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초월적 책임감
자아와, 행위와, 이윤과, 경영을 넘어서는 볼륨배지시즌배지

고유주소 시즌2 / Vol.16 브랜드십 (2010년 07월 발행)

“The buck stops here.”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위와 같은 문구가 새겨진 명패가 있었다. 한국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통령을 지내며 유난히 ‘책임’과 인연이 깊었던 그는 전쟁 종식을 위해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책상에 올려져 있던 이 말은 다름아닌 ‘책임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진다’는, 단순하지만 어렵고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많은 리더들이 트루먼과 같이 책임지길 원하지만 또한 그만큼 부담도 느낄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 투하를 원했으나 정작 그 결정을 ‘직접’ 내리고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모두가 관여된 일이지만 ‘내 책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위한 결정을 해야 했다. 이것이 어쩌면 리더의 책임이고, 또한 리더가 ‘책임’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하게 된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리더가 ‘혼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책임감이 하나 있다. 바로 리더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구성원 모두가 함께 느끼는 ‘초월적 책임감’이다. 도대체 이 책임감은 무엇이기에 책임감에 대한 우리의 고질적인 부담감마저 초월할 수 있을까?

단어의 가벼움과 의미의 무거움
“모터사이클과 이와 관계된 문화의 격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었다.”
“패션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다.”
“한글은 우리와 뗄 수 없는 분야다. 한글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런 노력이 잡지 업계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책임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브랜드의 리더가 한 말인지 알지 못한 채 이 말만 들려준다면, 당신은 이 말에서 각각 어떤 브랜드를 상상하게 되는가? 어떤 말에서는 뚜렷하게 특정 브랜드가 떠오를 수도 있고, 또 어떤 말에서는 그 어떤 브랜드도 연상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거의 대부분이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에 따라 다른 브랜드를 상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을 한 브랜드의 리더들은 자신이 만든, 혹은 자신이 경영하는 브랜드에 대한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선’ 자신의 분야에 대한 책임감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학이나 철학, 윤리학 등의 관점에서 ‘책임감’은 아주 흔한 단어다. 이와 관련된 책들이 주변에 있다면, 아무 책이나 잡고 조금만 훑어 보라. ‘업무에 대한 책임감’ ‘사회적 책임’ ‘책임의식’뿐만 아니라 책임이란 단어가 쓰이지 않았을 뿐 모습만 바꾼 ‘책임’이란 의미의 단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띌 것이다. 책임은 충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너무 흔해서 의미마저 모호해진 닳고 닳은 단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임감이라는 단어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바로 행동을 이끌어 내는 힘이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때로는 놀라움을 동반한 ‘초인적인 행동’을 말이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20세기 초 독일에서 반나치적 자세를 고수하며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 처형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행동은 생각이 아니라 책임을 지려는 각오에서 나온다.” 그의 행동은 어떤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로 하여금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게 했을까?

 

 

 

