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인문학 │조성환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5 / Vol.31 애플 코드와 씨드 (2013년 06월 발행)

“새로운 창조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우주 내에 면면히 계속되고 있다. 나는 언제나 이 창조를 경험하고 있다고 믿는다.” 1930년 옥스퍼드대학 철학 모임에서 《스웨덴 학술지》에 기고한 글의 시작 부분이다. 그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창조가 추상적이고 정신적이어서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또한 새로운 창조, 혁신이 시작될 때 예측할 수 없는 ‘무(Rien)’가 나타나서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강변한다. 우주가 창조의 섭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속에서 일어나는 혁신은 새로운 변화의 또 다른 시작임을 이해할 것이다. 애플은 바로 이 ‘무(Rien)’의 실체다. 우리는 애플의 ‘무’를 예측할 수 없지만,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삶 속에서 이미 애플로 인한 변화를 목도했고, 여전히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애플이라는 브랜드의 힘이다.

The interview with 충남대학교 산업미술학과 교수 조성환

 

 

점 같은 공간 섬광 같은 시간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의 영혼이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에 영혼을 담았다고 표현했다. 다시 말해 애플 브랜드의 모든 창조적 활동과 제품의 정체성은 ‘인문정신’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영혼에 영향을 준 사람 중에 18세기 영국 작가 윌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디어가 막힐 때마다 그의 시집을 펼쳤다고 고백했다. 윌리엄 브레이크의 <순수의 전조(前兆), Auguries of Innocence)>라는 시의 일부다.

 

한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길지 않은 문장에 철학과 물리학이 교차한다. 세상의 진리를 압축해 놓은 듯 개념이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한 단락씩 들여다보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에서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사고가 확장됨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점이 사물에서 인간(영혼)으로 옮겨감을 볼 수 있다. 러시아 출신 미국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는 “시인은 시간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느끼고, 과학자는 우주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본다”고 했다. 바로 아인슈타인 상대성원리의 결과다. 시인과 과학자는 같은 곳에 있어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따라서 서로의 경험과 관점이 교차할 때 그 지경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진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가 윌리엄 브레이크 시에서 본 것은 문장 너머에 있는 애플 제품의 미래가 아니었을까? 제품에 영혼과 공간을 초월하는 시간을 담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제품을 통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는 그것을 확신했다. 실제 1980년대 스티브 잡스 집에는 침대 하나, 전등 한 개, 아인슈타인의 초상화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 흔한 장식품 하나 없었다. 최소한의 완벽한 것만 곁에 두기 원하는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상상력과 꿈들로 채우기에도 모자란다고 생각한 탓일지 모른다. 그 생각들이 너무 커서 다른 물건을 놓을 수 없었다면 억측일까. 완벽에 가까운 세밀함과 첨예함. 강한 자기 신념과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애플이라는 브랜드는 스티브 잡스의 오마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주를 놀라게 하자(Make a Dent in the Universe) ”는 매킨토시를 세상에 발표하기 전 그가 던진 명언이다.

 

조성환 충남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는 “스티브 잡스는 시, 철학, 심리학 등에서 과학이 알아내지 못한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발견했다. 이 말이 시사하는 점은 인문학이 종래의 제품과 사람에 대한 관점을 바꿔놨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창의적 시각으로의 변화다. 질과 가격 기준으로 하드웨어의 품질을 정하던 시장에 인문적 성찰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피력했다.

 

브랜드의 핵심은 인간이다. 애플은 브랜드 핵심을 상기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상기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경제로 넘어갔던 패러다임이 다시 인간으로 재위치되는 일이 벌어졌다. 스티브 잡스가 보이지 않는 정신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간과했거나 애플이라는 브랜드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인간 나아가 브랜드의 ‘영혼’이 조명받는데 까지 더 지체되었으리라. 스티브 잡스의 상상력은 과학 영역에서 하지 못했던 창의와 혁신으로 우리의 무의식 속 감성을 깨웠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꿈을 팔고 있다. 물건을 팔면 소비자는 물건을 받지만, 꿈을 팔면 감동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애플의 변론

“애플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인간의 존재가 아닌 애플의 존재 사유에 대해 질문한다. 어쩌면 이 질문은 애플 마니아와 브랜더에게 던지는 의문일 수도 있다. 애플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애플은 기술과 인간의 공생에 대해 보다 철학적으로 사유할 기회를 제공했다. 만일 애플이 없었다면, 기기는 빠른 속도와 훌륭한 디자인에서 멈췄을 것이다. 기기에 자신의 혼을 담는다는 표현은 마음에 묻어둬야 하지 않았을까.

