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 브랜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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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찬호  고유주소 시즌2 / Vol.22(상) 브랜드 인문학 (2011년 11월 발행)

빈 강의실에서 김찬호 교수와 인터뷰를 한 뒤, 회사로 돌아와 보니 모기에 물린 자국이 다섯 군데나 있었다. 이 정도면 내가 인터뷰에 얼마나 몰두해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모기에게 물림을 당하는 것도 모를 정도로 그와의 인터뷰가 흥미진진했던 것은 그 시작이 바로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최근에 낸 저서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돈의 인문학》이다. 하지만 이 책은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처럼 돈을 버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이 책에선 이렇게 말한다. “인문학은 삶의 부유함과 존귀함을 발견하는 공부다. 돈과 사람과의 관계를 되묻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가치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을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살아가는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이 말에 대한 대구를 이렇게 해보았다. “브랜드 인문학은 상품의 부유함과 존귀함을 발견하는 공부다. 상품과 사람과의 관계를 되묻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가치의 근원, 즉 브랜드에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브랜드를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살아가는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이것이 유니타스브랜드가 이번 특집을 통해 말하고 싶은 핵심 주제다. 인간은 원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원본’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는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복사본’으로 죽는다는 말이 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것은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름’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도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름’이 아닐까. 결국 가장 자기다움을 만드는 것이 인간의 존엄적 가치를 세우는 것이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후, 인터뷰를 녹음해 둔 보이스 레코더의 플레이어 버튼을 다시 눌러보았다. 분명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의 주장은 매우 강렬하고 선동적이었다. 다시 한번 김 교수의 책에서 그가 외쳤던 말을 소개하고 싶다. “천박함과 난폭함으로 치닫는 세계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항체를 갖고 싶다. 생애의 드넓은 기쁨을 누리는 시공간을 만나고 싶다.”

돈의 인문학
Q
교수님께서 쓰신 《돈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보면 쇼펜하우어의 명언이 등장합니다. “*나는 모든 것의 가격을 안다. 그러나 어느 것의 가치는 모른다.” 가치보다는 가격이 더 우위에 있는 오늘날의 사회를 너무나 잘 대변해주는 말인 듯합니다. 유니타스브랜드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화두 중의 하나가 ‘가치가 돈을 이길 수 있을까?’입니다. 하루에도 수만 개의 브랜드가 태어납니다. 그러나 대부분 자본 앞에서 무너지고 말죠. 이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만약 세상을 뒤바꿀 수 있는 가치를 가진 브랜드가 있다면 그것은 자본을 뛰어넘어 브랜드로서 영속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저희의 질문이었죠.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은 그저 이상에 불과한 걸까요?

 

A
유니타스브랜드의 화두에 매우 동감합니다. 사실, 《돈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통해서 제가 하고자 했던 말도 그러한 맥락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힘이 된 게 사실이라 할 지라도 우리가 그 돈으로 인해서 놓쳐버린 가치가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커피숍이나 프랜차이즈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그저 일의 시급이 얼마인지에만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난 주어진 시간을 정확하게 채우고 시급만 제대로 받으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더군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 가게에서 일할 경우는 절대 그 가게에는 문화라는 것이 만들어질 수 없죠. 아르바이트를 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비단 시급 몇천 원이 아니거든요. 하다못해, 친구를 사귈 수도 있잖아요. 이것이 바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얻는 부가가치입니다. 이런 것은 절대 돈으로 그 값을 매길 수가 없죠.

그래서 제가 항상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첫 강의를 할 때 시간당 12만 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강의가 12만 원짜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내 강의를 듣고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강의는 몇억 원으로도 매길 수 없는 강의다.” 칸트는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라.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나 이 말은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에요.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대해야 됩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수단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삶이 수단이 되어버리고 있어요. 공부는 점수 따는 수단이 돼버렸고, 일은 돈 버는 수단이 돼버렸고. 심지어는 연애도 쾌락을 위한 수단이 돼버렸죠. 그러다 보니 가게 하나를 하더라도 장인정신을 가지고 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내가 무엇에 가치를 두는가를 고민하는 행위가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Q
그렇습니다. 브랜드에게도 있어서도 이 명제는 성립되거든요. 수많은 기업에서 과거에는 자본의 힘으로 기업을 운영해나갔지만, 이제는 자본이 아무리 많아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이타적 브랜드’라고 하는, 원래 기업의 목적인 이윤추구가 아니라 태생부터 사회기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브랜드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화폐가 가치를 앞서게 된 문화적 배경이 있을까요?