책임감 바이러스와 브랜드 영속성

책임감이 행동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을 누구나 암묵지로 가지고 있어서일까. 이번 특집 주제에서 만난 리더들의 인터뷰에서는 그들이 느끼는 책임감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이야기는 조직과 브랜드를 이끌어 나가는 리더로서 느끼는 책임감에서 시작되었다. 브랜드의 사활과 직원들의 삶, 그들의 복지와 주주에 대한 책임감. 어쩌면 트루먼 대통령이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할 때처럼, 리더는 언제나 되돌릴 수 없는 ‘버튼’을 누르는 듯한 책임감의 무게를 지탱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권한에 따르는 필연적인 압력과 같다. 그러나 《책임감 중독》(이름마저 무시무시하다)과 같은 책에서도 밝히듯이, 이런 책임감은 곧 ‘책임감 과잉(리더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이나 ‘책임감 회피’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재미있는 것은 책임감이 과잉되었다가 실패를 겪으면 극단적인 책임감 회피로 변하기 쉽다는 점이다). 또 다른 책 《리더십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RAV바이러스 중 R바이러스도 바로 Responsibility(책임감)인데, 리더가 느끼는 책임감이 곧잘 ‘부담감’으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책에서 밝히는 책임감의 후유증을 하나씩 살펴보면 조직 생활에서 리더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비롯한 누구에게든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이 과연 브랜드십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은 브랜드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책임감이 브랜드의 영속성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이론은, 의외로 사랑을 연구한 한 심리학자에게서 나왔다. 예일대학 로버트 스턴버그 교수는 사랑의 구성 요소를 분석하여 ‘사랑의 삼각이론(triangular theory of love)’이란 흥미로운 체계를 세웠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세 가지 구성 요소는 친밀감, 열정, 책임감인데 여기서 책임감의 역할이 흥미롭다. 바로 책임감이 사랑을 ‘유지’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스턴버그 교수는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존재해야만 ‘성숙한 사랑’이라고 보았는데 책임감이 빠진 사랑은 상대적으로 낭만적이고 서로에게 도취되지만 오래 유지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성 간의, 부부간의 사랑을 대입해서 생각해 보라. 책임감이 없는 사랑은 정열적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렇다면 부담감을 주거나 회피하고 싶게 만드는 책임감의 고질적인 바이러스에도 강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사랑을 유지시킬 수 있는 책임감을 찾을 수는 없을까? 그런 책임감이 있다면, 그래서 이것이 리더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에 생긴다면 브랜드에 대한 사랑은 유지하되 개인적인 부담감을 덜어 내고,직접 행동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역시 리더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만난 리더들이 시작한 (조직이나 브랜드에 대한) 책임감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보면 (많은 리더들이) 어느 순간, 부담감을 떨쳐 내고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책임에 대해 논하는 시점이 온다(이것도 일종의 ‘초월’ 지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어떤 영역을 벗어났을 때 책임이 부담이 아닌 자유나 열정으로 변할까? 예상했겠지만 바로 브랜드와 조직을 ‘초월하는’ 책임에 대해 논할 때다. 보통 그 책임은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 관한 책임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브랜드십을 가지는 데 꼭 필요한 ‘초월적 책임감’이다.

 

글의 시작에서 인용한 말을 한 리더들은 각각 할리데이비슨, 이광희, 윤디자인, 바앤다이닝이라는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인용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리더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직 내부와 브랜드에 대한 책임감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쉽게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그러나 그 영역에서 조금만 벗어난, 한 단계 높은 초월적 책임감은 행동의 원동력이 되고, 어려움을 이겨 내는 백신이 되며, 때로는 하기 어려운 일도 담담하게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된다.

 


 

 

초월적 책임감 전달하기

리더가 가지는 초월적 책임감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직원들에게 자신의 직무나 조직을 넘어서 어떤(다른)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리더가 곧 조직’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되새겨 보면, 방향성을 결정하는 리더의 역할은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브랜드십이 있는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리더 혼자 초월적 책임감을 갖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브랜드십이 있는 브랜드의 리더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초월적 책임감을 직원들이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리더가 이런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광희 디자이너는 패션이라는 분야에 대한 초월적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앞장서서 구체적이고 어려운 일들을 해 나갔다. 직접 발로 뛰며 패션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자신의 패션쇼에 초대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쇼가 ‘사치를 조장하는 행사’가 아니라 ‘문화 행사’가 되도록 음악가, 조각가, 영상 제작자들까지 모두 참여시키며 초창기 한국 패션 문화를 만드는 데 노력했다.
보다 직접적으로 초월적 책임감을 함께 행동으로 옮기도록 이를 업무로 구체화시켜는 리더도 있다. 윤디자인연구소의 편석훈 대표는 한글 디자인뿐만 아니라 한글 자체에 대해서도 남다른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윤디자인에서 블로그와 웹진 형태로 한글에 대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온한글’은 우리 한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수익은 발생하지 않는 일이지만 조직 내부에 이를 담당하는 직원을 두고 다른 직원들도 참여하게 한다. 이런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된 초월적 책임감은 직원들에게 상징적으로,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물론 책임감이 리더가 직원들에게 ‘꼭 가지라’고 강조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책임은 완전히 자유롭게 받아들인 것이 아닌 한 아무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로마 법관이자 극작가인 우고베티의 말처럼 이를 받아들이는 직원들의 전적인 공감 없이는 책임감 전이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초월적 책임감을 가진 리더의 실질적인 행동들은 직원들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공감을 얻는 데 효과적이다. 리더가 직접 초월적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으로 보여 주거나 업무로 구체화시켜 주어 직원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말뿐인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설득력을 갖는다.

