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애정도, 기업의 미래로 가는 길 볼륨배지시즌배지

Written by 우석훈  고유주소 시즌2 / Vol.22(하) Vol.22(하) 인문학적 브랜드 (2012년 01월 발행)

경제나 경영학의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이 기업에서는 많이 발생합니다. 현실은 그렇게 이론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브랜드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출발점으로 인류학을 선택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유연하게 사람과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류학은 브랜드에게 변하지 않는 사람의 가치를 알려 줄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가치죠.

The interview with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우석훈

 

분야를 막론하고 학문의 최고 학위를 우리는 박사라고 부른다. 영어로 박사는 Doctor of Philosophy인데 한국어로 직역하면 바로 ‘철학박사’다. 거의 모든 학문이 철학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유래된 말이며, 종국에 가선 모든 학문이 철학으로 귀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은 바로 인문학의 중심이 되는 인간 사유의 결정체가 아닌가. 따라서 경제학을 전공해도 생물학을 전공해도 디자인을 전공해도 결국 모든 학문의 끝에서 만나야 하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88만원 세대》의 저자로도 유명한 우석훈 교수는 진정한 박사였다.

 

그는 경제학 박사이지만 경제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 문화,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라는 틀을 정확히 읽어 내어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의 작동 원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 준다. 우 교수는 경제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관계, 공동체, 정치 문제 등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고서는 경제를 제대로 사유할 수 없기에 철학과 같은 인문학적 이야기를 경제학으로 가져오거나 철학이나 사회학적인 논리에 경제학을 가져오는 시도를 한다고 말한다. 브랜드가 인문학을 탐구하려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브랜드 이면에 숨겨진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브랜드를 단순히 기업의 마케팅 수단이나 이윤 증대를 위한 도구로서 본다면 현재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브랜드라도 그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우 교수 역시 브랜드가 인문학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인문학은 브랜드를 필요로 하지 않을지 모르나 브랜드는 인문학이 꼭 필요할 겁니다. 인간에 대한 성찰 없이 브랜드는 사람들 곁에 오랫동안 함께할 수 없을 테니까요.”

 

샤넬로부터 배우는 혁명가 전략
Q. 최근 출간하신 《문화로 먹고살기》란 책을 보면, 가시적인 성과를 중요시 여겨 무분별한 개발지상주의를 신봉하게 된 일명 ‘콘크리트 미학’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인문학과 문화로부터 만들어 질 수 있는 비가시적인 내면의 성장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더군요.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라 함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경제 현상을 수학이나 통계 등의 방법을 사용해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늘 사회와 인간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먼저 고심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을 오히려 사회학자나 인류학자로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교수님은 스스로 어떻게 불리길 원하시나요?

 

A. 저는 경제학이죠. 무엇을 보든 돈으로 먼저 사고하니까요. 하지만 이 말은 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분석한다는 것이지 ‘돈만 위해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허덕이는 아이들을 볼 때 다른 사람들은 음식을 제공하거나 기금을 모으거나 혹은 직접 가서 도움을 주거나 하는 방식들을 고민한다면 저는 궁극적으로 이들이 굶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급자족의 경제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죠. 사실 현대 경제학은 가치나 철학 같은 단어들을 많이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도 제 화두는 언제나 돈과 가치, 사회가 가져야 하는 덕목들을 어떻게 경제와 연결할 것인가였습니다. 그 답을 얻기 위해 경제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 경영, 인류학 등을 공부하며 학제 간의 융합을 연구해 온 것이죠. 요즘 보면 경영에서 오히려 가치라는 덕목을 찾아가는 중인 듯 보입니다. 과거, 기업은 가치와 철학을 잊어버린 경제학 이데올로기의 잔재로 인해 이윤 극대화만을 위해 움직였다면, 이제 그들의 화두는 얼마나 오랫동안 기업이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가로 바뀌고 있죠. 그래서 브랜드 역시 인문학을 통해 사람의 가치를 찾으려는 것이 아닌가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명품 브랜드 샤넬을 만든 ‘가브리엘 샤넬’을 눈여겨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 마오쩌둥도 체 게바라도 아닌 가브리엘 샤넬을 최고의 혁명가로 꼽거든요.

