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공정하고 윤리적인 평평한 세계
자연주의 공정무역 패션
시즌2.5 / Vol.28 에코시스템 브랜드 (2012년 12월 발행)
지구의 끝에서 각종 편견과 폭력, 불평등한 권리와 열악한 환경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로 지구가 조금씩 촘촘해지고 평평해지면서 균형점을 찾기 위한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 기업가정신) 운동이나 공정무역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뿐 아니라 공존을 위한 지속가능성이 주목 받고 있다. 공정무역은 국가 간 동등한 거래를 통해 생산 약자를 보호하고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생산자와 소비자의 새로운 관계 모델로, 한쪽으로만 흐르던 정보와 힘의 불균형 해소에 초점을 맞춘다. 《공정무역-시장이 이끄는 윤리적 소비》의 저자 알렉스 니컬스는 “공정무역의 성장은 문화, 정치, 정보, 학문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고, 윤리적 소비주의를 파생시켰다”고 밝혔다. 또한, 경제전문가 클립턴(Clifton)은 “이러한 변화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태도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지난 30여 년간 성공적인 브랜드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실용성과 낮은 가격, 가치 중심에서‘진정한 가치(윤리적 생산)’로 변했다”고 피력했다. 공정무역에 대한 수요 증가와 소비자 공감대 형성은 브랜드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 기업가정신) 유니타스브랜드 Vol.6에서는 앙트러프러너십을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변화에 대응하며, 변화를 기회로 이용함으로써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들이 갖는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기질’로 정의했다. 프랑스어에서 파생한 이 단어는, 기업의 본질이라는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기업가가 가져야 할 자세와 정신을 의미한다. 조세프 슘페터가 앙트러프러너십을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인데, 그는 기업가의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장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혁신적인 면모를 주장했다.

공정무역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순에 의해 탄생했다. 깨어진 균형에 대한 탄식일까. 사회적, 구조적, 환경적 불균형으로 점점 궁핍해져 가는 이들에게 스스로 희망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 공정무역은 자선과 원조가 아닌 무역 관계를 통한 경제적인 자립과 역량 개발을 택했다. 공정무역은 세 가지의 연결된 목표를 갖는다.
첫째, 무역으로 극심한 빈곤 개선, 둘째, 소농과 농장 노동자들이 사회적 자본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무역을 활용할 수 있게 역량을 강화하는 것, 셋째, 세계 무역개선과 정의를 위한 폭넓은 캠페인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로써 생산자들은 지속적인 생계수단을 가지게 된다. 지난 2006년까지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었던 코피 아난은 “원조보다는 무역이 장기적 빈곤을 완화하는데 적합하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지속가능한 무역과 주도적인 시장은 효과적인 경제 메커니즘이다”고 말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 이미영 대표는 여러 사회 문제 중 여성인권에 집중한다. “여성빈곤문제는 90년대까지도 심각한 이슈였다. 생태계 파괴는 여성들을 더 열악하고 빈곤한 환경 속으로 떠밀었다. 이를 해결하면서 친환경, 지속가능한 지역사회의 대안적 발전을 꿈꾸게 되었다. 당시 공정무역을 접하면서 커뮤니티를 기본 단위로 새롭게 비즈니스를 열어가는 장을 알게 되었다.” 중앙대학교 여성학대학 프란시스카 도 한 교수는 “문해율(문자 해독 능력)이 상승하고 있지만, 여성은 여전히 세계 문맹인구의 2/3를 차지하고, 세계 노동의 2/3를 담당하며, 세계식량의 50%를 생산하지만 그들의 소득은 전체 소득의 10%, 재산은 겨우 1%만을 소유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바로 이 점이 이미영 대표가 ‘패션’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한 이유다. 여성들이 주가 되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적은 자본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남길 수 있는 사업 아이템으로 공정무역 패션은 제격이다.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영화 ‘해리포터’에서 헤르미온느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엠마 왓슨은 현재 영국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피플 트리(People Tree)’의 홍보모델로 활동 중이다. 그녀는 방글라데시 생산 현장을 찾기도 했는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패스트 패션과 공정무역 패션의 차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옷을 만드는 생산자가 인간답게 살고 자신의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외에도 아프리카 가나 여성들이 제작한 친환경 소재 가방 브랜드 미국의 델라(Della), 오가닉 면과 대나무 섬유, 버려진 데님 등으로 옷을 만들고 공정한 임금과 노동시간을 보장하는 네델란드의 쿠이치(Kuyichi), 실제 철저한 생산자 조사와 연구를 통해 해외 19개국에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 국내 브랜드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g:ru, 이하 그루) 등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에코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으며, 환경, 소비자 및 생산자 보호, 윤리적 소비 등 시대적 변화와 필요에 부응한다.