 

조성환 교수는 인터뷰에서 애플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 철학이 진일보했다고 고백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철학자 하이데거가 현재를 ‘기술의 시대’로 규정하고 기술에 의존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 중심이 아닌 인간의 본질을 통찰해야 한다’는 철학적 논의에서 출발한다.

 

하이데거는 현시대를 ‘기술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리고 현대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한 ‘기술과 인간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현대 과학 기술이 인간 형태를 규정하는 사고 아래, 기술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는 데 있다. 기술은 이제 인간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현대인들은 표면상 기술을 도구로 생각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삶은 사실상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에 현대기술문명은 기술이 도구로서의 위치를 망각했다면, 인간은 자신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현대인의 지성은 감성과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감성과 분리된 지성은 생명력을 갖지 못한 무미건조한 정신에 이르고 만다. 이 문제는 나아가 인간 고유의 존재와 의미 상실, 인간 주체성 상실로 인한 인간과 물질 사이의 본질적 차이의 소멸로 이어진다. 하이데거는 기술문명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술 극복을 위한 거대한 의식의 전향’을 권고했다. 여기서 의식의 전향은 기계적 인식의 틀을 벗어나 인간 본질을 통찰하는 것이다. 본질적 통찰은 인간 고유의 문제 해결로 이어진다. 인간의 정신에 대한 애플의 견해는 어떨까. 조성환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과학적 사유에 대립하는 정신적 통찰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들은 으레 자신의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이탈리아 작품을 싣는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디자인의 전형이라고 믿는 탓이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조성환 교수는 2004년 해외 연구 워크숍으로 유럽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현대 디자인의 거장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스튜디오를 방문했는데, 연수자 중 누군가가 “선생님은 왜 삼성, LG 같은 회사의 모바일을 위시한 정보기기 디자인을 안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그 제품 어디에도 내 영혼을 담을 공간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명쾌한 대답이었다. ‘영혼을 담는다’는 표현은 늘 고민해왔던 디자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줬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유일한 인간 활동이다. 같은 맥락에서 스티브 잡스는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디자인에 인간 정신을 담는다’는 일련의 메시지를 동일하게 표현해냈다.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에토레 소트사스는 이탈리아 산업 디자인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이다. 포스트모던인 현대디자인, 멤피스(Memphis) 디자인을 처음으로 선보인 진정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현대디자인 주류는 이탈리아가 산업 디자인에 선을 그으면서 시작됐다. 현 산업디자이너인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은 멤피스 디자인을 보고 ‘이것이 디자인이구나 ’ 생각하면서 자신이 추구한 디자인에 대한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현재 거장으로 불리는 사람 대부분이 이탈리아 디자인에 영향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디자인이 인간의 감성 즉, 본질적으로 인간정신에 기반을 둔다고 말한다. 20세기 디자인 아이콘이 된 타자기 발렌틴(Valentine), 디자인그룹 멤피스를 위해 만든 칼톤 캐비닛이 에토레 소트사스의 작품이다.

 

 

애플의 인문학적 고찰

애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 있다. 근대 이후 인류는 크게 두 개의 사고 흐름을 좇고 있다. 하나는 과학적 사유다. 현재 우리는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과학의 대표적 예가 경영이다. 경영은 데이터와 사실에 근거한다. 과학은 모든 것을 분석적, 물리적, 물질적, 목적론적으로 본다. 이는 유물론적인 사고다. 인간이 과학을 사유하게 된 데는 자연을 분석하여 애매모호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데 연유한다. 과학이 분석한 현상의 공통점은 물질적, 도구적이라는 사실이다. 자연 현상은 분석하여 정리할 수 있다. 문제는 애플이라는 브랜드는 과학적 분석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대 철학으로 넘어오면서 소비자는 ‘브랜드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혼란을 겪는 이유는 과학적 사유에 철저하게 찌들어 있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은 600년의 근대화를 거치면서 의식이 학습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우리의 근대화는 불과 60여 년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 몇백 년에 걸쳐 학습되어야 할 지식이 머릿속에는 있는데, 체화는 안된 셈이다. 우리의 인식에는 이런 혼란이 남아 있다. 애플의 신념과 스티브 잡스가 가지고 있는 가치 기준은 과학적 속성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애플 과학론 vs. 감성론

