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공정하고 윤리적인 평평한 세계
자연주의 공정무역 패션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5 / Vol.28 에코시스템 브랜드 (2012년 12월 발행)

지구의 끝에서 각종 편견과 폭력, 불평등한 권리와 열악한 환경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로 지구가 조금씩 촘촘해지고 평평해지면서 균형점을 찾기 위한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 기업가정신) 운동이나 공정무역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뿐 아니라 공존을 위한 지속가능성이 주목 받고 있다. 공정무역은 국가 간 동등한 거래를 통해 생산 약자를 보호하고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생산자와 소비자의 새로운 관계 모델로, 한쪽으로만 흐르던 정보와 힘의 불균형 해소에 초점을 맞춘다. 《공정무역-시장이 이끄는 윤리적 소비》의 저자 알렉스 니컬스는 “공정무역의 성장은 문화, 정치, 정보, 학문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고, 윤리적 소비주의를 파생시켰다”고 밝혔다. 또한, 경제전문가 클립턴(Clifton)은 “이러한 변화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태도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지난 30여 년간 성공적인 브랜드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실용성과 낮은 가격, 가치 중심에서‘진정한 가치(윤리적 생산)’로 변했다”고 피력했다. 공정무역에 대한 수요 증가와 소비자 공감대 형성은 브랜드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 기업가정신) 유니타스브랜드 Vol.6에서는 앙트러프러너십을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변화에 대응하며, 변화를 기회로 이용함으로써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들이 갖는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기질’로 정의했다. 프랑스어에서 파생한 이 단어는, 기업의 본질이라는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기업가가 가져야 할 자세와 정신을 의미한다. 조세프 슘페터가 앙트러프러너십을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인데, 그는 기업가의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장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혁신적인 면모를 주장했다.

The Interview with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 대표 이미영

 

 

모순과 기회, 자선이 아닌 동행의 길

공정무역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순에 의해 탄생했다. 깨어진 균형에 대한 탄식일까. 사회적, 구조적, 환경적 불균형으로 점점 궁핍해져 가는 이들에게 스스로 희망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 공정무역은 자선과 원조가 아닌 무역 관계를 통한 경제적인 자립과 역량 개발을 택했다. 공정무역은 세 가지의 연결된 목표를 갖는다.

첫째, 무역으로 극심한 빈곤 개선, 둘째, 소농과 농장 노동자들이 사회적 자본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무역을 활용할 수 있게 역량을 강화하는 것, 셋째, 세계 무역개선과 정의를 위한 폭넓은 캠페인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로써 생산자들은 지속적인 생계수단을 가지게 된다. 지난 2006년까지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었던 코피 아난은 “원조보다는 무역이 장기적 빈곤을 완화하는데 적합하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지속가능한 무역과 주도적인 시장은 효과적인 경제 메커니즘이다”고 말했다.

 

*모순
초나라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창은 어떤 방패로도 막을 수 없고,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도 없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그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른다. 사실 전쟁하는 병사는 창과 방패 중 하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사용한다. 집기양단(執其兩端) 하는 것이다. 집가양단은 중용이라는 의미와 함께 양손잡이를 뜻한다. 공자는 이를 두고 ‘한 손이 아닌 양손잡이’가 될 것을 권했다. 이것은 경영의 지혜와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창과 방패는 보완관계에 있고, 세상의 모순을 통해 좋은 브랜드를 알아보는 관점을 찾는 것과 같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 이미영 대표는 여러 사회 문제 중 여성인권에 집중한다. “여성빈곤문제는 90년대까지도 심각한 이슈였다. 생태계 파괴는 여성들을 더 열악하고 빈곤한 환경 속으로 떠밀었다. 이를 해결하면서 친환경, 지속가능한 지역사회의 대안적 발전을 꿈꾸게 되었다. 당시 공정무역을 접하면서 커뮤니티를 기본 단위로 새롭게 비즈니스를 열어가는 장을 알게 되었다.” 중앙대학교 여성학대학 프란시스카 도 한 교수는 “문해율(문자 해독 능력)이 상승하고 있지만, 여성은 여전히 세계 문맹인구의 2/3를 차지하고, 세계 노동의 2/3를 담당하며, 세계식량의 50%를 생산하지만 그들의 소득은 전체 소득의 10%, 재산은 겨우 1%만을 소유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바로 이 점이 이미영 대표가 ‘패션’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한 이유다. 여성들이 주가 되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적은 자본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남길 수 있는 사업 아이템으로 공정무역 패션은 제격이다.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영화 ‘해리포터’에서 헤르미온느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엠마 왓슨은 현재 영국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피플 트리(People Tree)’의 홍보모델로 활동 중이다. 그녀는 방글라데시 생산 현장을 찾기도 했는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패스트 패션과 공정무역 패션의 차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옷을 만드는 생산자가 인간답게 살고 자신의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외에도 아프리카 가나 여성들이 제작한 친환경 소재 가방 브랜드 미국의 델라(Della), 오가닉 면과 대나무 섬유, 버려진 데님 등으로 옷을 만들고 공정한 임금과 노동시간을 보장하는 네델란드의 쿠이치(Kuyichi), 실제 철저한 생산자 조사와 연구를 통해 해외 19개국에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 국내 브랜드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g:ru, 이하 그루) 등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에코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으며, 환경, 소비자 및 생산자 보호, 윤리적 소비 등 시대적 변화와 필요에 부응한다.