이에 공정무역으로 그들과 관계 맺고 유기적인 연대를 형성해 가난한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나아가 소비자에게는 윤리적인 소비의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유럽에서 ‘Clean Clothing Campaign’이라고 깨끗한 옷입기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는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제3세계에 공장을 짓고, 그 지역의 젊은 여성들, 특히 10대 소녀들을 고용해 적은 임금을 주고 장시간 노동시키는 데 반대하는 움직임이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예전에는 심각했다. 북미, 유럽에서 윤리적 소비 운동이 패션 분야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상징성이 있다. 대형 스포츠 의류 매장에서 많은 인권문제가 야기되었는데, 그 대안으로 공정무역 패션이 강력하게 거론되었다. 그루는 대안적 역할뿐 아니라 책임의식을 가지고 제3세계 여성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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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들이 직접 베틀로 직조해서 옷을 만들기 때문에 손맛이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베틀 직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여성 생산자 중 농사와 육아, 베틀 일까지 병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원가가 비쌈에도 불구하고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루 브랜드는 베틀 직조 이외에 손 염색, 자수, 인도 전통기법인 블록 프린트, 손뜨개, 자연 자원(코코넛, 나무, 조개껍데기, 버펄로 뿔 등)으로 만든 단추를 다는 방법으로 옷을 제작한다. 단추를 만드는 생산자가 따로 있으며, 그 나라에서 직접 재료를 개발하고 기획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다 현지에서 공급하는 친환경 원료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루는 적정기술을 표방한다. 적정기술은 빈곤층 사용자의 능력을 배양하고, 새로운 기회 창출을 돕는 착한 기술이다. 기술 교육과 생산 활동 참여로 자립적으로 살아갈 힘을 기르는 데 목적을 둔다.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는 1965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에서 적정기술을 ‘중간기술’이라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중간기술은 토속기술과 첨단기술의 중간 의미로, 지역 사람과 지역에서만 나는 원재료를 기반으로 한다. 1970년대에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적정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이후 경제·사회적 측면으로 확대되었다. 그루는 이러한 중간기술을 전파하고 공정무역으로 결과물을 유통, 제3세계 빈곤층,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독려한다.
한국에서 업체에 주문하면 금방 수정 보완해서 완벽한 샘플이 나오는데, 공정무역 패션은 그런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은 일본 기업 대표는 제품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이슈가 해결될 때까지 생산지에 머물면서 생산자들을 모니터링하고 그들의 고충을 직접 듣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얘기는 많은 도움을 줬다. 공정무역 패션은 방글라데시, 인도, 네팔이 메인 생산지이고, 일부 단품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기획하고 상품을 구매한다.
가격과 이익 중심적 사고로 밸류체인을 개선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SPA 브랜드가 잘되는 나라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윤리적 패션, 에코 패션이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증거이다.생각의 변화는 의식주 라이프스타일로 보면, 식→주→의 순서로 진화한다고 한다. 공정무역은 기본적으로 친환경을 지향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우리가 거래하는 가난한 나라의 작은 커뮤니티를 어떻게 지속가능한 형태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또 공정무역 패션은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등 많은 함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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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뿐만 아니라 환경적, 인간적, 영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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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은 보다 근본적인 브랜드 정체성과 연결되는 듯하다. 공정무역 패션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그런 비전을 같이 나누고 싶다. 우리는 문화적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수를 응용하고 베틀 직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여성들이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경험적으로 습득한 기술인 자기 자원을 사장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여성들에 의해서 그 전통이 계승된다. 나는 이것이 옛것을 지키는 고루한 방식이 아니라 상업화 가능성을 지닌 상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문화적 다양성을 공정무역으로 지켜내는 것은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권리를 가지면서 가정, 마을, 사회에서 지위와 리더십을 갖게 되는 길이다. 그래서 여성 생산자들에게 본인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라고 권한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여성들이 주체화되고 자기자존감을 높이는 기회가 될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제3세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냉전 블록의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을 통칭한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환경적, 경제적 수세에 몰려 기아와 빈곤, 질병에 허덕이고 있다. 공정무역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끈을 연결한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가 공정무역을 희망무역이라고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여기서 나아가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디자인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생산자들에게 신진 디자이너와 협업해 시장성 있는 디자인 상품 개발 기회를 제공, 디자이너와 생산자, 시장을 연계하는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일명 ‘제4세계 프로젝트’는 국내외 신진 디자이너, 공정무역 생산자 간의 새로운 경제 공동체로서, 디자이너와 생산자가 만드는 또 다른 세상을 의미한다. 기존 1세계와 3세계의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취지이다. 디자이너와 생산자의 상생, 윤리적 소비 확산,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 구축 등은 그루의 목표이자, 브랜드가 사회의 유기적 관계망을 통해 이루어 나가야 할 도전 과제이기도 하다.
공정무역은 정보 흐름에 근거해 연결된다. 또 사회적 관계에 기반한 연결망에 의존한다. 제품의 종류와 생산지명, 생산자 소개, 소비자의 역할 등은 공정무역 브랜드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소비자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기재이기도 하다. 그루는 모든 제품에 이러한 정보 택(Tag)을 달아 제공한다. 고객은 택을 보면서 생산자의 정보를 상세히 공유 받고, 그들과 교감한다. 브랜드의 가치가 생산자에서 소비자,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흘러가도록 돕는다. 공정무역의 연결망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브랜드와 생산자의 관계,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 생산자 간 관계, 소비자 간 관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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