 

A
저의 다음 연구 주제가 ‘모멸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모멸감을 무척이나 많이 느끼며, 또한 이것을 참기 어려워합니다. 우리가 흔히 잘 쓰는 말이 있죠? ‘니가 뭔데?’ 이 말은 모멸감을 못 참아 내뱉은 말이죠. 한국인들의 속은 시쳇말로 뭔가 단단히 꼬여 있어요. 왜 그런 걸까요?

사실, 우리나라만큼 *신분제도가 완벽하게 무너진 나라가 없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었던 양반과 천민이라는 신분구조가 일제 식민지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완벽하게 없어져버렸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신분제도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겁니다.

왜? 서양의 경우 시민 혁명을 통해 이 신분제도를 무너뜨렸죠. 그러니까 시민들의 자발적인 각성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스럽게 그야말로 나라의 운명과 함께 신분제도의 종말을 맞이한 거잖아요. 그래서 신분 의식에 대해 스스로 자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귀(貴)’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귀’가 무엇이냐면, 내면의 가치입니다. 존귀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 혹은 내가 가진 것, 혹은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귀하다’라고 여기는 것이 바로 ‘귀’입니다. 하지만 이 ‘귀’가 제대로 대접받았던 적이 없었어요.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무슨 의미였나요? *입신양명(立身揚名)이었죠. 이러한 신분제도의 뿌리들이 제대로 뽑히지 못한 채 시대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여기까지 오다 보니, 가치의 귀함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위, 아래 그러니까 상전, 상놈 이렇게 나뉘던 신분제도가 오늘날은 아파트 평수, 학력이나 외모 등으로 그 모습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듯 가치를 매기는 것을 학습할 기회가 없다보니 모멸감이 생긴 겁니다. 모멸감이란 마땅히 누려야 되는 것을 못 누렸기 때문에 비롯된 거거든요. 이 모멸감은 악순환을 불러일으킵니다. 자신이 모멸을 당했다고 느끼면 상대방에게 또 다시 모멸감을 주기 때문이에요. 가치보다는 나의 신분을 드러내는데 치중하는 사회가 지속되는 한 모멸감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듯 합니다.

 

 

  

 

 

Q
모멸감 또한 압축성장의 비극이군요. 우리나라는 지나온 역사 속에서 참 많은 것들을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리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들어 다시 인문학이 열풍을 일으키며 기업에서도 인문학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인문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동물은 이러한 성찰의 영역이 없어요. 인간과 동물이 구별되는 지점이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질문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향해서 뻗어나가는 것을 의미해요. 인간은 이러한 질문을 함으로써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고,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거죠. 그런데 *전통사회에서는 자신에 대해서는 질문할 필요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개인보다 가족이나 조직과 같은 공동체가 더 중요한 사회였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소속이 분명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가 너무나 확고했기 때문에 굳이 나에 대한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무엇보다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신념과 울타리를 벗어 난다는 것은 곧 추방을 의미하던 때에요. 추방이란 사회적 삶의 끝을 말하는 겁니다. 그 당시 사회적 삶이 끝난다는 것은 생물학적 삶이 끝나는 것이었거든요. 그렇다고 그 당시 모두가 질문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파격적인 인물로 취급받았죠. *성 프란시스라든가 고흐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임의로 주어지는 정체성을 거부한 사람들이죠.

