사람도 드뭅니다. 그렇다 보니 현재 자신이 속한 환경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의 경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장소를 찾습니다. 그런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꼽았다는 것은 그곳이 분명 특별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A
영감을 뜻하는 ‘Inspiration’은 ‘예술적 영감’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미술은 이 Inspiration에 의존하는 세계죠.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과 시를 포함한 예술 영역은 모두 이것을 통해 발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Inspiration이라는 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스 문화에서는 이러한 Inspiration을 주는 무언가를 의인화하여 ‘*뮤즈(Muse)’라고 불렀죠. 이 뮤즈들이 시인에게는 시적 영감을, 음악가에게는 음악적 영감을 그리고 미술가에게는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했어요. 이 뮤즈가 말해 주는 것은, Inspiration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나에게 주는 거란 걸 뜻하는 거죠.

 

예술가들은 이처럼 바깥으로부터 Inspiration을 받아 작품을 만듭니다. 다시 말해 Inspiration을 받아야 작품을 만든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예술 작품 안에는 작가가 받은 Inspiration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Inspiration을 받는 장소로 미술관을 꼽는 이유입니다. 작품속에 Inspiration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그 작품 속에서 Inspiration을 받는 것이죠. 비단 미술 작품만이 아니에요.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본다든가, 혹은 영화를 본다든가 할 때도 우리는 Inspiration을 받습니다. Inspiration이 풍부한 책을 읽게 되면 계속해서 글만을 쫓아갈 수가 없어요. 이런 책은 읽다가 자꾸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이 사람은 이런 생각까지 하는구나’ ‘나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하고 말이죠. 그러면서 이러한 생각은 일종의 촉발제가 되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Inspiration을 주는 일종의 창이라고 할 수 있어요. 

 

 

*뮤즈(Muse)
고대 그리스어 무사(Μουσα)의 영어 표기다.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났고 예술가들의 활동에 영감을 주는 여신들이다. 본래는 3명이었으나 시인 헤시도오스 이후에 9명의 여신으로 정리됐다. 로마시대 이후 각각 담당학예 분야가 생겼다. 클레이오는 역사, 탈레이아는 희극, 에라토는 독창, 에우테르페는 서정시, 폴리힘니아는 찬가, 칼리오페는 서사시, 테르프시코레는 합창과 가무, 우라니아는 천문, 멜포메네는 비극을 주관한다. 고대 그리스의 여러 서사시들에서 뮤즈들은 이야기에 영감을 주는 존재로 묘사되거나 화자가 되어 작품 서술을 주도하기도 한다.

 

 

Inspiration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나에게 주는 거란 걸 뜻하는 거죠.

 

 

Q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예술가들을 따라다니는 말 중에 ‘독창적이다’ ‘창의적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술가만큼 ‘창조가’라는 말이 꼭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예술가들에게 있어 창의력의 원천은 어디일까는 늘 화두였습니다. 그렇다면 창조성의 원천을 찾아가는 시작점을 ‘Inspiration’으로 삼아야 하나요?

 

A
창조성을 얘기할 때 보통 ‘creative’라는 단어를 사용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originality’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creative’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make’라는 단어와 유사한 점이 있어요. 하지만 ‘만들다’는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creative’는 이제까지 없었던 것을 만드는 거죠. 흔히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다’고 말이죠. creative는 바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나요?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신의 영역이에요. 인간은 유에서 유를 만들 뿐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있었던 것인데, 이제까지 사람들이 보지 못하던 것, 혹은 못 느끼던 부분을 찾아 보이도록 하는 것이죠. 그렇게 했을 경우, 그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창조자’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원래부터 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못 보던 것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일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바로 자신의 ‘기원(origin)’으로 돌아가보라고 말입니다. 기원으로 돌아가 보면,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음을 알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 나의 시선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는 신선하고, 결국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기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신호가 무엇인지 아세요? 다름 아닌 호기심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죠. 알렉산더 플레밍은 항생제 중의 하나인 페니실린을 처음으로 만든 과학자입니다. 어느 날 플레밍은 세균을 배양하던 용기에 푸른곰팡이가 생긴 것을 보았죠. 당시에는 연구 중에 종종 곰팡이가 생겼는데, 이럴 때면 모두 실험을 망쳤다며 버렸습니다. 하지만 플레밍은 오히려 이 곰팡이에 몰입하기 시작했어요. 바로 호기심이 생긴 거죠.