 

 

요크대학교 데이비드 맥날리 교수는 “브랜드는 관계를 정의하고 관리하기 위한 틀이며, 그 관계에서 파생한 가치들의 총합이 곧 브랜드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관계라는 것은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유기적으로 얽혀있기 마련이다. 그루는 특히 여성의 자립과 권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들과의 관계가 브랜드 형성에 미친 영향이 궁금하다.
2000년 여성환경연대에서 일했다. 당시 중국 북경에서 UN여성대회가 열렸는데, 그때부터 여성 빈곤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NGO 활동가, 연구자 등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여성 문제를 고민하면서 시각이 많이 넓어졌다. 2004년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공정무역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제3세계 활동가들과 교류하면서 환경, 빈곤, 여성의 문제가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가난으로 인해 환경이 나빠지고, 환경이 열악해지면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직접적인 피해자는 대체로 여성이어서 여성 빈곤은 빈곤 문제에 있어 중요한 이슈이기도 했다.

이에 공정무역으로 그들과 관계 맺고 유기적인 연대를 형성해 가난한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나아가 소비자에게는 윤리적인 소비의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유럽에서 ‘Clean Clothing Campaign’이라고 깨끗한 옷입기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는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제3세계에 공장을 짓고, 그 지역의 젊은 여성들, 특히 10대 소녀들을 고용해 적은 임금을 주고 장시간 노동시키는 데 반대하는 움직임이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예전에는 심각했다. 북미, 유럽에서 윤리적 소비 운동이 패션 분야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상징성이 있다. 대형 스포츠 의류 매장에서 많은 인권문제가 야기되었는데, 그 대안으로 공정무역 패션이 강력하게 거론되었다. 그루는 대안적 역할뿐 아니라 책임의식을 가지고 제3세계 여성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있다.

 

 

원가가 비쌈에도 불구하고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정무역 브랜드를 보면 패션뿐만 아니라 커피, 초콜릿 등 ‘생산자보호와 불평등한 거래를 지양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그 기저에 에코브랜드의 특성이 있음을 엿보게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환경 오염으로 인한 건강문제, 자원 고갈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면서 패션분야에도 ‘에코’ 바람이 불었다. 로하스 시장이 커지고 공정무역 패션 자체가 친환경 원칙을 고수하기 시작했다. 20년 전에 시작한 유럽의 공정무역 브랜드들은 티셔츠도 유기농 면으로 제작, 자연주의 컨셉을 유지한다. 그루는 공정무역 인증을 받고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면화로 옷을 만들고 있다.