어쨌든 나에게 질문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은 삶의 다른 가능성을 찾기 시작합니다. 인문학이란 바로 이러한, 또 다른 삶을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사회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모색해보거나, 더 나아가 창조해 볼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인문학이란 인간을 자기 스스로 창조하는 동물로 만드는 것이에요. 인문학이 시대적 요청에 부름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겁니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내면을 들여다 봐야 할 때인 거니까요. 여기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내면의 가치인 거구요.

 

 

* “나는 모든 것의 가격을 안다. 그러나 어느 것의 가치는 모른다.”
물건의 가격과 가치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가치’란 복잡한 기호가치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가격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시대는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화폐 중심의 사회다. 그래서 현대사회에 와서는 가격이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가치를 규정하는 일이 많다. 특히 명품일수록 이런 논리가 상당 부분 작동한다. 가격이 가치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쇼펜하우어는 “나는 모든 것의 가격을 안다. 그러나 어느 것의 가치도 모른다”고 하였다.

 

 

*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라.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서양 철학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가 중 한명인 칸트는 타인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단으로 본다는 것은 다른 것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것이며 목적으로 본다는 것은 자유로운 주체로 본다는 뜻으로 주체성에 관한 칸트의 사고를 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목적으로, 인간을 수단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근대사회 이후 돈의 작동 범위가 급격하게 넓어지면서 그 힘이 막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 결과로 과거보다 훨씬 소비 생활이 풍부해졌으나 생산의 주체로서 자신을 세우기가 이전보다 어려워졌음을 김 교수는 칸트의 철학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 신분제도
인권선언이 이루어진 영국혁명과 프랑스 혁명, 세계 최초로 민주공화국이 성립된 미국의 독립전쟁은 근대 시민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3대 시민혁명이다. 이 3대 시민혁명의 원인은 다르나 결과는 비슷했다. 절대왕권과 신분제도가 없어지고 국민주권을 찾고 자유주의가 형성되며 경제가 함께 발전해나갔다. 반면 후발 산업국가인 한국은 앞의 사례처럼 시민혁명을 토대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민’ 대신 ‘국민’의 창출이 우선이었고, 민족주의적인 응집을 토대로 재빨리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이렇게 급격하게 진행된 변화를 추진하는 근본 원동력이 앞의 서양의 시민혁명과는 다르게 우리 안에서 형성되지 않고 바깥에서 왔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열강의 질서에 성급하게 적응하는 양태로 사회변동을 우리 힘으로 주도하지 못했다. 이런 과정에서 과거부터 내려오던 신분제도가 무너졌지만 ‘시민’으로서 개인의 정체성이 채 형성되기 전에 자본이 중심이 되는 소비문화를 향유하는 단계에 진입하며 화폐중심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 입신양명
입신양명은 《효경(孝經)》에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에서 유래된 말로 ‘행도’가 빠지며 원문이 잘못 해석되어 ‘입신양명’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입신양명이 지닌 뜻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사람의 지배욕과 출세욕으로 변질되면서 한국 전통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으로 자리잡는다.

 

 

* 전통사회
전통사회는 혈연 중심의 가족을 바탕으로 하는 신분 사회와 집단 노동력에 의존하는 농경사회의 문화였다. 집단 내에서 조화와 협력을 도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 하여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거의 같은 일에 종사하였고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가치 갈등이 심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집단 소속감이나 유대감 등으로 정서적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구조였다. 오늘날에는 민주시민사회가 되고 개인중심의 사회가 되며 근대 이전의 시대부터 길게 이어져오던 공동체적인 심성이 급격하게 퇴화하면서 타인과의 유대 관계 역시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더불어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주체적으로 개인 또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성 프란시스라든가 고흐
성 프란시스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수도사 프란시스 베르나도네(Francis Bernadone)의 삶은 수세기를 넘어 현재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부와 명예를 버리고 대신 가난한 자들과 손잡으며 민중과 하나된 삶을 살았으며 그의 사랑과 보살핌을 통해 사람들은 변화되고 온전한 자신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세기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그려낸 화가 고흐는 스물 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을 선택했으며 정규 미술 교육 과정도 제대로 밟지 못했지만 기존의 제도와 규범의 틀을 깨고 회화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창조적인 화풍을 남긴 화가로 칭송 받는다.