 

푸른곰팡이를 관찰하던 플레밍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균 용기에 곰팡이가 꼈다는 것은 다른 식으로 해석하면 세균의 영토에 곰팡이가 쳐들어가 이겼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세균이 땅을 빼앗긴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세균을 연구할 게 아니라, 더 힘이 센 이 곰팡이를 연구하자고 생각한 겁니다. 결국 이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이 만들어지죠. 뮤즈가 Inspiration을 가져다줄 때 그 징조가 바로 호기심입니다. 이러한 징조가 왔을 때, 이것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몰입하여 자기의 기원, 그러니까 자신만의 시각과 생각으로 가져가 보면 거기에서 창조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창조는 originality라는 겁니다. 예술가들이 창조적인 것은 뮤즈가 가져다준 호기심을 붙잡아 자기의 기원으로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Q

창조성이 ‘originality’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유니타스브랜드는 ‘브랜드 창업’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originality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브랜드는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강화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저희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자신만의 originality를 브랜드에 담는다면 그것은 태생부터 차별화가 가능한 브랜드가 될 거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결국 브랜드는 궁극적으로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것이 되는 걸 꿈꾸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창조성이란 originality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A
'대체 불가능하다’라는 것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이 originality라는 단어와 비슷한 단어를 하나 더 꼽으라고 한다면, ‘individuality’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말로 하면 ‘개성’이라고 말할 수 있죠. 개성이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만의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거죠. 독창성이나 독자성이란 ‘다른 것을 모방함 없이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들거나 생각한 것’ ‘다른 것과 구별되는 혼자만의 특유한 성질’을 말합니다.

 

이 individuality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르네상스 때부 터예요. 르네상스 시대를 개성이 탄생된 시기라고도 부르잖아요. 신권이 전부였던 중세가 저물면서 개개인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죠. individual이란 단어는 ‘나누다’라는 divide에서 파생되었는데, divide하고 divide하고, 또 divide해서 더 이상 divide되지 않는 상황까지 간 것이 바로 individual의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더 이상 divide가 안 되는 존재가 바로 individual이라는 겁니다. 더 이상 나눠지지 않는 것, 공유될 수 없는 것, 단 하나뿐인 것, 이것이 바로 originality죠.

 

예술가들이 창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originality만을 고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술가들에게 있어 ‘표절’이란 있을 수 없는 거지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거듭 말하지만 originality는 끊임없이 나의 기원으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밖을 내다보죠. 바깥을 보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보이며, 그들을 모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Originality,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다
Q
나의 기원으로 돌아가서 나의 originality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우리나라의 경우 압축 성장을 거쳐 오면서 서양처럼 ‘나’에 대해서 깊게 사유하는 인문학적 성찰을 못했습니다. 그저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는데 몰두하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나를 잃어버린 거죠. 이런 상황에서 브랜더들에게 거듭 ‘기원으로 돌아가라’라고 하는 것은 시작부터 너무나 어려운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A
동의합니다. 서양에서 위대한 작품, 창조적인 업적들이 동양보다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라 할 수 있거든요. 서양의 경우, 그리스 문화에 그 뿌리가 있죠. 그래서 서양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originality를 개발시키는 문화가 발달했죠. 동양,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집단주의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를 지나 개인주의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진정한 개인주의가 되지는 못하고 있죠. Individual이란 더 이상 나눠질 수 없는 존재라고 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Individual한테 요구하게 되는 것은 보편적인 가치가 아니에요. 보편적인 것은 공유할 수 있는 거잖아요. Individual이란 공유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없을 때까지 끊임없이 나누는 겁니다.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계속적으로 제거하면서 궁극적으로 더 이상 공유되는 것이 없을 때 Individual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Individual이라는 것은 굉장히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독립적인 존재가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볼 수 있는 특징이 있어요. 바로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서양으로 유학을 간 동양 학생들이 그 쪽 아이들에게 자주 듣는 얘기 중의 하나가 이거예요. “왜 자꾸 네가 배운 것만을 얘기하느냐. 선생님이 얘기해 준 것, 어떤 학자가 얘기한 것, 그런 것만을 얘기하느냐. 너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거예요.

 