소농들이 직접 베틀로 직조해서 옷을 만들기 때문에 손맛이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베틀 직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여성 생산자 중 농사와 육아, 베틀 일까지 병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원가가 비쌈에도 불구하고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루 브랜드는 베틀 직조 이외에 손 염색, 자수, 인도 전통기법인 블록 프린트, 손뜨개, 자연 자원(코코넛, 나무, 조개껍데기, 버펄로 뿔 등)으로 만든 단추를 다는 방법으로 옷을 제작한다. 단추를 만드는 생산자가 따로 있으며, 그 나라에서 직접 재료를 개발하고 기획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다 현지에서 공급하는 친환경 원료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공정무역 패션을 에코브랜드라고 할 때, 어떤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삶 아닐까. 에코브랜드의 목적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이라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삶과 순환, 관계를 지향한다. 그러나 이것이 문화적 차원의 라이프스타일로 정착되어 있지 않으면 기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 환경 문제는 곧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에코브랜드의 문제도 절박한 심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결국 경제문제와 연결되지 않으면 기아, 빈곤, 환경 파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 특히, 농약 사용 문제나 식수, 토양 오염 등의 가장 큰 피해자는 물건을 만드는 생산자,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이다. 우리의 에코 마인드가 이타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알다시피 전 세계에 사용되는 살충제의 25%에 해당하는 양이 면화재배에 뿌려진다. 면화 재배가 많은 인도나 아프리카 말리의 여성들은 농약에 의한 질병 피해 사례가 상당하다. 결국 브랜드에 진정성을 담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하고, 사회 공헌이나 환경보호 등 이타적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 가치 없이는 앞으로 성공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윤리적 소비, 친환경 소비도 결국 이타적 소비를 말한다.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나누면서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브랜드 구루 장 노엘 캐퍼러 교수는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신감이 없다면 그것은 고객을 모욕하는 행동이다. 브랜드의 이름과 제품, 서비스는 ‘고객과의 약속’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에코브랜드가 가져야 할 가치이자, 사회와 고객에게 전하는 약속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가 지속가능한 공정성이다. 소비자와 생산자 간 커뮤니케이션과 투명성, 상호 존중에 기반한 동등한 관계하에 생산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공정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생태계 보호와 문화 다양성 보전의 의무이다. 생산 과정부터 소비자가 사용하고 버리는 순간까지 전 과정을 고려하여 생태계 파괴를 줄이고 생산지의 자연환경에 맞는 농법과 기술을 개발, 장려하여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다. 생산자는 기계에 종속된 노동자도, 물건을 기계처럼 만들어내는 피고용인도 아니다. 예술품을 만드는 장인이다. 소비자는 착한 물건을 소비함으로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한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에코브랜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음을, 생명 존중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적정기술

그루는 적정기술을 표방한다. 적정기술은 빈곤층 사용자의 능력을 배양하고, 새로운 기회 창출을 돕는 착한 기술이다. 기술 교육과 생산 활동 참여로 자립적으로 살아갈 힘을 기르는 데 목적을 둔다.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는 1965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에서 적정기술을 ‘중간기술’이라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중간기술은 토속기술과 첨단기술의 중간 의미로, 지역 사람과 지역에서만 나는 원재료를 기반으로 한다. 1970년대에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적정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이후 경제·사회적 측면으로 확대되었다. 그루는 이러한 중간기술을 전파하고 공정무역으로 결과물을 유통, 제3세계 빈곤층,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독려한다.

 

공정무역 패션의 대중화를 꿈꾸는가. 사실 개념도 익숙지 않다. 대중화는 소량 생산을 기본으로 하는 공정무역의 취지와도 맞지 않을뿐더러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타의 패션 브랜드와 차별화되는데, 그루 브랜드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공정무역 패션은 슬로우 패션이다. 제작기간도 오래 걸리고 핸드메이드로 만들어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또한 생산지의 전통문양이나 지역적 특성이 묻어나 독특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곳에서 사 입을 수 없는 옷이다 보니 마니아도 존재한다. 최근 소비자의 행태가 기존과는 다른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런 소비를 통해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를 유럽의 한 단체에서는 *Deeper Luxury라고 했다. 현재 우리가 가진 포지션이 한국 시장에서는 비어있는 공간이다. 처음에 생산자들을 만나기 위해 3년간 직접 필드 조사를 다닌 적이 있다.

한국에서 업체에 주문하면 금방 수정 보완해서 완벽한 샘플이 나오는데, 공정무역 패션은 그런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은 일본 기업 대표는 제품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이슈가 해결될 때까지 생산지에 머물면서 생산자들을 모니터링하고 그들의 고충을 직접 듣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얘기는 많은 도움을 줬다. 공정무역 패션은 방글라데시, 인도, 네팔이 메인 생산지이고, 일부 단품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기획하고 상품을 구매한다.