 

 

브랜드의 인문학
Q
근대시대의 경우 엄격하게 갖춰진 틀이 있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 오면서 그러한 틀들이 깨지다 보니 인간은 진짜, 생각하는 동물이 된 것이군요. 조
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따라가면 되었는데,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지어야 하는 일종의 책임감을 가지게 되다 보니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브랜드도 이러한 시대에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브랜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인간만큼 타자와의 의존도가 높은 동물은 없습니다. 현대사회뿐만 아니라 수렵채집 단계에서부터 인간처럼 많은 무리가 군집을 지어 생활하는 동물은 없었거든요. 이처럼 인간은 서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정밀하게 협동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그런 삶을 살아왔어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인간은 끊임없이 어딘가에 접속하지 않으면 불안한 존재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표현해보면, UB인간은 타자와 이어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는 거죠. 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타자는 시대마다 그 모습을 조금씩 달리해왔어요. 어떨 때는 종교로, 어떨 때는 집단의 신념으로, 또 어떨 때는 예술로. 이처럼 인간을 끊임없이 접속하게 해주는 것을 우리 용어로 상징체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든 전통사회에서는 이러한 타자의 역할이 분명했죠.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무엇이 이 타자의 역할을 해야 할까요?

완벽한 *개별사회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자신의 존재를 대변해주는 것으로 바로 브랜드가 등장한 겁니다. 내가 어떤 브랜드를 소유함으로써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거죠. ‘나는 이 브랜드의 옷을 입었고, 이러한 휴대폰을 사용하며, 이 브랜드의 차를 탄다. 그러니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다’ 하고 말입니다. 이처럼 브랜드는 어떤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고도 자신을 표현해주는 것이죠.

 

Q
저희가 브랜드를 바라볼 때 사용하는 개념이 하나 있는데요, 과거에 브랜드는 말 그대로 상품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의 정체성(identity)를 드러내주는 것이 되었죠. 이제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하나의 이데올로기(ideology)가 되어서 그 UB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으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흐름이 단순히 브랜드의 흐름이 아니라, 오늘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회문화적인 배경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듯 합니다.

 

A
사람들이 존재감을 느끼는 여러 가지 단계나 혹은 차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가 아이덴티티를 가지는 것만 하더라도 그것이 주는 포만감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또는 사회적 의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구별짓기, 그러니까 흔히 얘기하는 차별화의 기호로서 그 브랜드는 나에게 매력적인 힘을 주는 거거든요. 하지만 브랜드가 이데올로기로 넘어가게 되면 그것은 아예 UB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아이덴티티보다 훨씬 적극적인 거죠. 왜냐하면 ‘창조’가 일어나기 때문이에요. 아이덴티티까지는 사실, 빌려오는 거잖아요.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내가 차용하는 거거든요.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내가 브랜드의 생각에 동조하고 동의하며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어요. 예를 들어, 그 브랜드가 벌이는 사회행사에 참여한다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내가 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창조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가 무섭다는 겁니다. 왜?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 번 보세요. 과거의 전통사회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존재했었죠. 영어로 ‘Ritual’이라고 하는 종교의식이나, 의례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였죠. 또한 공동체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는 신념이나 질서가 이데올로기였어요. 하지만 현대사회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라 불리던 것들이 모두 해체되면서 그 자리를 다른 것들이 자리잡게 되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브랜드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UB브랜드는 종교적인 면도 있다라고 봅니다.

만약,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전지구적인 일을 한다고 해보세요. 아마도 고민하지 않고 그 일에 동참할 거예요.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적 기여를 하게 하여 자신이 위대함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거잖아요. 이것은 아이덴티티만으로는 할 수 없어요. 흔히들 사회적 기업, 혹은 브랜드라고 하는데 혹, 유명세를 펼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루이비통을 가지고 다닌다면 그것은 one of them이잖아요. 그런데 만약, 이 브랜드의 제품을 사면 굶어 죽는 아이들의 생명을 살린다, 이건 차원이 다른 거지요. 브랜드가 이데올로기인지 아닌지는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중심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죠.