Individual하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가진 가치를 존중하며, 그것을 명예롭게 생각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이 인식하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거든요. 하지만 동양, 그것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주의가 완전하게 안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산업화가 되고, 자본주의 시스템까지 정착되어 버려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부작용이란, 전통적인 가치와 서구적인 가치가 충돌하는 현상을 말하죠. 종종 유튜브에 올라오는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10대 청소년과 80대 노인들의 다툼이 단적인 예이지요.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가치가 더 거세게 충돌하기 시작하면 이러한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날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바로 각각의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결국에는 개인의 영역으로 귀결되기 때문이에요. 스포츠 경기하고 똑같습니다. 아무리 코치가 철저하게 전략을 짜고 훈련을 시킨다 할지라도 경기가 시작되면 모든 것은 개인의 책임과 역량, 판단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과 명예를 존중하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죠.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계속적으로 제거하면서
궁극적으로 더 이상 공유되는 것이 없을 때 Individual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Individual이라는 것은 굉장히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Q
주체적인 개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자기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나의 기원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된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공동체 사회로 대변되던 전통사회가 문을 닫으면서 개인의 역량이 크게 대두된 것은 단지 서양의 시대 흐름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시대의 변천이니까요. 이러한 시대적인 요구는 다시 인문학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학문이지 않습니까. 주체적으로 사는 인간이 중요해진 오늘날, 인문학의 부활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여겨집니다. 선생님은 인문학이 화두로 떠오른 이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A
《괴짜 경제학》을 쓴 스티븐 레빗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경제학은 어떤 방법론에 관해서는무궁무진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지루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너무나 큰 약점이 있다. 바로 훌륭한 질문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이 생긴 이유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잖아요. ‘경제를 살려 달라’고 하는 말의 숨어 있는 진짜 의미는 ‘삶의 질을 높여 달라’는 것이죠. 경제학이란 이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바로 자본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방법론을 제시하는 거죠. 이런 경제학이 제시하는 삶의 질은 어느 시대까지는 통용되었어요. 그러나 현재는 더 이상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질은 어떻게 높아지는 걸까요? 바로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물질적인 풍요를 완전하게 배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가지가 모두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물질적인 풍요에만 촉각을 세웠다는 겁니다. 인문학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정신적인 풍요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일 텐데, 이것은 바로 스티븐 레빗이 말한 ‘질문’에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나의 삶이 만족스러운가, 나는 만족스럽더라도 주변 사람들도 만족스러운가, 그들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않았나,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거라 할 수 있죠. 왜냐면 질문이란 내 삶의 프레임(frame)을 규정해주는 거거든요. 그
러니까 내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내 삶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Q

이번에 많은 인문학자들을 만나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질문’이었습니다. 인문학이란 다른 말로 ‘질문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내려도 될 만큼 인문학자들은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여러 번 강조를 하시더군요. 물론 인문학에서뿐만이 아니라 질문이 가지는 막강한 힘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연구로 밝혀졌죠.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도 “질문을 많이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결국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면서 질문이 자신의 기업을 창조적인 기업으로 만든 공신이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A
맞습니다. 질문이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타성에 젖지 않고 자신이 구축해 놓은 낡은 프레임을 부수며, 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가게 해주는 것이 질문이죠. 질문하는 삶이란 결국 생각하는 삶일 뿐만 아니라, 의식하는 삶이며, 반성하는 삶이며 또한 창조하는 삶입니다. 자신한테 현재 주어진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의식하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통해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가는 삶은 결국 정신적인 풍요를 가져오는 삶이 됩니다.
 
다시 예술로 돌아가 보면, 예술의 본질은 다름 아닌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자신이 방금 만든 작품을 보면서도 이게 아름답나? 진짜로 아름답나? 더 아름다운 것은 없나? 하면서 질문을 던지죠. 위대한 예술가들을 보세요. 그들의 작품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최고의 역작임에 틀림없지만, ‘난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하지 않죠. 이런 예술가는 없어요. 오히려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은 어떻게 만들지?’ 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계속적으로 도전을 감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것을 보여 주는 창조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시장처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IBM을 예로 들어 볼까요? IBM의 경우 과거 빌 게이츠를 필두로 한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소위 왕좌를 내놓게 되었잖아요. IBM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어요. 하드웨어의 시대가 끝날 거라고 생각을 못한 거죠. 하지만 빌 게이츠는 질문을 했어요. 하드웨어 시대의 다음은 어떤 시대가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는 소프트웨어를 들고 나온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요?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시대 다음으로 컨텐츠의 시대를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그는 앱스토어를 만들죠. 앱스토어가 막 나올 때만 해도 사람들은 누가 어플리케이션을 돈을 주면서까지 다운로드 받냐며 의아해했죠. 왜냐면 과거에는 이러한 프로그램의 경우 컴퓨터나 휴대폰에 이미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또 한 번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그는 아예 IT 생태계를 새롭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애플에서 휴대폰이 나오기 전까지 통신사가 휴대폰 시장을 좌지우지했지만, 지금은 휴대폰 제조사가 힘을 가지게 되었잖아요. 애플로 인해 IT 생태계가 바뀌면서 생겨난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환경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과거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죠. 변화하는 환경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삶을 살아 내려면 질문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질문이 없는 삶은 극단적으로 말해 쓸모 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결국에는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의 저자이자 변화심리학의 대가인 앤서니 라빈스도 “질문의 수준이 생각의 수준을 결정하고, 생각의 수준이 삶의 수준까지 결정하게 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드려보고 싶네요. ‘좋은 질문’이란 어떤 질문인가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문학적으로 가장 좋은 질문’이란 무엇일까요?