 

Q. 혁명가와 명품 브랜드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군요. 더군다나 경제학자인 교수님이 최고의 혁명가로서 가브리엘 샤넬을 꼽으신 건 정말 의외입니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입니까?
 

 

A. 가브리엘 샤넬을 단순히 명품 브랜드 샤넬를 만든 사람으로 본다면 우리는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는 거예요. 그녀는 여성들에게 패션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준 혁명가이자, 여성을 해방시킨 전사입니다. 그녀가 활동하던 당시의 여성들은 독립된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했어요. 여성이 재산상속권을 갖게 된 것도 1세기가 채 되지 않았고, 투표권을 갖게 된 것도 고작 50년 밖에 되지 않았죠. 당시 엄청나게 큰 폭의 치마를 입어야 했던 여성들은 혼자서 차를 오를 수도 없었습니다. 누군가 태워 줘야만 차에 탈 수 있었죠. 이런 현실에서 샤넬은 패션을 통해 여성이 스스로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과정에 기여했습니다. 이뿐이 아니죠. 샤넬이 바지를 새롭게 디자인하면서 그동안 여성의 몸을 옥죄던 코르셋과 속치마인 페티코트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켰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너무 흔한 손잡이가 달린 핸드백의 전형적인 형태 역시 샤넬로부터 시작되었죠. 이전까지는 손잡이가 없어서 핸드백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거나 손으로 쥐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굉장히 불편했지요. 그런 가방에 손잡이 하나가 달림으로써 여성들은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외에 샤넬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장식을 배제한 활동성 높은 형태의 아름다운 옷을 입게 함으로써 여성들의 삶 자체를 변화시켰죠. 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은 너무 당연한 일들이지만 불과 몇 십 년도 되지 않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으니 여성을 독립적인 주체로 만들기 위한 샤넬의 노력은 패션이라고 규정짓기엔 너무나 거대한 것이죠. 어쩌면 오늘날 우리 모두가 샤넬의 혜택을 받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브리엘 샤넬이 바라던 문화, 꿈꿨던 미래에 대한 그녀의 혁명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에게 샤넬이라는 브랜드는 제조 원가와 상관없이 터무니없는 고가로 팔리는 럭셔리 브랜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샤넬 시대 때 샤넬의 옷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는데 말이죠. 왜 이렇게 샤넬이 고가가 되어 버렸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답을 찾다 보니, 지금의 샤넬은 더 이상 샤넬의 것이 아니더군요. 쉽게 말해, 지금의 샤넬사는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이 갖고 있던 혁명적인 실험 정신을 계승 받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의 샤넬은 샤넬이 아니야, 라고 말하면 샤넬사에선 싫어하겠지만 샤넬의 혁명적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죠. 정신이 사라진 브랜드, 철학을 잃어버린 브랜드가 과연 오래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Q. 가브리엘 샤넬이 추구한 것은 여성해방을 통한 시대적 혁명 정신, 다시 말해 인문적 가치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이제야 기업은 그들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제품을 통한 기능과 정서적 만족을 넘어 정신, 철학 등의 가치들을 얘기하고 있는데, 샤넬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이런 인문적 가치들을 자신의 브랜드에 담았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습니다. 하지만 비극적인 것은 지금의 샤넬이 그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뛰어난 정신적 가치는 어떻게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을까요?
 

 

A. 현재 왜 많은 기업들이 이런 인문적 가치들에 목말라 하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영원한 기업도, 영원한 브랜드도 없거든요. 이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는 사실이죠. “삼성이 100년 후 사람들 곁에 여전히 남아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현재 삼성이 세계적인 회사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하기 곤란할 겁니다. 그럼 나이키는 어떤가요? 혹은 코카콜라는 영원할까요? 미래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두 브랜드의 미래 역시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요. 어떤 것도 ‘영원히’ 라는 것을 전제로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좀 더 영리하게 브랜드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살아남다 보면 그 합은 ‘영원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브랜드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 곁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수 있느냐 혹은 남아 있지 못하느냐일 겁니다. 이 지점에서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배제한 채, 정의롭거나 선한 이미지를 갖지 못하는 브랜드는 오래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겁니다. 샤넬의 미래에 의문을 가진 것도 그들이 샤넬의 혁명적 정신을 잃어버리고 단순히 명품으로 존재하려 하기 때문이듯 말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 안에선 약자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남을 위한다는 것은 이런 사회 속에서 응당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긴 최저 기준이죠. 그리고 그 최저 기준은 시대마다 달라지는데 과거 기업은 이윤을 남기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 간주되었어요. 시대가 변하면서 기업의 선은 소비자와 사회의 가치를 만족시켜 정의롭고 선한 행위를 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렇게 변화된 최저 기준인 정의롭고 선한 이미지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온 기업만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겁니다.