 

Q
결국, ‘가치’가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이제는 명품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가, 아이덴티티에서 이데올로기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것은 ‘자기다움’이거든요. 끊임없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철학화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구축해나갑니다. 그래서 유니타스브랜드에서는 브랜드의 정의를 ‘자기다움을 통해 남과 다름을 추구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했지요.

 

A
자기다움이란, 절대성이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 그러니까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느끼고 싶어하죠. 사랑에 왜 자꾸 빠지게 되는 줄 아세요? 사랑에 빠지면 내가 유일하고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확인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동안 내가 누군가의 복제품으로 사용되면 그 관계는 깨져버리고 마는 거죠. 내가 그 사람의 전부이길 원하잖아요. 그래서 99%만큼 사랑을 주는 것도 안 되는 거예요.

이런 의미에서 자기다움이란 다른 말로 대체 불가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제일 비참해 지는 게 바로 누군가로 대체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반대로 누군가가 절대적이고 유일한 존재로 보일 때는 어떨까요? 그 사람에게 100% 끌리게 되어 있어요. 이것은 브랜드에게도 해당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왜냐면 브랜드는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어차피 피조물은 창조자의 성격이나 성향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투영될 수밖에 없는 거죠.

 

Q
자기다움을 강력하게 발휘하는 브랜드일수록 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하겠군요. 그렇다면 현재 소위 ‘쏠림 현상’을 보이는 브랜드들의 경우 자기다움을 명확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브랜드에게 끌리고 열광하는 거라고 분석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뉴발란스라는 신발 브랜드가 있어요. 이 신발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거리에서 보기 힘든 브랜드였는데, 어느 날 부턴가 모두가 신는 브랜드가 되면서 지금은 몇천 억의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로 급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A
5층짜리 연립주택 살다가 30층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고 해 봅시다. 그리고 100층짜리 아파트로 다시 이사를 갔다고 생각해봅시다. 이사를 갈 때마다 점점 이웃과의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옆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게 됩니다. 각각 개별화된 공간이 나타나죠. 이처럼 고밀도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요.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말은 다른 말로 개인은 지워진다는 거죠. 내가 누구인지 점점 알기가 애매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입니다.

현대사회는 이러한 개별화된 공간을 가지고 있는 개인화된 사회죠.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서양과 우리는 조금 다릅니다. 서양 같은 경우, 철학과 문화가 꾸준히 형성되면서 그 위에 자연스레 개인화된 사회가 순차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압축성장으로 인해 그러한 절차를 무시한 채 점핑해버렸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겉으로는 개인화된 사회를 표방하지만, 정신은 집단주의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서양의 경우 노숙자로 살든, 거리에서 기타를 치면서 살든 ‘I don′t care’라고 하는 겁니다. 왜냐면 시쳇말로 개똥철학이라도 그들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개인화 시대를 살고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정신과 몸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요. 겉은 개별화된 공간 안에서 ‘I don′t care’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실상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살핀다는 겁니다. 아는 사람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에게까지 신경을 쓴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삶은 개별화되어 있지만, 마인드는 여전히 집단주의를 주장하는 모순된 형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끊임없이 접속하지 않으면 너무나 불안한 겁니다. 그래서 존재성을 인정받기 위해 타자에게 접속을 시도하죠. 이것은 반대로 존재성을 거부 당하지 않기 위해 접속하는 거잖아요. 만약, 사회의 흐름 속에서 무언가가 이슈로 등장하면 그것에 접속하지 않았을 경우 사람들은 존재가 거부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등장하면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 앱이 나왔죠. ‘문자해’가 아니라 ‘카톡해’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카카오톡은 모두가 사용하는 앱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을 나만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보세요. 카카오톡에 접속해 있는 수많은 무리로부터 자신의 존재가 거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쏠림 현상은 굉장한 방어적 기제라고도 할 수 있어요. 존재의 불안에서부터 오는 방어 기제 말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그 브랜드를 사용한다면 나도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소위 ‘안전바’를 만들어 놓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관계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UB) 인간은 타자와 이어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강력한 마니아 집단을 형성하는 브랜드들의 다수는 아주 강한 색깔을 가진, 개성이 강한 브랜드다. 이런 브랜드는 코드가 맞는 소수의 마니아들에게 받아들여지며 추후 이들을 통해 더 넓은 층에게 어필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초기 마니아들이 남과 똑같아지는 것을 싫어하며 강한 차별화를 원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one of them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집단을 형성하고 거기서 소속감을 느끼며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기에 아이러니컬한 이런 현상은 그러나 인간 본성에 따르는 당연한 일이다.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인간 대부분이 매우 독립적인 동시에 상호의존성을 갖는 이중문화적(bicultural) 존재”라고 인간의 본성을 지적한다. 게다가 오히려 상호의존성(타자와의 관계 중심)을 토대로 자신의 독립성과 존재감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브랜드들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캐치해 소비자가 브랜드를 구입함으로써 특정 문화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개인으로서 독립성이 있다는 메시지를 브랜드 혹은 제품 컨셉, 프로모션 등을 통해 브랜드 문화에 녹이려 노력한다.