 

A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마더 테레사를 한번 보도록 하죠. 두 사람 중 누가 더 위대한 사람인가요? 만약 두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을 양적인 가치에 둔다면 당연히 스티브 잡스일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미국인을 넘어 전 세계인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준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인도에만 국한되어 있지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을 비교하는 기준을 질적인 가치에 둔다면 두 사람은 동등합니다. 마더 테레사의 경우 지상에 천국을 만든 사람이 아닙니까. 그것도 자신을 희생해서 말입니다. 이처럼 질적인 가치로 보았을 경우, 결과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세상을 향해 ‘어떤’ 질문을 던졌는가입니다.

 

저는 가장 좋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질문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만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originality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발은 여기서부터 해야 해요. 자신에게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지며 감각들을 깨우고,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왜 예술이 위대한 줄 아세요? 예술은 감각으로 즐기는 겁니다. 감각을 통해 즐긴다는 것은 감각의 주인인 나, 주체가 살아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예술 작품을 보는 순간 내가 살아나게 되고,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그 작품을 바라보기 때문에 예술은 숨어 있던 자아를 깨워줍니다. 얼마나 위대합니까?

 

 

자신에게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지며 감각들을 깨우고,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Originality의 전략, 진정성
Q
다시 originality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예술이란 영혼의 언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진의를 오늘 이 자리에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예술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기원에서 찾은 자신만의 originality가 투영됐기 때문에 작가 자신의 영혼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브랜더들도 자신의 영혼을 투영한 브랜드를 만든다면 그것은 곧 예술 작품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예술가들이 브랜더가 된다면 어떤 브랜드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A
예술가들이 브랜드를 만든다면, 단정할 수 있는 것은 그 브랜드는 단 하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브랜더나 마케터분들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전략’을 뜻하는 ‘strategy’죠. 이 단어의 어원을 찾아가 보면 ‘장군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장군, 지휘관들이 군대를 움직이는 기술을 말하는 겁니다. 이러한 뜻에서 시작한 strategy는 그 후 하나의 뜻이 더 가미되는데 다름 아닌 ‘상대를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속이다’라는 뜻이기보다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뜻을 가진 전략이라는 단어가 브랜드의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는, 소비자의 마음을 조정하는 것이겠지요. 자신의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소위 내 편으로 끌어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 것인가가 바로 전략일 겁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 봅시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요? 바로 ‘진정성’과 ‘정직’입니다. 이것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진정성과 정직성은 ‘주체’로서 올바로 섰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내가 진짜 주체가 되었을 때 이 두 개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거죠.

 

예술가들은 주체로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브랜드를 만든다면, 진정성과 정직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것도 모방할 수 없는 것이 될 거라는 겁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브랜드가 진정성과 정직성이 있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거리낄 게 없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없죠. 오히려 더 당당하게 고객에게 자신을 드러낼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기 때문에 마케팅이라는 용어로 자꾸만 포장하려고 하는 겁니다. 따라서 브랜딩에서 최고의 전략은 진정성과 정직입니다. 만약 진정성과 정직이 있다면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란 걸 압니다. 다시 일어서면 된다는 그 진리를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죠. 브랜더가 지금부터 생각해야 할 것은 다른 게 아니에요. 자신이 주체인지 아닌지를 아는 거죠.

 

BRANDING ∩ LIBERAL ARTS
“자신을 찾는 것이 인간이 살아야 할 까닭이다. 자신을 찾지 못한다면 그 외에 다른 무엇을 찾는다 해도 무의미하다.” 소설가 제임스 미처너의 말처럼 ‘자기 찾기’는 삶의 목적이다. 동시에 이를 찾으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브랜드를 런칭하거나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 브랜더들은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 이유는 남과 달라지기 위해서 자신의 차별성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브랜드가 연명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경쟁자와 상황은 항상 변하게 마련이고 이에 대응하는 차별성만 찾는 브랜드는 죽을 때까지 대응만 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브랜드도 그 삶을 자신이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선하게, 그리고 영향력있게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 브랜드 런칭 때는 브랜드의 핵심가치와 비전을 세우기 위해서 브랜드 구축 때는 자신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더욱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오리지널리티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기록해 보기를 권한다(실제로 유니타스브랜드 Vol.20 ‘브랜드 창업’에서 취재한 많은 브랜드 경영자가 이런 과정을 거쳤다). 그러면 차별성은 결과로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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