세상에는 과학의 눈으로 애플을 보는 사람과 정신의 눈으로 애플을 보는 사람이 있다. 정신은 엄밀히 말해 인간 삶의 본질이다. 따라서 정신으로 애플을 본다는 것은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브랜드 인격체는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다. 브랜드는 형식 너머의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지니며, 현대 포스트 모던 시대에는 암묵적이고 비명시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이 설득력을 얻는다. 조성환 교수는 “브랜드가 예전에는 경영 성과를 올리는 데 필요한 집약된 활동의 표식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덴티티가 더 어울리는 말이 되었다. 아이덴티티는 어떤 대상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기업을 인격적 실체로 보는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영 성과를 낸 에너지, 본질은 무엇인가’를 찾는 데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폰5 출시 후 애플에 실망했다고 토로한다. 기대에 못 미쳤다고 평가한다. 조성환 교수는 “그것은 결국 우리 수준의 기대에 따른 실망이다. 그리고 과학적 접근 방식에 잣대를 댄 경영적 입장이다”라고 설명했다. 가령, 사람들은 배우자나 인생의 파트너에게 사소한 실망이 거듭되었다고 그 사람을 버리거나 하진 않는다. 관계의 지속성은 앞으로 뭐가 나올지 기대하고 설령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지켜보고 함께 하는 것 아닌가. 그는 “아이폰5에 실망했다는 여론은 그 여론의 대상이 누구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사실 전 세계인이 그렇다는 건지, 매체와 가까이 있는 소수인지 알 수 없다. 분명 그중에는 실망했지만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는 우리나라의 애플에 대한 여론은 방어적이고 경쟁자적 입장에서 형성된 것임을 강조한다.

 

 

애플 브랜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애플이란 브랜드를 사람의 삶과 동일하게 생각한다. 삶을 살다 보면 기대도 하고 실망도 한다. 성장도 있고 침체도 있다. 침체를 통해서 성공을 이끌어본 사람은 자신의 침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시 일어날 거니까. 아이폰5에 대해서 나는 이런 평가를 내렸다. 애플이 기존에 비해 외형적, 기술적 면에서 많은 변화를 주진 않았다. 인정한다. 그렇다면 제품만 놓고 봤을 때, 아쉬운 점이 있는가. 나는 뭔가 더 보태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설령 폰의 기능이 바뀌더라도 본질은 바뀔 필요가 없다. 난 도리어 애플이 중요한 것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은 내 삶의 도구다. 나의 정보를 관리해주는 기기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보의 안정화가 중요하고 지속되는 면이 우선돼야 한다. 우리나라 시장은 늘 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폰을 바꾸면 데이터 옮기는 것이 일이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데이터가 단절된다. 같은 브랜드에서 업그레이드될 때도 단절되고 통신사나 제조사가 바뀔 때도 단절된다. 나는 기계가 바뀌어도 자신의 본질, 유용성, 정보의 연결, 사용성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클라우드 서비스의 가치 측면이 나에게는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기술에 감성을 묻다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를 미학 경영자라고 부른다. 예술적 가치를 구현하는 경영자라는 의미다. 그럼 예술적 가치가 지향하는 바는 뭘까?

 

과학은 예측하지만, 예술은 상상한다. 그건 전혀 다른 체계다. 예측은 실증적이다. 상상은 추상적이고 판단이 어려우며 예측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감성의 영역이다. 이것은 마치 삶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결혼을 말할 때, “나는 결혼을 상상한다”고 하지 “결혼을 예측한다”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감성은 그런 것이다. 애플은 스티브잡스의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그의 예측은 상상력에 힘을 싣는 막연한 가능성에 지나지 않았다.