 

 

* 개별사회
18~19세기의 발달된 기술은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했지만 산업화의 진행과 더불어 사회는 더욱 개인화 되어 그 속에서 원자화(atomization)된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개별화된 사회 속에서 인간은 세대간, 지역간, 계급간 격차와 갈등을 초래하는 등 사회문제들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화는 더욱 가속화되며 강한 개인적 성향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개인의 출현으로 이어진다. ‘개인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만 외로움과 고립감에 시달리는 개인화된 현대인들은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UB)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이제는 ‘브랜드 부족’이라는 말이 그리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브랜드가 이제는 특정한 취향 구조를 중심으로 문화 내에서 커다란 원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것이 단순히 집단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의 부족처럼 정서적인 연대감과 소속감, 흡사한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계속해서 경영, 혹은 마케팅 잡지를 통해 세상에 나오고 있다. 브랜드 부족의 관심은 정보에서 그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브랜드 가치에서부터 부족 외부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 중요치 않은 제품의 아주 작은 변화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기 때문에 집단 내부적으로도 활발한 의견 개진과 논쟁이 오간다. 또한 이에 따라 브랜드에 크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기업이 브랜드의 방향성과 전략을 결정할 때 유심히 살펴야 할 대상이 된다(유니타스브랜드 Vol.12 p120 참조).

 

 