  

 

초월적 책임감의 영속성

이쯤 되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길 것이다. 어떻게 브랜드가 아니라, 이것을 초월하는 영역에서 직원들이 책임감을 가졌는데 이것이 브랜드에 대한 열정이나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말이다.

 

‘초월(transcendence)’이라는 단어는 본디 여러 의미에서 ‘어떤 영역을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초월은 얼핏 보기에는 경영이나 브랜드와는 무관한 단어처럼 보일지 몰라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경영》이라는 책만 봐도 아주 빈번하게 등장하곤 한다. 예를 들어 ‘영리를 초월한 목적’이라든가 ‘자아를 초월한 비전’ ‘외부적 보상을 초월한 원대한 목표’ 같은 말에서 초월이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그가 이렇게 초월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의도는 모두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조건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직원들이 브랜드를 초월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면 우선 브랜드를 이끌어 가는 데 있어 개개인이 조직 환경이나 조직 내부의 갈등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눈앞에 보이는 한정된 공간이나 시간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브랜드 이상의 것을 성취하는 데 공헌하고, 업무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일에 참여했다는 만족감이 직원들에게 강력한 동기 유발 요인이 된다는 것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를 비롯한 다수 학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이런 만족감은 곧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나 친밀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조직원 모두가 같은 초월적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브랜드가 그 분야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지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종종 리더들이 초월적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사명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브랜드가 시장에서 일정 기간 성숙한 이후에 생긴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성숙’의 문제이지 높은 매출이나 성과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브랜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인식했기에 생겨난 경우다. 또한 리더가 직원들에게 초월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공감시켰다는 것은 우리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알려 주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직원들의 역할이 조직 내부에서의 업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그 분야를 주도하는 리더로서 책임감을 갖게 되면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 브랜드를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사회적인 자부심과도 연관되는데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라면 조직이 오래 유지되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초월적 책임감은 그렇게 좁은 의미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위나 자신의 브랜드, 자신의 업무를 초월하는 순간
그 책임감이 브랜드십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 내부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보통 개인의 역할과 권한을 초월하지 못한다. 그러나 초월적 책임감은 다르다. 이것은 직급이나 직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더보다 더 높은 초월적 책임감을 가진 직원이 나오기도 하고, 이것이 때로는 직원의 삶의 비전으로 전환되기도 할 것이다. 브랜드십은 이런 직원이 늘어나 브랜드의 문화가 되면서 더 확고히 정착된다. 초월적 책임감이 문화로 정착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을 가지고 일했을 때 나타난 사회의 조그마한 변화들도 서로 공유하고 함께 기뻐해야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아지고, 더불어 브랜드에 대한 사랑도 완성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턴버그 교수의 말처럼 책임감‘만’ 있는 사랑은 공허한 사랑에 불과하다. 문화로 형성된 조직 내 기타 요소들이 초월적 책임감과 함께 어우러져야만 브랜드십도 성숙한 사랑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제까지의 책임감은 자신의 업무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아주 흔한 의미가 되어 과소평가되었거나 원치 않게 떠맡은 짐처럼 무거운 부담이 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업무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회피할 수 있는 구실이 되거나, 자신이 리더가 아니면 떠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역기능을 낳았다. 하지만 초월적 책임감은 그렇게 좁은 의미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위나 자신의 브랜드, 자신의 업무를 초월하는 순간 그 책임감이 브랜드십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니타스브랜드 문의

About Us

찾아오시는 길

교육, 컨설팅, 제휴 문의

  • 070-5080-3800 / ahneunju@stunitas.com