 

Q. 이번에 만난 인문학자 중에서도 앞으로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 이유가 공존의 세계를 향해 모두가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방법적인 면에서 좀 막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의롭고 선한 기업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정의롭고 선한 이미지를 가지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은 하나의 답으로 결론 지을 수 없겠죠. 다만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과거에 비추어 봤을 때 기업과 브랜드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입니다. 바로 1등으로 가는 과거 방식의 전략입니다. 1등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1등이 되었는가가 핵심이죠.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1등으로 가는 전략을 선택함에 있어 기업의 덩치를 키우는 것만이 그 목표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기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하는 규모의 경제 논리에 의해 기업이 운영되었잖아요. 10여 년이 흐른 뒤 규모를 잘못 키운 기업들은 망하거나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버렸죠. 기업을 살아남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규모만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겁니다. 규모를 위해 덩치를 키운 회사들은 더 나은 성장을 위해쉬어 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 없어요. 경제학에서는 이를 *자유도(degree of freedom)라고 표현하는데, 자유도가 확 줄어든 상태가 돼 버려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그들의 성장과 자본의 규모는 비례하는 것이라 믿어왔지만 저는 기업마다 적정 규모나 적정 수입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기업 규모나 수익에 대한 결정은 기업 전략의 하나이며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 사람의 본능은 1등에 있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현재 1등 하는 기업이라도 ‘저 브
랜드는 나쁘다’고 한 공공의 적으로 한번 몰리면 망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2위 그룹들에게 1등이란 맨 위로 가야 한다는 집착이 되어 버린 목표지만, 브랜드만 봐도 절대 강자는 생각보다 굉장히 짧게 존재합니다. 사실상 맨 위로 가면 그 다음에는 내려올 일밖에 남은 것이 없으니까요.
 

 

*자유도degree of freedom
통계, 물리학, 역학, 경제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나, 기본적으로 주어진 조건하에서 변수의 자유로운 변화 정도를 의미한다. 오마다 겐이치는 1993년 《기업경영과 전략적 사고》라는 책에서 ‘전략적 자유도Strategic Degree of Freedom’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특정한 핵심요인을 둘러싼 여러 분야에서 전략적 조치가 자유로운 정도를 뜻한다. 그는 경영자가 전략적 자유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계속 기업의 영속성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브랜드 상징적 가치, 소비자와의 관계법을 만들다
 