UB)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
브랜드가 이데올로기와 접합되어 상상 이상의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할리데이비슨이다. 세계 1·2차 대전에 연이은 베트남 전쟁의 실패를 겪은 미국의 젊은 세대는 기존의 지배적인 문화에 반기를 들고 기득권에게 반항할 문화적 코드가 필요했고 이렇게 일어난 미국 반문화 운동(히피 문화도 반문화의 일종이다)의 중심에 할리데이비슨이 서게 된 것이다. 기업의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친 엔진 소리와 남성성 강한 디자인은 젊은 세대의 반항적 이미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결국 할리데이비슨을 모는 사람들과 이를 중심으로 모인 여러 집단들이 당시의 미국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중심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같은 시대에 저항적 록 문화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의류 브랜드)도 흡사한 예다. 이들 브랜드는 반문화 운동이 잠잠해짐에 따라 그 영향력이 약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이때 만들어진 아이덴티티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UB) 브랜드는 종교적인 면도 있다
유니타스브랜드 Vol.12 ‘슈퍼내추럴 코드’에서 다뤘던 브랜드들(로모, 스타택, 닥터마틴, 스트라이다 등)의 마니아들은 마치 종교인들이 신에게 예배하고 제사를 지내고 그들만의 의례를 행하는 것처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문화를 의미하는 culture라는 단어에서, 또 마니아 브랜드를 일컫는 컬트cult 브랜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cult’의 뜻이 ‘제식(祭式), 숭배, 예찬’이란 점도 이들의 종교적 색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요소를 가진 브랜드여야 마치 하나의 종교처럼 격상될 수 있는 것일까? 각 브랜드마다 그 요소는 다를지 모르나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인간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열광의 코드를 브랜드 안에 씨앗처럼 심어 그 씨앗을 고객들과 함께 키워나간 점이다. 이것이 브랜더와 마케터에게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 인간관계의 카르텔
우리나라는 농업 사회에서 벗어나 산업 사회, 후기 산업 사회로 진입하며 공동체 중심에서 개인적 자아 중심으로의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실업문제, 신자유주의 경쟁에서 오는 소외와 갈등이 심화되며 자존감과 정체성을 상실하고 개인들이 불안해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휴대폰의 유령진동증후군과 하루라도 인터넷을 하지 않거나 메일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심리도 현대인의 강박증 또는 불안과 무관하지 않다. 카르텔은 본래 경제 용어로 기업들이 당합하여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인간관계의 카르텔도 주어가 인간으로 바뀔 뿐 흡시한 의미라 할 수 있다.특히 사이버 공간에서의 카르텔은 불순한 목적에 이용되기도 한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이 문제로 자살이 증가하는 등 현대 사회의 디지털 미디어와 통신기술에서 매개되는 인간관계 카르텔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브랜더의 인문학
Q
브랜드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님께서 맨 처음 말씀하셨던 것처럼 돈이 아닌 다른 가치들을, 그러니까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다른 가치들을 찾는 것 또한 브랜드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브랜더라면 어떤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약국을 한다고 해봅시다. 약국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고 가는 곳이에요. 거기에는 아픈 사람들이 옵니다. 얼마나 사연이 많겠어요. 그래서 그저 ‘어디가 아프세요 어떤 약을 드릴까요’가 아니라 환자들의 혹은 환자 가족들의 스토리를 들어줘야 합니다. 이게 바로 제가 말하는 가치이며, 인문학적 브랜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저 약만 사고 파는 곳을 약국이라 하지 않나요? 그 안에 있는 스토리를 들어보나요? 관심이 없어요.

꽃집은 어떤가요? 꽃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있어요. 문병을 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프로포즈 하는 사람도 있을 테죠. 어때요?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이야기에요. 브랜더라면 이러한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을 때, UB브랜드는 ‘결’을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살결, 바람결, 물결 할 때 쓰는 그 결을 말하는 건데요, 하나의 코드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많은 브랜더들이 자꾸 컨셉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위적으로 어떤 개념을 만들어 내죠. 그러나 컨셉은 그것을 사려는 소비자들과의 ‘결'이 맞았을 때 비로소 생긴다는 겁니다. 이것은 절대 돈으로 만들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가치가 있어서 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값이 높기 때문에 가치가 높여지는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브랜더라면 이 역전현상을 되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오늘 인터뷰의 핵심인 브랜드 인문학 아닐까요?

 

Q
멋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사실,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를 모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교수님께 누차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자본의 지배 아래 너무나 오랫동안 삶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문화인류학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십니다. 브랜더가 문화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떤 브랜드가 나올까요?

 

A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기가 만든 세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동물입니다. 자연 세계보다도 인간들이 만든 인공적인 세계말입니다. 인간은 거기에서 마치 물고기가 물에 살 듯이 살고 있어요. 그런데 물고기는 자신이 헤엄치는 곳이 물이라는 것을 알까요?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곳이 물이라는 것을 알 뿐더러, 자신들이 아예 물을 만들어냅니다. 이 물이 바로 문화죠. 그러니까 인간은 스스로가 만든 인공적인 세계인 문화 속에 살면서 몸부림을 칩니다. 스스로가 만든 덫에 걸린 거죠.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자살에 이르는 문제는 결국, 문화의 문제거든요. 몸이 아프고, 배가 고파서 죽는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쟤가 나 무시해’ ‘난 왜 사는지 모르겠어’ 등 삶이 허무하고 의미가 없어서 자살을 하는 거잖아요. 바로 이 의미를 누가 주는 거냐면, 문화가 주는 거거든요. 작게는 가족 문화에서부터, 직장 문화, 혹은 민족 문화 등 이 문화가 사람들에게 의미를 만들어줍니다.