 

 

*Deeper Luxury
2007년 11월, WWF(World Wide Fund for nature) 영국지부에서는 ‘Deeper Luxury’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상징과도 같은 ‘명품’을 생산하는 브랜드와 기업들에게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걸맞은 윤리적인 책임의식을 강조하며, ‘진정한 명품(Deeper Luxury)’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브랜드라고 일갈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인식 속에 명품은 너무 많이 소비되는 반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의식도 증가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 속에 노동환경과 자연파괴 등을 일삼으며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했다는 비판도 일어나고 있는데, 기업들이 이런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자체 평가와 미디어, 비정부기구의 평가를 종합하여 10대 명품기업의 순위를 A부터 F로 매겼는데, 1위는 C+를 받은 로레알이, F를 받은 불가리와 토즈는 각각 9, 10위를 차지했다.

 

 

사회연결망이론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공정무역 브랜드는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현재 국내 공정무역 패션 시장은 어떤가.
한국은 윤리적 패션이 굉장히 취약한 곳 중 하나다. 외국의 경우는 윤리적 패션이 사회 담론화되면서 관련 사업, 비즈니스도 많이 생겼는데, 한국은 패션과 윤리 혹은 패션과 인권 등을 결합하기가 쉽지 않다. 전 세계에서 SPA 브랜드가 가장 잘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패스트 패션은 반환경적이며, 엄청난 폐기물과 인권문제를 양산한다. ZARA나 H&M 같은 경우는 제3세계에서 계속 이슈가 되고 있다. 이익 중심의 공급체계가 형성되어 있고 100% 직영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 시스템을 컨트롤하기 어렵다. 하청의 하청의 하청 식의 사슬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본사에서는 사고율을 제어할 수 없다. 초등학생 애들 가둬놓고 사탕값 주면서 자수 놓는 일에 동원하는 걸 어떻게 알겠는가.

가격과 이익 중심적 사고로 밸류체인을 개선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SPA 브랜드가 잘되는 나라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윤리적 패션, 에코 패션이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증거이다.생각의 변화는 의식주 라이프스타일로 보면, 식→주→의 순서로 진화한다고 한다. 공정무역은 기본적으로 친환경을 지향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우리가 거래하는 가난한 나라의 작은 커뮤니티를 어떻게 지속가능한 형태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또 공정무역 패션은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등 많은 함의를 지닌다.

 

브랜드 마니아들은 브랜드의 가치 철학과 제품에 기꺼이 자신의 아이덴티티 일부를 내어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무역 패션, 여성의 빈곤 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그루 브랜드의 소비자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우리 소비자들은 굉장히 옷을 아껴 입는다. 공정무역 옷은 함부로 입기가 어렵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5년째 그루 브랜드 옷을 입는 소비자로서, 예를 들어 다른 옷들은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하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 수거함에 넣기도 하는데 공정무역 옷들은 그렇게 안 된다. 빨래만 해도 세제 풀어 세탁기에 강력하게 돌릴 수 있는 세탁법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빨아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물망에 넣어서 울코스에 돌리는 편이다. 손빨래를 끝까지 고집하는 분들도 많다. 고객들이 가끔 2008년 초에 나온, 지금은 이미 단종된 옷을 새 옷처럼 곱게 차려 입고 나타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정말 감동이다. 자연스럽게 옷에 대한 소중함이 생기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옷을 소중하게 아껴 입으면, 기분도 좋아진다. 힐링 효과가 있다. 소비자들을 보면 여러 면에서 생각이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다. 공정무역뿐만 아니라 환경적, 인간적, 영적으로도.

 

 

소비자들을 보면 여러 면에서 생각이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다.
공정무역뿐만 아니라 환경적, 인간적, 영적으로도.