Q. 교수님이 말씀하신 정의롭고 선한 이미지는 단순히 기업 혼자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닌 듯싶습니다. 마티 뉴마이어는 《브랜드 갭》에서 “A Brand is not what you say it is. It’s what they say it is”라며 브랜드는 기업이 아닌 소비자들에 의해 인식되는 것으로서 정의 내린바 있죠.이제 브랜드는 소비자와 공생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숙명에 놓인 것 같습니다. 브랜드와 소비자의 좋은 ‘관계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왠지 이 브랜드는 착할 것 같다. 혹은 아닐 것 같다’는 이런 이미지들은 브랜드가 그 시대의 사람들과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발현된 것입니다. 이미지는 관리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브랜드의 이미지가 어떤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인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관계인가가 중요한 이유는 다 아시겠지만 관계를 통해 한번 형성된 브랜드의 이미지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뿐더러 그 브랜드가 주는 의미 이상의 것을 사람들이 브랜드와의 관계를 통해 느끼잖아요. 괜히 더 실용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더 비싼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저렴할 것 같은 상상이 들기도 하구요. 그리고 브랜드가 한 나라의 국민 중 10분의 1 이상이 구매하는 제품이 된다면 그 브랜드가 사람들과 맺은 관계는 제품 판매와 구매라는 경영의 공식을 넘어 사회 전반을 움직이는 동인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는 그 시대의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는 거죠. 그럼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냐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겠죠. 이 질문을 바꿔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어떤 ‘애정’을 받을 것인가라고 할 수 있어요. 쉽게 말해 ‘이거 좋다’라는 일반적인 애정 같은 것 말입니다. 이를 테면 사업 초기에 바디샵은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던 천연 원료들로 화장품을 만들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비단 제품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사업 초기엔 제품의 질도 별로 좋지 않았죠. 하지만 바디샵이 동물 실험 반대, 커뮤니티 페어 트레이드 지원, 자아 존중 고취, 인권 보호, 지구환경 보호 등과 같은 사회와 인간의 가치를 함께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면서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화장품이 죄악시 되던 열악한 사회 상황에서도 윤리와 친환경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 바디샵의 노력을 사람들은 질이 좀 떨어져도 바디샵의 제품을 쓰자는 열렬한 지지와 사랑으로 답했죠. 이런 바디샵이 2006년 세계 최대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에게 팔렸습니다. 나중에 로레알의 회사 자본을 살펴보니 최대 지분을 가진 회사가 네슬레더군요. 네슬레가 왜 바디샵을 인수했을까요? 사실 당시 로레알은 윤리적 가치보다는 공격적 경영으로 알려져 있었고, 식품회사인 네슬레 역시 당시 과대 광고로 지탄 받고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그들이 바디샵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정신과 가치에 동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죠. 그들은 바디샵이 가지고 있던 윤리와 친환경적인 가치들이 주는 이미지와 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자 바디샵의 정신에 공감하며 신뢰 속에 관계를 맺었던 소비자들은 심하게 반발했어요. 결국 로레알과 네슬레는 바디샵과 경영 체제를 분리하고 브랜드가 가진 원래의 가치를 살리는 전략으로 간신히 사람들의 비난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롭고 선한 이미지를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닌 그냥 가지려고만 한 로레알과 네슬레에게 사람들은 애정을 느낄 수 없었던 것입니다.
 

 

Q. 요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브랜드의 일거수일투족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고, 언제 어디서든 브랜드에 대한 이런 정보와 의견을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관계를 맺는 브랜드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이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게 되고 또 이렇게 표출된 브랜드에 대한 감정들은 다른 소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브랜드를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A. 관계라는 것이 좀 복잡합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그 관계라는 것을 속얘기와 겉얘기가 있다고 표현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 다가 아니죠. 속얘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 같은 경우 물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죠.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디자인이 멋지고 기능적이다 식의 얘기 말고 브랜드의 속으로 들어가 보면 말레이시아 아동들의 노동을 착취하여 그들의 제품을 생산하는 등의 얘기들이 있어요. 이제 사람들은 브랜드를 볼 때 브랜드의 겉얘기와 속얘기를 구분하는 것 같아요. 제가 방송에 출현할 때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나가면 별 말이 없지만 나이키를 신고 나가면 사람들이 불평들을 쏟아내요. 그래서 나이키를 신고 방송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브랜드의 겉얘기와 속얘기가 사람들에게 중요해진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어떤 제품을 소비하기 위해서만 그것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더 이상 ‘이게 좋은 물건이다’는 효율성만 강조해서는 안되죠. 자고 일어나면 더 좋은 물건이 만들어져 있고, 더는 우리가 쓰는 물건 중에 꼭 필요한 물건도 없어요.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꼭 있어야 되는 물건조차 없는 세상이었지만 이제 없는 물건도 없거니와 이 물건이 없으면 딴 물건을 쓰면 되는 세상이 되었죠. 그러다 보니 제품이 가진 상징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거예요. 상징적 가치가 무엇인가요? 바로 브랜드입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브랜드의 비본질적 가치를 지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하기도 하는 겁니다.