제가 공부하는 문화인류학이란 각기 다른 문화 공간 속에 사는 사람들과 그 문화를 연구하면서, 삶의 방식을 연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해’라는 사람들에게 ‘너가 사는 삶 말고 이런 삶도 있다’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거예요. 그래서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브랜드는 인간이 살아가는 하나의 프로그램이거든요. 그러니까 각각의 사람에게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를 제시하고 그것을 메시지로 전하는 것이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문화인류학자가 브랜더가 된다면 화폐로 인해 감춰진 삶의 가치들을 드러내어 보여주고, 그것을 꿈꾸게 하고, 궁금하게 하는 브랜드를 만들지 않을까요?

 

 

각가의 사람에게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를 제시하고
        그것을 메시지로 전하는 것이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Q
듣고만 있어도 행복한 브랜드일 것 같습니다. 그 브랜드를 보았을 때, 나의 삶이, 그리고 나의 미래가 궁금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유니타스브랜드가 바라는 Good Brand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브랜더들에게 교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창조라는 게 뭡니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자기를 피조물 안에 쏟아 붓는 거잖아요. 나의 분신을 만드는 거죠. 그것은 불멸을 향한 욕구일 수도 있어요. 나는 언젠가 죽을지 모르지만, 영원불멸할 무언가를 남기겠다, 하는 것 말이에요. 그럴 경우, 피조물은 남아서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심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기도 하죠. 나의 아이덴티티가 그곳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날 기억해주겠죠. 이게 브랜드 아닙니까? 브랜더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 브랜드잖아요.

그렇다면, 저는 브랜더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인간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 지를 믿으라. 우리는 지금 인류사 적으로 굉장히 특이한 시대를 사는데, 두 가지 의미에서요. 하나는 전통의 구속에서 자유로워요. 이때까지 이런 인간은 없었습니다. 전통이나 혹은 종교나 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또 하나는 전 세계가 하나로 엮어졌죠. 그래서 누구든 전부 만날 수 있습니다. 공자는 예수를 몰랐고, 소크라테스는 부처를 몰랐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모두를 만날 수 있어요. 우리가 이제 할 일은 이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지금 이 시대에 맞게 가져다 쓰면 됩니다.

사실, 이들은 모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들을 사상적으로 예술적으로 전부 다 보여줬거든요. 다만, 우리가 그들과 만나는 법을 모를 뿐이죠. 인간의 위대함을 믿으라는 것은, 다른 말로 자신을 재발견 하자는 말입니다. 타고르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놀라워하는 존재다”라고 말했어요. 스스로에게 놀라워해본 적이 있나요? 모든 것이 열린 이 시대에 위대한 인문 학자들을 만나며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 보았을 때, 저는 브랜드를 만드는 방식부터 달라질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당장이라도 그들을 만나보시죠. 플라톤이든, 아니면 헤라클레스든. 내면으로부터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UB) 브랜드는 ‘결’을 갖게 된다
‘결(wave)을 따라 움직인다’는 말은 순리적으로, 자연스럽게,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빠르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브랜드가 결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면(세상 이치대로, 순리적으로 행동하며 고객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빠르게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어떻게 ‘결’을 가질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기업이 해야 하는 일은 브랜드의 성격과 고객의 성격을 맞춰나가며 브랜드와 고객을 하나의 흐름 속에 올려 놓는 것이다. 물론 고객의 가치관, 성향, 그리고 그들의 진짜 행복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이것을 토대로 자사 브랜드의 자기다움을 찾는 것이 고객과 브랜드가 하나 됨을 위한 선행 과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를 알아야 상대방과 코드 조율이 가능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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