 

 

애플의 예술적 심미안
꿈이 있는 사람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경영자도 과학자도 아닌 폴 세잔(Paul Cézanne)이라는 화가다. 세잔은 알다시피 현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현대 철학자들보다 최소한 40~50년 앞서 현대성을 얘기했다. 현대 디자인은 대부분의 영역에 걸쳐 있고, 디자이너는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 전달과 보이지 않는 가치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세잔은 이미 예술이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술은 보이는 예술에서 생각하는 예술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그 말은 현실화 되었다. 생각은 정신이다. 디자인의 정신, 경영의 정신은 이 시대의 주요한 화두다. 애플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를 예술로 평가하는 이유다. 그는 컴퓨터라는 기기 안에 자신의 정체성, 삶에 대한 자기 철학, 이상을 담았다. 스티브 잡스에게 있어 ‘성자의 상’은 에디슨이다. 에디슨은 물론 성자가 아니지만, 종교적 방법이 아닌 뭔가를 만들어내는 행위에 성자라는 이상적 가치를 합하여 그만의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조성환 교수는 “애플에 비해 우리 디자인이 낙후했다고 말하는 것은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혼육으로 구성된다. 스티브 잡스가 택한 툴은 육체, 표현, 형태였다. 그가 성자가 되려고 한 건 영혼의 발로였다. 사실 성자라는 것과 MP3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의 정신이 두 개의 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인간의 영적 가치와 삶의 실체적 가치를 융합해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 정신, 곧 혼이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얘기하는 직관 측면에서 직관의 경영을 한 사람도 바로 스티브 잡스다”라고 피력했다.
과학이 보기에 직관은 위험하고 확신이 떨어지며 실패확률이 높아 보인다. 경영 성과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애플은 직관 경영의 비전과 처음으로 예술가가 경영에 성공한 케이스를 만들었다. 그것이 현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의 시작이었다.

 

 

총체적 경험 브랜드
앙리 베르그송은 직관을 고찰했다. 그는 “아무리 단순한 공식일지라도 직관을 표현하는 데 충분할 만큼 단순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정신은 자신이 지닌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자신에서부터 끌어낸다. 정신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며, 정신 안에 수태된 실재가 곧 창조라는 사실을 직관이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직관은 지속, 곧 성장과 연결된다. 앙리 베르그송은 직관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었다. 한편 직관이 어디서 생기느냐에 대한 답을 준 사람은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Blaise Pascal)이다. 파스칼은 직관이 섬세한 정신에서 생긴다고 했다. 그렇다면 섬세한 정신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파스칼은 경험의 질적 다양성, 질적 경험의 다양성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피력한다. 다시 말해, 경험이 다양하고 풍부하면 섬세함이 생기고, 섬세함이 생기면 직관이 보다 잘 발휘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영혼육의 경험을 해야 한다. 조성환 교수는 “최근 시장과 기업이 감성을 얘기하는데, 이 말은 잘못된 것이다. 굉장히 과학적이고 유물론적인 사고다. 감성은 5성이다. 5성은 눈, 코, 귀, 입, 목 등 육체적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분명히 섬세한 정신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우리 디자인이 집착하는 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디자인이 감각적으로 뛰어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 경험이 누락됐기 때문이다. 바로 영과 혼적인 경험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서 고차원적이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했을 때 많은 사람이 사용법 없이 ‘그냥’ 사용했다. 직관적으로 알아본 것이다. 브랜드의 직관도 마찬가지다. 브랜드는 하나의 인격체이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영혼육의 경험치가 쌓여 소비자의 직관과 연결된다. 디자인 메시지는 영혼육의 경험을 인간 삶의 메시지로 전환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것이 사회의 지배적 정신이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이 존경받는 이유는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자아를 결합해서 시대정신을 만들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개인 나아가 사회와 국민 전체가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브랜드가 가치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경쟁이 아니다. 경쟁은 관계하지 않는다. 관계하지 않는 것은 문화가 아니다. 문화는 관계인 탓이다. 브랜드는 하나의 관계이자 문화다. 따라서 소비문화에 얽매여 있는 브랜드는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물질과 인간의 구매라는 경제적 관계, 패턴에 가깝다.

 

 