 

자본을 연구하면 사용가치라는 것이 있는데 실제 그 물건이나 물질을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예요. 브랜드는 그 사용가치에 상징적 가치가 들어간 형태인 거죠. 그 상징적 가치는 위신, 명예, 존경, 혹은 명성과 같은 것이라 그 가치는 무한대까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상징적 자본이 뜻하는 곳은 꿈의 세계이기 때문에 영화 ‘레지던트이블’에 등장하는 엄브렐라 회사처럼 국가를 넘어선 존재까지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죠. 이론적으로 상징적 가치의 한계점이 없으니깐요.

 

Q. 필립 코틀러는 소비자를 감성과 영혼을 지닌 전 인격적으로 바라보는 시장에서 브랜드가 소비자와의 약속을 이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성과 중 하나로 ‘Brand Integrity’를 말합니다. 브랜드의 정직이나 완전성 등 그 뜻이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중요한 것은 브랜드 홀로 강력히 주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죠. 브랜드의 겉과 속 얘기들이 중요해진 것은 시장의 중심이 인간을 중심으로 바뀌고 있으며 브랜드 역시 그에 따라 상당히 다른 가치들로서 전환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브랜드의 상징적 가치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재미있는 것이 상징적 가치가 들어가면서 구매를 하는 행위의 의미가 바뀌게 됩니다. 사람들은 마치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듯 제품 구매를 통해 브랜드를 지지하거나 혹은 거부한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거죠. 마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할 때 어떤 국회의원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지 못해 국민들의 불만을 샀다면 다음 선거에서 국민들은 그들의 투표권을 행사해 그 국회의원을 더 이상 뽑아 주지 않고 낙선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브랜드에 대해 지지할 때도 구매행위가 매우 열렬해졌지만 거부할 때는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과거 불매 운동과 달리 훨씬 강력한 형태로 문제가 발현되기 때문이죠. 과거에는 일시적인 불매운동으로 그쳤지만 브랜드에 대한 거부의 표시로 구매를 기피하게 되면 그것이 내면화가 되어 습관적으로 구매를 피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번 이렇게 내면화된 구매 기피 습관은 브랜드가 소비자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계속해서 걸림돌이 되며, 설사 브랜드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그 습관은 여전히 남아 구매율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브랜드의 미래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Q. 일상의 선거와 같이 구매행위가 투표행위가 됨으로써 사람들이 브랜드를 향한 지지와 거부의 표시를 하게 된 것이군요. 하지만 여전히 국내 많은 기업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둔감한 것 같습니다. 브랜드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잘 구축해 놓은 소비자와의 관계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거든요. 무엇이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요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브랜드는 오랫동안 사람과 미래를 함께하기 위해 응당 정의롭고 선한 이미지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한국 기업들은 이미 긍정적으로 축적된 이미지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훼손시키는 어리석은 행동들을 많이 합니다. 정말 답답하죠. 일례로 이마트를 들 수 있어요. 이마트는 한때 국내 토종 마트 브랜드라는 점을 내세워 미국의 대형 마트 브랜드인 월마트, 까르프와 경쟁했어요. 그 과정에서 이마트는 한국의 토종 브랜드인 자신들이 살아남지 못하면 결국 남의 나라에 의존해야 한다며 한국 국민들의 권리수호자로서 사람들에게 호소했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월마트나 까르프 대신 이마트의 편을 들어 주었죠. 그런데 정작 이마트의 오늘날의 모습은 어떤가요? 자신들에게 생긴 선하고 정의로운 브랜드 이미지의 중요성은 잊은 채 경쟁에서 이겨 독점을 하려고 하잖아요. 이마트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충성도가 높은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일로 배신감을 느끼면 바로 구매율이 떨어지죠.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는 듯해도 선하고 정의로운 정신을 지켜가는 것은 크게 멀리 보면 남는 장사를 하는 건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눈앞에 작은 이윤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립니다. 브랜드에서는 이런 것들이 약점으로 남는 것이죠.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썼을 때 주변 사람 한두 명이라도 그걸 왜 쓰냐고 타박한다면 그 브랜드의 제품은 사기가 어렵거든요. 결국 브랜드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과 어떤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이며, 그 관계 속에서 어떻게 정의롭고 선한 이미지를 가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의제가 된 거죠.