 

 

말씀한 것처럼 친환경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기업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러한 진정성은 기업이 주입식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기업들의 에코 정책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친환경 제품의 생산이나 소비는 제품 전체의 라이프사이클로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익의 결과로 다시 재투자하겠다는 생각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 낫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제품의 전체적인 프로세스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투자해서 바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당장은 돈이 안 되더라도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서 투자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전 생애주기의 관점에서 제품을 바라봐야 혁신이 일어난다.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이익을 함께 가져가다 보면 어느 한 쪽을 놓치기 쉽다. 기업에 있어 영리 추구는 옳다고 믿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기업도 수익과 가치의 균형이라는 난제 앞에 서 있다.

 

 

에코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은 보다 근본적인 브랜드 정체성과 연결되는 듯하다. 공정무역 패션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일자리 제공을 위한 아이템이다. 우리의 시작은 빈곤국가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서 그들의 권리와 자립 능력을 키우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무역이라고 하는 것이 달러 중심, 외국인 위주로 움직이기 때문에 생태적인 자급자족적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접근 방법도 매우 현실적이어서 시장성이 없으면 거래하지 않는다. 결국 생산자들에게 중요한 건 대가가 정확하게 주어지고 이것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초 생활비 수준이었다면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 그리고 친환경의 생태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환경적으로 문제되지 않으면서 생산자들의 건강에 피해가 가지 않는 제품을 취급해야 한다.

그런 비전을 같이 나누고 싶다. 우리는 문화적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수를 응용하고 베틀 직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여성들이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경험적으로 습득한 기술인 자기 자원을 사장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여성들에 의해서 그 전통이 계승된다. 나는 이것이 옛것을 지키는 고루한 방식이 아니라 상업화 가능성을 지닌 상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문화적 다양성을 공정무역으로 지켜내는 것은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권리를 가지면서 가정, 마을, 사회에서 지위와 리더십을 갖게 되는 길이다. 그래서 여성 생산자들에게 본인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라고 권한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여성들이 주체화되고 자기자존감을 높이는 기회가 될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제3세계를 넘어, 제4세계 프로젝트

제3세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냉전 블록의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을 통칭한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환경적, 경제적 수세에 몰려 기아와 빈곤, 질병에 허덕이고 있다. 공정무역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끈을 연결한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가 공정무역을 희망무역이라고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여기서 나아가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디자인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생산자들에게 신진 디자이너와 협업해 시장성 있는 디자인 상품 개발 기회를 제공, 디자이너와 생산자, 시장을 연계하는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일명 ‘제4세계 프로젝트’는 국내외 신진 디자이너, 공정무역 생산자 간의 새로운 경제 공동체로서, 디자이너와 생산자가 만드는 또 다른 세상을 의미한다. 기존 1세계와 3세계의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취지이다. 디자이너와 생산자의 상생, 윤리적 소비 확산,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 구축 등은 그루의 목표이자, 브랜드가 사회의 유기적 관계망을 통해 이루어 나가야 할 도전 과제이기도 하다.

 

 

VIEWPOINT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는 수많은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브랜드는 이들의 관계를 연결하고 규정하는 가운데 완성되는 결과물이다. 공정무역도 그 결과물에 속한다. 경영학자 알렉스 니콜스는 사회교환연결망이론(social exchange network theory)에서 “연결망에는 생산자와 소비자 마디가 있어, ‘의미심장한’ 지식의 흐름과 정보 사이에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생긴다”고 언급하면서 관련 예로 스웨덴 IMP 그룹의 연결망 연구를 꼽았다. IMP 그룹은 연결망으로서의 시장에 집중, 과거의 구매자와 판매자 간 힘의 균형이 구매와 판매에 참여한 참여자 사이의 상호연관성으로 전이됐다고 밝혔다.

공정무역은 정보 흐름에 근거해 연결된다. 또 사회적 관계에 기반한 연결망에 의존한다. 제품의 종류와 생산지명, 생산자 소개, 소비자의 역할 등은 공정무역 브랜드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소비자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기재이기도 하다. 그루는 모든 제품에 이러한 정보 택(Tag)을 달아 제공한다. 고객은 택을 보면서 생산자의 정보를 상세히 공유 받고, 그들과 교감한다. 브랜드의 가치가 생산자에서 소비자,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흘러가도록 돕는다. 공정무역의 연결망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브랜드와 생산자의 관계,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 생산자 간 관계, 소비자 간 관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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