애플을 인격체에 비유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설명하겠는가.
애플은 총합적 경험을 가진 인간이다. 다양한 경험과 섬세한 정신을 지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영혼육이 결합된 존재다. 인간이 다른 개체와 차별되는 실체는 정신성에 있다. 인문적인 삶은 인간의 삶을 한 단계 고양하는 것이며, 그것은 윤리와 도덕에 의해 가능해진다. 인문적 삶은 도덕성에 기반한다. 이는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에도 잘 나와 있다. 어떤 욕구의 하부 욕구가 충족됐을 때 결국 자아실현의 욕구 단계로 나아가는데, 이는 인간의 내적 동기 즉 정신적 동기에 기반한다.
여기서 정신은 도덕성이다. 우리가 이것을 교묘하게 물질성, 마치 당신이 이 제품을 구매하면 그것이 외형적 표식이 되어 아이덴티티와 브랜드를 형성할 거라는 식의 유물론적인 정체성을 주입하려 한다. 이것은 정체성, 자아, 아이덴티티의 심한 왜곡이다. 아이덴티티가 정신적인 것이라는 생각에 차단 받는다. 주체성의 기준은 윤리와 도덕이다. 윤리와 도덕은 정신성 곧 문화와 연결된다.
가령 브랜드 철학과 가치에 매료되어 기꺼이 그 길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치자. 그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줘야 한다. 나의 유익이 아닌 타인의 유익, 사회적 관계를 독려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세우는 관계,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관계를 의미한다.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인문적 실천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와 같은 근본적 의문이 존재한다. 그들은 인문은 정신이어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천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브랜드 가치는 실질적으로 우리 삶의 행복을 지향하느냐를 통해 봐야 한다.

 

 

애플 브랜드의 혁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꿈에 다가갔다. 그는 매킨토시를 만들 때 자신이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그 기기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꿔놓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이폰 출시 전, 사람들에게 어떤 기능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더 빠른 속도’라고 대답했다. 터치를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헨리 포드 사례도 있다. 자동차를 만들 때 소비자 조사를 했는데, 하나같이 더 빠른 말을 원한다고 말했다. 두 브랜드 모두 당시에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냈다.
직관에 의한 혁신은 연속 선상이 아닌 근본을 바꿔놓는다. 아예 새로운 시장, 새로운 질서,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 그것이 혁신이다. 경영에서의 혁신은 점진적이고 연속 선상에서의 영속적 혁신이다. 반면 디자인의 혁신, 직관의 혁신은 세상을 바꾼다. 그것이 창의성의 요체인 독창성이다. 스티브 잡스, 알레시 등 많은 디자인의 혁신은 새로운 시장, 삶을 만들어내는 급진적인 궁극의 혁신성이다. 과학을 학문의 기저로 삼고 있는 경영학과 기술은 유창성(Fluency), 융통성(Flexibility), 점진성 측면이 강하다. 결국 디자이너의 역할은 궁극의 창의성, 사유와 질서를 바꿔나가는 근본을 바꾸는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

 

 

애플의 창의성은 이대로 좋은가. 사람들은 그들의 혁신이 정체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애플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은 자발적 동기를 가진다. 이때 자발성은 사명성이다. 사명성은 자아에서 출발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자아가 그 사명을 만들어내는 시작인 셈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자신이다. 디자인은 창의성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 알레시(Aeslsi)의 가치는 감성 디자인을 끄집어냈다는 데 있다. 알레시가 메타 프로젝트(1990년대 초, 사물과 형상에 대한 효과적인 탐험을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감성 디자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알레시라는 브랜드에 대한 당시 심리학자의 견해는 ‘우리에게 있어 사물은 어떤 인격을 형성하는 교류의 대상’이었다. 이것을 알베르토 알레시(Alberto Alessi)는 알고 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사물이 유용성, 도구성만 갖고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한 예로 우리가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곰 인형은 인격을 형성해 나가는 데 필요한 교류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린이들이 인형을 사람처럼 대하는 이유다. 알베르토 알레시는 “알레시의 주방용품은 도구가 아니다. 주방 안에서 교감하는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이런 감성을 컨셉으로 잡은 것이 메타 프로젝트다. 알베르토 알레시는 메타 프로젝트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느끼기에 가치가 있으면 한다고 고백한다. 돈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필요하면 한다. 이는 하나의 사명이다. 사명성은 정신적인 것이다. 정신은 이 세상과 수립된 자아를 섞어내는 작용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만들 때 아이튠스와 같은 컨셉이 생긴 건 아니다. 이미 있던 컨셉이다. 그의 철학, 사명의식, 자아가 일관성을 가지고 정신으로 지속되면서 생성된 것이다. 컴퓨터, 마우스, 개인용 컴퓨터, GUI, 아이튠스, 앱스토어 등 모든 애플의 역사가 스티브 잡스의 사명성, 인간을 유익하게 하고 편리하게 해준다는 비전 안에서 이뤄졌다.
애플은 지금까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만들었다. 그것이 애플의 진정한 가치이다. 애플이 우리가 예측한 것을 보여주기 시작할 때, 그들의 창의성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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