 

Q. 말씀하신 브랜드의 의제는 사람에 대한 가치를 성찰하고 사회를 통찰하는 인문학적 소양 없이 판매자와 구매자라는 경영학의 공식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답인 듯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브랜드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일종의 생존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인 브랜드의 미래도 불투명할 테니까요.

 

A. 그게 아마 인문학은 브랜드를 필요로 하지 않을지 모르나, 브랜드는 인문학이 꼭 필요한 이유겠지요. 사실 브랜드가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인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이 다 필요합니다. 백과사전과 같은 지식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공부해야 할 많은 지식들 중에 무턱대고 아무거나 먼저 공부할 순 없죠. 지금 브랜드에 있어서 더 많이 결핍되어 있는 지식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브랜드는 돈 중심의 시장 논리가 아닌 인간 중심의 시장 논리를 이해하기 위한 통찰력을 인문학으로부터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Q. 왜 경영이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지 이제 어렴풋이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인문학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며 또 어디서부터 인문학을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오리무중입니다. 유명한 철학자나 역사가들의 책들 혹은 고전 문학 책들을 읽는 것은 시원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지요. 경제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인간의 모습과 사회의 관계를 다방면으로 연구하는 경제학자로서 인문학을 배우고자 하는 브랜더들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A. 브랜더들이 인류학을 먼저 공부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부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분야도 인류학이거든요. 경제가 사회로부터 정확히 분리될 수 있을까요? 혹은 인간의 행위와 사회 시스템은 분리될 수 있을까요? 법학과 경제학은 상관없어 보이지만 쉽게 분리될 수 없죠. 어떤 학문도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요. 인류학을 통해 인문적 소양을 쌓는 것은 여러 모로 장점이 많습니다. 우선 영어로 인류학은 Anthropology인데, Anthropo가 인간이란 뜻이에요. 인류학 자체가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죠. 물론 말씀하신 대로 인문적 소양을 위해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지만, 철학을 공부하려면 그 전에 충분한 논리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철학에 입문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철학 공부를 한 적이 없다면 일단 철학 책조차도 읽기 힘들거든요. 게다가 논리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은 채 철학 책을 잘못 읽으면 그 뜻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부작용이 많아요. 오해도 심하고요. 그에 비해 인류학과 같은 인문과학은 내용도 풍부하고 관찰을 통한 접근이다 보니 비전문가들도 어떤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워 진입 장벽이 굉장히 적은 학문이에요. 외국 같은 경우 기업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행태를 알기 위해 많이 공부하는 분야죠. 인문과학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 핵심이 바로 인류학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경제나 경영학의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이 기업에서는 많이 발생합니다. 현실은 그렇게 이론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브랜드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출발점으로 인류학을 선택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유연하게 사람과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류학은 브랜드에게 변하지 않는 사람의 가치를 알려 줄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가치죠. 그리고 인류학을 시작으로 다양하게 공부하십시오. 그래야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잘 인식하게 됩니다.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기업이, 그리고 브랜드가 오래갈 수 있는 힘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문적 공부를 통해 항상 깨어 있다면 브랜드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BRANDING ∩ LIBERAL ARTS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패하는 제로섬 관점의, 너무나 전쟁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WIN-WIN하는 게임이 되어야 하는 것이 깨어있는 브랜드 비즈니스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의 저자로 알려진 라젠드라 시소디어 교수는 이제는 비즈니스도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경쟁자를 죽여야 하고 더 비열한 방법으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전쟁이 아니라 더 나은 철학을 제시하는 브랜드가 더 많이 사랑 받는 건전한 생태계로, 공존을 위한 ‘철학 경쟁’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유니타스브랜드 Vol.17 p122 참조). 이는 기업도 정글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칠 것이 아니라 공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는 것이 진짜 인문 경영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이 교수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면 인문학이 그러하듯 오로지 경쟁자는 나 자신뿐이며 문제와 해답 모두를 나의 내부에 집중해서 찾을 수 있다. 인문학과 브랜드의 철학 경쟁이 공통적으로 가진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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